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    업데이트: 23-07-04 09:55

언 론

<오늘의 자작추천시> 정하해, 분홍이라는 준령
아트코리아 | 조회 551
분홍이라는 준령

정하해
 

 

해마다 꽃은 제 자리로 와, 살다 가고

낯익은 끼리끼리 한 덩어리 폈다가

때로는 벌써 자리를 뜨지만

편하고 익숙해서 늘 빈손으로 보냈다

우리들 눈매가 오래 닿는 쪽으로 
오늘도 익숙한 
자태로 노는 꽃이여

말갛게 우러난 그늘마다 돌아갈 수 없는

얼굴이 있다

편하고 익숙한 
그 중심의 분홍, 까무룩 스무 살이었다가 
어디서 했던 작별이었다가

내 나이 바깥을 맴도는 저 분홍이라는 준령

한때 만발했던 것 


작가노트 


부르지 않아도 막무가내 들어오고, 보내지 않으려 품에 숨겨도 또, 막무가내 가는 게 세월이다. 살다보면 절대라는 말은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어불성설에 불가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언제 스무 살로 산 적 있었던가 싶다가도 그래도 청춘이라는 저 위대한 순간은 잠시 스쳤을 뿐이라는 착각이 남은 생에를 위안하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억울하게 흘려보낸 시간도 많아 내 스무 살이 어디쯤 서있는지 내 마흔이 무엇과 있는지, 그리고 쉰이 그저께 같은데 손에 잡히질 않으니 분명 나는 그 모든 걸 잃어버린 채 여기까지 와, 이 꽃 저 꽃에 기대어 잡담이나 풀어 놓는 쓸쓸함이라니! 너무 편하고 익숙해서 더러는 내 바깥을 엎지르는 일이 종종 있다. 나를 완성해주는 모든 것들에 그 익숙한 몸짓 하나까지 함부로 치댈 때가 있어, 곰곰 생각해 보면 참 많이 신세를 지고 살아간다는 사실 앞에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가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정하해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2003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살꽃이 피다』『 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일일문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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