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6    업데이트: 21-01-22 17:30

평론 언론

[김수영의 그림편지] 안창표 作 ‘pot story-festival’ 2017-07-28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2,028
10여년 캔버스에 빚은 장독대는 그의 思母曲…‘여백의 미’ 담은 서양화로 눈길


# 안창표 작가는 계명대 미술대학과 동대학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93년부터 30여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대구청년작가회 회장, 구상작업미술가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대구지회 이사 등을 지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구학생문화센터, 외교부 등에 소장돼 있다.
안창표 화가는 여름철 유독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합니다. 특히 장마철 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면 어머니의 정겨운 목소리가 수시로 그의 곁에 맴돌지요. “얘야, 장독 뚜껑 덮어라.” 그러면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부리나케 집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를 향했답니다.


그의 어머니는 세간살이 중 양지바른 곳에 놓인 장독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장독대와 장독들을 쓸고 닦았습니다. 짠내음이 진동하는 그 장독들을 어머니가 왜 그리 소중하게 여기셨는지, 그는 나이가 들어 장맛을 제대로 알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검은빛이 도는 투박한 장독들을 그리도 애지중지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이젠 보기 힘들게 됐고, 그래서 비가 오면 문득 어머니가 담가주던 그 장맛이, 그리고 어머니의 그 손길이 더 그리워졌습니다. 사무치는 그 그리움이 10년 전쯤 그의 캔버스에 살며시 내려앉았습니다. 장독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즈음 스위스, 일본 등 해외에서 전시를 많이 했는데 한국적인 그림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도 한 요인이 됐습니다.

그는 장독대를 그리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림이 좋아서 무작정 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가 그림을 통해 아름다운 추억이 자리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였지요. 미술교사로, 화가로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것들이 하나둘 되살아나는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행복을 찾았습니다.

장독대를 그리면서 작업적 고민도 치열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그리움, 감성만으로 장독을 담아내면 자칫 진부한 그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독을 그리는 화가는 많습니다. 안창표만의 장독이 필요했지요. 장독이 주는 전통미를 간직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살아 숨쉬는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화면구성, 색채, 표현기법 등에서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그는 한국적인 여백의 미를 살리기 위해 장독의 밑부분을 자르고 윗부분만 그려 공간을 넓게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여백에 비, 눈, 꽃 등 그가 어린 시절 장독대에서 마주했던 다양한 풍경을 곁들였지요. 색채의 사용에서도 파격을 시도했습니다. 검은색, 고동색의 장독에서 벗어나 빨강, 파랑, 보라 등 강렬한 색채의 장독을 만들어냈습니다. 배경색도 눈길을 끄는 색상으로 처리하고 그 위에 흰 눈, 붉은 꽃 등으로 색상대비 효과를 살렸습니다.

안 작가는 그만의 장독대를 만들면서 감상자에 대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술은 창작하는 예술가만의 즐거움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림과 감상자의 소통 속에서 그림은 또다른 생명을 가지고 그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제 그림을 보고 편안하다, 행복을 느끼게 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술적 욕심, 집착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는데 이런 생각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겠지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81년 대구로 와서 30년 넘게 지역미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해 6월 미련없이 대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영주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5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작업과 삶을 새롭게 바꾸고 싶어서 택한 결정이라 했습니다.

그는 10년 동안 고집해왔던 장독그림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뚜렷하게 잡힌 것은 없지만 치열하게 연구하고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년 상반기쯤에는 변화된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데 그 전시가 기다려지는 것은 저 역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때문이겠지요.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