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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_아픈 봄을 지나보내며
18/04/06 14:47:08 아트코리아 조회 2275

문화칼럼_

아픈 봄을 지나보내며

글|김성희 극단 가인 대표


창문을 엽니다. 
매운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문화예술계에 불어 닥친 미투 운동은 혹독했지만 겸허히 맞아야 할 바람이었습니다. 미투(#MeToo) 운동은 2017년 미국에서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판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서 해시태그를 다는 행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연일 고발되고 있습니다. 

그중 순수해야 할 문화예술계에 소위 말하는 거장들의 상습적인 성폭력은 모든 이들에게 큰 충격입니다. 가난하지만 돈과 권력에 굴하지 않고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던 연극계 선배들의 언행과는 완전 어긋나 배신감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연극은 예민하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세상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많은 작품들이 지배 권력에 대해날 선 풍자와 조롱으로 비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극 <안티고네>가 보여주듯 국가와 국민, 남자와 여자, 제도와 법규, 세대 간의 갈등 등은 오래전부터 연극이 고민했던 주제입니다. 사실주의, 부조리극, 서사극 등 양식은 달랐지만 궁극적으론 사람다움에 대한 성찰이었죠. 그러나 연극 자체 내 권력화에 대한 경계를 바르게 하지 못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순수하게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조차 폄하될까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자유로운 상상과 풍부한 표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창작자가 져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인정받아야 그토록 열망하는 관객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유명해져야 한다는 바람이 생기면서 이미 유명해진 실세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개인의 명성을 전부인 양 과시하는 그들은 손을 내밉니다. 

일부 개인의 명성과 그에 의존하던 문화 권력이 무소불위의 왕좌를 틀어쥐곤 정보와 자금과 행사를 독점하는 양상도 보였습니다. 그 속에 사람들을 끌어들여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지우며 이익과 불이익을 권력이라는 칼로 재단하여 집행합니다. 조직 내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양성하여 키우거나 도태시키는 것도 마음대로입니다. 그중에서도 약자인 여성예술가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은 꿈을 그렇게 이용하고 짓밟아버린 셈입니 다. 진정한 인력 개발이 안 되고 인력의 사유화가 공정한 기회의 지속성을 무너뜨립니다. 

예술가의 재능, 그 재주와 능력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새삼 고민해봅니다. “그래도 작품은 좋잖아~ 실력은 있어~” 
그럴지도 모릅니다. 잘 포장된 상품은 사람들의 호감을 삽니다. 하지만 내용물이 부실하거나 상했어도 그 포장이 여전히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만든 이의 부도덕성과 작품이 무관하게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순 없다 봅니다.

예술적 표현도 품행과 같은 결 

자신이 만들어 입은 옷에는 그의 가치관과 품격이 담겨 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중요한 외출 시엔 꼭 한복을 입으셨습니다. 올림머리에 예쁜 손가방과 손수건을 챙겨 나가셨습니다. 어머니는 한복 입는 날을 경건한 행사처럼 여겼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정갈한 의식을 치르듯 준비하셨죠. 옆에서 헌 치마로 사극 놀이를 하는 나에게 “모든 일을 한복 입듯 해라.” 하셨지만 어린 나는 그저 놀기 바빴죠.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는 노래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들어서인지 봄이 오면 백설희 님의 ‘봄날은 간다’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나도 흥얼거립니다. 

봄날이 이제 왔는데 봄날은 간다. 이 노래는 그만큼 짧은 날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사람들마다 봄날은 어떤 의미인지. 우리 연극인들은,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찬란한 봄날에 가장 어울리는 곱디고운 연분홍색을 고르고, 바람에도 살짝 휘날리는 매력 있는 치마를 정성스레 차려입는 심정이 됩니다. 
그 옷을 입기 위해서는 정갈한 속옷을 갖추어야 하고, 바른 몸가짐에 걸음도 단정하게 하며 고운 미소 속에 참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주치는 이들에게 기분 좋은 눈인사를 나누면서 봄날을 마음껏 들입니다. 관객을 만납니다. 비록 힘든 시기지만 대구 연극계는 그런 만남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굳이 봄이 아니더라도 사계절 내내 좋은 공연을 위해 질 좋은 천을 고르고, 색을 입히고, 바느질 하고, 풀을 먹이는 노력을 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맞는 이에게 입혀 무대로 나들이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때 나들이를 함께 하는 분들을 보면 그 노력이 흐뭇함과 뿌듯함으로 다가와 고됨을 잊게 됩니다. 

그런데 이즈음 봄은 왔건만 추운 바람에 겨울을 입은 듯 무겁습니다. 앞서 말한 재능 있다고 여긴 문화 권력자들의 잘못된 행동과 관습이 우리를 서로 미안해하게 하며 창문도 닫게 합니다. 물론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건강한 상호존중, 합리적인 작업 관계, 올바른 도덕성으로 바꿔야 하는 일에 현장부터 행정관리까지 너, 나가 따로 없습니다. 

다시 말해 몇몇 권력자에 대한 폭로뿐 아니라 일상에서 함께 풀어나가야 할 우리의 과제입니다. 능력을 인정받고 권력을 잡았던 그들의 재능은 진정 예술적 가치를 생산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예술적 표현이 반짝 빛을 낼 순 있지만 결국 그들의 품행과 언행에 의해 사라집니다. 위에서 이야기하였듯 이분화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연분홍 치마를 한 벌 입기까지의 모든 노력과 마음가짐과 행동을 동반한 재능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후배, 직위, 역할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도록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그 가운데서 치열하게 작업하고 생산하는 연극인으로서의 자세를 다해야 합니다. 

여느 겨울보다 추웠습니다. 봄이 왔고, 그리고 봄날은 갑니다. 
어떤 봄날을 만들고 보내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뜨거움도, 서늘함도 청량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며 대구연극제 같은 의미 있는 축제도 열리고 그동안 많은 예술 단체와 예술인들의 켜켜이 쌓은 노력으로 대명공연거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우린 또다시 좋은 천을 고르고 옷을 짓는 작업을 합니다. 관객들에게 다시 기다림의 설렘, 그리고 믿음을 드리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고 그분들을 맞이할 청소를 합니다. 하지만 공연과 관객의 만남은 예술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다시 권력의 사당화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과 투명한 인력개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여 창작자가 자부심과 당당함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봄날과의 이별. 춥고 아팠던 봄을 우리가 보냅니다. 그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많은 새 생명이 움터 올라오고 알뜰하게 살아나 푸르름으로 이어지리라는 우리의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월간 대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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