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언론.평론.보도

건달바 정 숙의 시 세계를 이종암시인과의 대담
관리자 | 조회 103
대표시 15선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하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1시집 『신처용가』(시와시학사,1996)
 
 
 
돌삐가 돼야 되능교?
-처용아내 20(아쟁소리)
 
 
 
지는요, 서방님 연주하시는데 따라
소리내는 악기 아잉교.
지금 구곡간장 끊어지는 이
아쟁소리 안들리능교?
앵앵거린다, 시끄럽다, 카지마고 쫌 들어보이소.
여름밤 저 쏘내기는 지 맴을 쪼매 아는기라.
와 남정네는 풍류남아라야 되능교?
인내들은 와 효부, 열부, 끝내는 망부석카는
돌삐가 돼야 되능교?
용왕님께서는 하마 정신이 오락가락
그네를 타시니더. 이 시대 만끄티
맏미느리인 지는 참 안타깝니더. 진짜니더.
가만 놀미 노래만 하는 배짱이가
잘 사는 기 아인거 아잉교?
 
 
 
 
 
 
 
 
 
 
 
 
 
 
 
-1시집 『신처용가』(시와시학사,1996)
 
 
 
수로부인에게
 
 
 
꽃이
피어나는 것은
아얏!
비명을 삼키다가, 씹어 삼키다 짓는 일순의
슬픈 몸짓이더이다
삼킨 그 아픔을
온몸으로 녹여 꽃대궁에서
실뿌리까지 녹여 새새로 스며들어
사랑의
이슬방울로 거듭 태어나
아침 햇살에 빛날 때 비로소
꽃은
향기가 되더이다
 
 
 
 
 
 
-딛배 바회 갓해 자브온숀 암쇼 노해시고<헌화가>
 
 
 
 
 
 
 
 
 
 
-2시집 『위기의 꽃』(문학동네,2002)
 
 
 
유월
 
 
 
산앵두
종일 해바라기 하다 들켜
낯 붉히며 초록 이파리 뒤 숨는데
아까 입맞춤하려다 따귀 맞은
바람이 가지 후려치고 휙 돌아선다
그 바람에 이미 농익은 이스랏이 후두둑
풀잎이라도 파고든다
점점 달아오르는 유월의 햇살
눈에 보이는 기 없어
어린 모개 열매를 새리찔러댄다, 덩달아
뱀딸기 눈알 새빨갛게 핏발 세운다
밤꽃이 소로소로 비린내를 내려보내면
칡넝쿨들 서로 한 몸띠로 엉켜
숨질 사나분 유월의 산을
씩씩거리며 오른다
 
 
 
 
 
 
-서방님,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폈다가 지는 꽃이라예<휴화산>
 
 
 
 
 
 
 
 -2시집 『위기의 꽃』(문학수첩,2002)
 
 
 
殉葬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무덤은 막무가내 폭포의 말씀만 존재하는 곳
죽은 자가 더 힘쓰는 곳
그들의 숟가락이 되라고 강요한다
집은, 세상은 무덤이다
꽃상여 집이다
제 꽃밭 마음대로 못 가꾸는 곳
 
길은 무지막지라는 무기를 드는 길과
간절한 기도가 작은 깃으로 진화되는 길, 아니면
꿈 한 줄기와 무한대의 시간이 새카맣게 탄
어둠, 무균질의 순수가 포옥 삭아야만 하는 길!
아니면, 사월의 고로쇠나무처럼
지 살 찢어 물 다 빼버리는 길
 
눈 뜬다고 빛이 보이는 게 절대 아니다
 
 
 
 
 
-아소 님아,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鄭瓜亭>
 
 
 
 
 
 
 -2시집 『위기의 꽃』(문학수첩,2002)
 
 
 
연꽃
-연蓮 1
 
 
 
바람에 쉴 새 없이 몸 흔들리면서도
 
시린 발 견디며 진흙을 밟고 서서
 
곧 사라질
 
목숨,
 
이슬방울을
 
잠시라도 햇살에 한 번 더 빛나도록
 
손바닥에 소중히 떠받들고 있다
 
 
 
 
 
 
 
 
 
 
 
 
 
 
 
 
-3시집 『불의 눈빛』(시학,2006)
 
 
 
절정
-거울 속 여자 8
 
 
 
청솔이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비슬산 절벽에서
 
시린 가을 여편네 하나
 
근육질의 남정네 허리 꽉 끌어안고 있다
 
 
 
 
 
 
 
 
 
 
 
 
 
 
 
 
 
 
 
 
 
 
-3시집 『불의 눈빛』(시학,2006)
 
