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7    업데이트: 23-06-0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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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기억이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Message) /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관리자 | 조회 863
바람기억이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Message)
 
김태곤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작가 최현미의 회화는 ‘꽃’이라는 보편적 사물을 통해 아름다움의 본질적 의미를 새로운 이미지로 구현하는 조형 미학을 담고 있다. 활짝 핀 꽃다발을 원색의 물감과 리드미컬한 필선으로 그려내는 작품에서는 청순하고 간결한 작가 내면의 감정이 음률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는 구상 회화가 갖는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대상에서 분출되는 짙은 꽃향기를 속도감 있는 붓 터치와 두툼한 물감의 물성으로 그려내고 있기에 새로운 시대적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지 모른다. 강한 생명력과 현대적 미의식이 응집된 그녀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통해 오늘의 예술정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열정적 행보는 자그마한 몸집을 극복하고 분출되는 강력한 에너지의 결정체인 셈이다.
 
꽃은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정서를 고양 시키는 자연물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으며 미의식의 반영체로서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재로 다루어졌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중세 시대 꽃은 계절의 순환, 탄생과 죽음, 부의 상징 등 다양한 의미로 묘사되어 왔으며 인상주의 이후에는 형과 색채를 가진 객관적 사물의 대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색채와 형태, 공간 등 조형적 요소가 중요시되는 정물화의 현대적 의미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대표적인 화가 중 세잔(Paul Cézanne)의 꽃 정물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채의 대조와 치밀한 구조적 공간이 만들어 낸 새로운 개념의 화풍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티스(Henri Matisse)의 꽃 정물은 원색에 가까운 색채로 화면의 공간적 깊이를 파괴하고 평면성과 장식성에 초점을 맞춘 독창적 표현기법을 고안해 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시각예술에 있어 꽃이 갖는 소재성과 상징성은 인류의 긴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도 지속해 나갈 것이다.
 
그녀의 근작들은 〈바람기억〉이라는 일관된 제목을 통해 동시대의 감성과 세련된 표현력에서 오는 경이로운 아우라를 유감없이 발산해 내고 있다. 임페스토(impesto) 기법이 주는 꽃잎의 부피감과 완전히 섞이지 않은 물감의 배색이 엮어낸 환상적인 색채는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녀의 작업은 늘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진다. 수없이 반복된 작업을 통해 채색 흔적을 깨끗하게 덮고 그 위에 두터운 마티에르로 그려낸 작품에서는 오랜 시간 힘겹게 살아온 작가의 삶과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인고의 시간 속에서 자기 예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실험과 탐색이 쉼 없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가수 나얼이 부른 〈바람기억〉이란 노래 가사를 보면 “나를 스치는 고요한 떨림 그 작은 소리에 난 귀를 기울여 본다 / 내 안에 숨 쉬는 커버린 삶의 조각들이 날 부딪혀 지날 때 그곳을 바라보리라 / 내 안에 있는 모자란 삶의 기억들이 날 부딪혀 지날 때 그곳을 바라보리라”에서는 날아가 버린 바람의 추억을 기억하고픈 애절함이 담겨 있다. 작가 최현미의 작품 역시 이처럼 스카비오사 뒤에 가려진 삶의 무게를 견디어내고 화려함을 뽐내며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애절함이 가사처럼 깊이 내재되어있다. 단색조의 여백이 만들어내는 공허한 공간마저 로맨틱하게 꾸며내는 그녀의 짙은 감성은 온화하고 서정적인 조형미를 만들어낸다. 꽃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가치,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행복 전도자 최현미의 작품은 긍정적 아이콘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