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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언론

[인연 .35] 서양화가 안창표와 김만돌 한솔바이오 대표 영남일보 - 2015-07-28
아트코리아 | 조회 1,697

“그림 한 점 주세요” 24년전 불쑥 화실로 찾아온 첫 만남

 

 

안창표 서양화가(오른쪽)와 김만돌 한솔바이오 대표가 한솔바이오 사무실에서 그동안 두 사람이 맺어온 인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사람의 뒤로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안 화가의 그림이 보인다. 이지용 기자 sajahu@yeongnam.com

 


◇安 작가에게 金 대표는
화가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든든한 후원자  金대표는 처음 구입한 그림을 핑계로 삼아 자주 작업실을 찾았고 미술 얘기하며 소통 지금은 작품 60여점 소장한 소중한 컬렉터


◇金 대표에게 安 작가는 한유회 회원전을 보고 그림에 관심가졌는데 安작가는 무엇을 물어봐도 늘 명쾌하게 설명
몰랐던 미술 세계를 알게해 준 ‘그림 스승’ 관심분야가 같다보니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



1991년 안창표 서양화가(54)는 자신의 그림 인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귀한 만남을 가졌다. 그 당시를 안 작가는 이렇게 회상한다.

“아직 화가로서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때라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해 어느날 제 화실로 낯선 분이 찾아왔지요. 그림을 알고 싶고, 구입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최근 한 전시장을 들렀다가 팸플릿을 보고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화가를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그림을 그리는 시기였기 때문에 반가운 손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림을 구입하는 데서도 다른 이들과 달랐다.

“화실에 와서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대뜸 “그림 한 점 주세요”라고 하면서 흥정하지 않고 적지 않은 돈을 건네주었지요. 근데 더 놀랄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등 각종 공모전을 통해서 미술가의 수준이 평가받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공모전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제 그림이 전혀 가치가 없지 않았는데 작품을 가지고 가지 않은 것입니다. 나중에 가지고 가겠다면서 말입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안 작가는 많이 어리둥절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기분 좋은 바람이 온몸을 확 휘감고 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고도 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자신을 찾아온 그 손님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준 만남이었다. 그때 안 작가를 찾아온 사람은 바로 사업가 김만돌 한솔바이오 대표(69)이다.

나중에 김 대표와 친해지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김 대표가 일부러 작품을 놔두고 간 것이었다. 안 작가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작품을 두고 간 것이다. 놔두고 간 그림을 핑계 삼아서 김 대표는 자주 그의 작업실을 찾아왔고 미술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져 김 대표는 안 작가의 가장 소중한 컬렉터가 됐다. 김 대표는 현재 안 작가의 작품을 무려 60여점이나 가지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이처럼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작가에 대한 마니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기자 역시 안 작가를 만난 지 몇 년이 되었던 터라 안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 대표에 대한 이 이야기를 몇 차례 들었다. 그래서 진짜 미술작품을 좋아하는 분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게 되었고 안 작가가 인터뷰를 김 대표의 사무실에서 하자는 제의가 왔을 때- 안 작가의 그림이 사무실에 많이 걸려있다고 해- 사무실에 대해 큰 기대를 했다. 무의식적으로 넓고 세련된 사무실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무실을 찾은 뒤 기자의 예상이 보기 좋게 틀렸음을 알았다. 사무실은 그냥 작은 점포처럼 보였다. 사무실의 크기에 약간 놀라있던 때 또 다른 놀라움이 찾아왔다. 작은 사무실의 벽면에 그림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이다. 이만이 아니다. 책상 등 틈이 있는 곳에는 그림이 켜켜로 들어차 있어 마치 그림창고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사무실에는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석이 장식장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사무실이 누추해서 어떻게 합니까. 이런 곳에서 인터뷰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을런지….”