 
 
자화상 소묘
 
 
 
  여직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가
 
  씨앗들 여물기도 전 이 빠져 성글어지고 있는
  해바라기 저 여자
 
  눈 몇 번 깜빡이면 그만인 한 생, 쉴 새 없이 자라는 잡념의 뿌리 유리병 감옥에 가둔 채
 
  그런다고 누가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가
 
 
 
 
 
 
 
 
 
 
 
 
 
 
 
 
 
 
 
 
 
-4시집 『바람다비祭』(시학,2009)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4시집 『바람다비祭』(시학,2009)
 
 
 
연꽃들
-유배시편 43
 
1
  제 씨앗들 다 여물어도 한 여름 뙤약볕 이고 밭고랑 매는 굽은 등허리, 흙발, 흙손 평생 죄수 내 어머니의 연못, 콩밭에서도 연꽃은 핀다
 
2
  시난고난 그 허기와 씨받이 압박, 그리고 전쟁 중에도 은장도 칼날 서슬 하나로 배달의 씨앗 지키고 이어온 이 땅의 어머니들
 
3
  깊이도 넓이도 끝도 알 수 없는
  세상 어둠 산을 통째로 이고 지고
  파도와 맞서 깨지고 자빠지느라
  그래도 다시 일어서야 하느니
  이 악물면서
 
  당신 곪아 터진 상처 돌아볼 겨를 없던
  하흔다섯 고사목 내 어머니
  마지막 더 캄캄한 길도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이 땅의 아줌마이길 고집하는
 
  저 산 같은 여자
  이.
  봉.
  화.
 
 
 
 
 
 
 
-5시집 『유배시편』(시학,2011)
 
 
 
씨앗화엄
-유배시편 66
 
 
 
베란다 수챗구멍이
빨간 나팔꽃 한 송이 피웠다
인정사정없이 쓸며
내려가는 햇채물 감당하지 못하는
흙도 없는 그 구멍이
 
한 생명 뿌리 뻗도록
흘러내리는 모래알 조금씩 모아
다독이면서
 
 
 
 
 
 
 
 
 
 
 
 
 
 
 
 
 
 
 
 
-5시집 『유배시편』(시학,2011)
 
 
 
연서戀書
 
 
 
네가 허기진 먹물이라면
나는 목 타는 한지
 
우리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 내야만
붓꽃 몇 송이 피어나리니
 
하늘 열쇠 간직한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으리니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
 
 
 
화경花經
 
 
 
무리 지어 손잡고
비슬산을 오르는 저 구도자들,
벗은 몸으로 겨우내 제 몸 채찍질하더니
무얼 깨달아 저리도 환히 세상을 밝히는지
 
꽃이라고 다 참꽃은 아니다
봄바람 남실남실
연분홍보라 화경花經을 읽는다
그 향기에 젖어
대견사 새 법당 풍경을 흔들어 깨운다
 
풍경 소리 새침하게 날아올라
하늘 운판 깨져라 두드린다
정작 깨지는 건 바람 소리, 그 깃털들,
떨어진 그 깃털들이
진달래 꽃잎 위에 야단법석이다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
 
 
 
화사등선花蛇登仙
-전등사 3
 
 
  사랑이란 스쳐가는 바람결 같은 것
 
  천년 시간을 전등사의 서까래 들어 올리도록 발가벗겨 쪼그리고 앉혀진 몸
  눈바람이 몰려와 칼끝으로 빗금 그어 놓거나 꽃바람이 애무하다가 찰싹 뺨을 때리기도 한다
 
  햇발은 그 분홍빛 살결 얼렸다가 녹였다가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어둠 속에 가둬 버린다 법당의 염불 소리는 처승처럼 아스라이 들리고 생밤을 깨물며 돌아다니는 도깨비들과 어울리면서 제 몸에 박ㅎ니 가시들을 뽑는다
 
  이 갈며, 알록달록 고운 무늬로 문신을 그려 시시로 풍화되는 몸을 길들인다 드디어 몇 천 번의 허물벗기로 거듭난다 나부상의 나무껍질에 갇힌 속 살결 되살아나고 이젠 주모의 솜털 하나하나 눈을 뜬다
 
  추녀 밑 꽃뱀의 전생 모든 인과 벗어두고
  지글거리는 지옥의 혀 끊어버리고
  한 마리 저승새로 날아오르려 한다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
 
 
 
풋울음 잡다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당하고
  수천 번 두드려 맞는단다
  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사 끌어안고
  재 넘어 홀리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로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링 징하게 터녀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
 
 
 
 
 