사진기자와 함께 김 대표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김 대표는 걱정의 말부터 꺼냈다. 그런데 그의 말보다 벽에 걸린 그림에 먼저 눈길이 갔다. 전시장에서 자주 보던 작가의 작품이 많았다. 특히 안 작가의 그림이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작까지 두루 있었다. 10점 정도 됐는데, 김 대표는 걸지 못하고 사무실에 세워둔 것까지 치면 더 될 것이라 했다. 사무실에 있는 그림을 보니 안 작가의 작품 변천사는 물론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문득 김 대표가 안 작가의 그림을 몇 점이나 갖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 사무실에 있는 것은 안 작가의 구작이고 최근작은 집에 있습니다. 집에 걸어둬야 더 자주,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사무실이나 집에서 안 작가의 그림과 수석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지금도 이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이 말이 끝나자 안 작가는 김 대표의 삶이야기를 살짝 곁들였다. 한때는 대구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유통업체를 운영했는데 IMF 외환위기때 부도가 났다. 그 당시 빚이 상당했던 그는 그림을 팔거나 그림과 빚을 서로 맞바꾸면서 그림의 상당수를 처분했다. 그때 안 작가의 작품도 포함됐다.

“아마 김 대표가 그때 제 작품을 처분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으면 지금쯤 100점도 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제 작품을 많이 사주는 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돈을 떠나서 작가에게는 행복이지요.”

이 말에 김 대표는 “몇 십 년이 지나도 늘 같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많은데 안 작가는 그림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사지 않을 수 없었다”며 웃음지었다.

김 대표는 안 작가를 그림의 참된 가치를 알게 해준 스승이라고도 했다.

“안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한유회 회원전이 열렸는데 그때 그림을 보고 난 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전에 수석과 난에 취미가 있어 수집을 했는데 주위에서 고서화를 사는 분이 많았습니다. 고서화는 비싸지만 막연히 한유회 회원처럼 젊은 작가의 작품은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팸플릿을 가져왔습니다.”

그 뒤 김 대표는 팸플릿에 있는 작가의 정보를 보며 자신의 사무실에서 가까운 작가들을 찾아가서 그림 구입요령을 배운 뒤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김 대표의 사무실은 대구시 동구 신암동이었는데 그 당시 안 작가의 작업실도 신암동에 있었다. 그래서 그 작업실을 찾은 것이 이들의 긴 인연을 만들어줬다.

팔공난우회 회장, 대구수석회 회장, 대구수석연합회 부회장 등을 지낼 정도로 이 분야에 심취했던 김 대표는 수석, 난과 마찬가지로 그림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림을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안 작가였다. 그림에 대해 다른 작가에게도 물어봤지만 안 작가처럼 명쾌하고 솔직하게, 또 그림에 대한 안목을 갖도록 설명을 잘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 같은 김 대표의 평가에 대해 안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입장에서 솔직히 말했을 뿐입니다. 그림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저를 만나면 늘 그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만큼 설명해주었을 따름이지요.”

이렇게 그림 공부를 하면서 두 사람 모두 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수시로 술잔을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다. 만남이 잦아지면서 15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사라지고 말았다. 서로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했다.

김 대표는 안 작가의 바른 삶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진짜 친구처럼 여겨진다는 말도 곁들였다.

“안 작가는 정직하면서 의리도 있는 사람이지요. 사업이 망하자 그동안 자주 만나던 사람 중 상당수가 제 곁을 떠나더군요. 그런데도 한결같이 저를 믿어주고 지지해준 사람 중 한명이 안 작가입니다.”

안 작가는 김 대표가 사업에 실패하고 난 뒤 암에 걸려 건강까지 위협을 받자 자신이 그동안 받은 은혜를 갚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돈하고는 거리가 먼 작가가 금전적으로는 도와줄 것이 별로 없고 자주 만나 밥이라도 먹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라 생각했고 이를 실천했을 뿐이라고 했다.

안 작가에게 ‘인연’의 취재를 요청했을 때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김 대표와 하고 싶다고 한 이유가 인터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안 작가가 아직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때 후원자 역할을 해줬던 김 대표, 김 대표가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 때 곁에서 그 아픔을 나누려했던 안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움을 같이하는 사람이 인생에서 진짜 친구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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