 
[시인과의 대담]
 
 
◎ 이종암 : 정 숙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 기관지 ≪건달바≫ 특집1에 선생님을 모시고 제가 대담을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생님은 저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선생님을 가까이서 처음 뵌 것은 2000년 쯤, 대구교대 대강당에서 가졌던 전국 작가대회(영호남문학인대회) 때였던 것 같습니다. 경북에서 안상학 시인과 제가 시 낭송을 하였고, 대구에서는 황병목 시인과 정숙 시인께서 시 낭송을 하셨지요? 그 때 정 숙 시인께서 봄날의 수양버들가지 봄바람에 휘날리듯 낭송하는 모습이 아직도 제 기억에 남습니다. 혹여 그날 밤에 전국의 시인들 앞에서 낭송했던 그 시 제목을 기억하시는지요?
 
● 정 숙 :제 첫 시집 신처용가 중에서 휴화산이라예? 아닌가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화끈거립니다. 그 당시 처용아내라며 여러 전국행사에서 많이 낭송했었지요. 시력이 높은 분들께서 주목을 많이 해주셔서 무척 감사했고 또 당황하기도 했었지요.
 
◎ 이종암 : 정 숙 시인의 이름은 필명(筆名)이지요? 본명이 정인숙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필명을 쓰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선생님은 1991년 불혹을 훌쩍 넘긴 조금 늦은 나이에 ≪시와시학≫으로 등단합니다. 등단 시절과 문학 청년기의 정 숙 혹은 정인숙의 삶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 정 숙 : 아시겠지만 정인숙이 너무 유명한 이름이어서 어느 시인과 의논해서 등단하면서 ‘인’을 빼버렸지요. 그런데 막상 정 숙이 더욱 흔하고 유명하더군요. 시비동산에도 절 마당에도 군 복도와 병원에도 정 숙, 정 숙. 유치원 다니던 외손자 친구가 ‘네 외할머니 진짜 유명하신가봐! 절 화장실 가는데도 정 숙이란 이름이 많이 쓰여 있더라.’해서 웃었지요. 언젠가 오세영 선생님께서는 ‘중간의 인을 버리지 말고 숙을 버렸으면 정 인이란 이름이 더 좋았을 텐데’ 말씀해주셔서 한바탕 웃기도 했었지요.
 
청년기엔 대학에서 김춘수선생님이 강의를 하셨지만 무의미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따라다닐 줄 몰랐고, 국어교사를 하면서도 막연하게 소설에 대한 꿈만 가지고 있었지요. 제 꿈은 멋진 며느리 되는 거였어요. 참 바보처럼 그렇게 맏며느리가 되고 4대가 한 집에 살면서 나를 다 죽이겠다고, 말 많은 가정부도 내 보내고 백서른 평 적산 가옥에서 딸딸이와 몸빼이로 하루 스무장의 연탄을 들고 아궁이에 불 때느라 종일 동동거리다가
 
그러다가 어느 날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그 노래가 자꾸 입 속에서 뱅뱅 돌기 시작했어요. 시집살이 15년 만에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이명숙 시인의 권유로 대구문학아카데미에서 시 배우기 시작했지요. 물론 시부모님도 같이 살았지요. 그 때도 소설 배운다고 갔어요. 자아가 눈뜨면서 어릴 때 친정아버지께서 장덕조 같은 소설가가 되라는 말씀이 잊어지지 않았어요. 근데 신경림의 ‘갈대’ 라는 시를 박주일 선생님의 낭송으로 듣고 ‘아하, 시도 한 편의 소설이구나!’ 깨닫고 시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1991년 멋모르고 우리문학에 등단했다가 1993년 다시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지요. 두 번 등단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 공부를 더 한다는 점에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어느 시에서 처용아내를 만났고, 화냥년이란 그 구덩이에서 처용아내를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에 경상도 남자들의 속성을 수집하기 시작했지요. 그 당시 유명했던 ‘최불암 시리즈’가 나올 정도로 점점 남자들의 힘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이유를 따졌어요. 1시집 <신처용가>의 모델은 더 옛날 친정 고모부님 두 분이지만 천 구백 구십 년대의 뉴스에서 나타난 시대 상황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나타난 거지요.
 
◎ 이종암 : 선생님! 문단에서 ‘처용아내 정 숙’이라는 닉네임이 불려진 것이 1시집 『신처용가』(시와시학사,1996)를 펴내고부터입니까? 시집 전체가 ‘처용아내’ 연작시 86편으로 수록되어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 정 숙 : 예, 그렇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 자신이 처용아내라고 소개를 했었지요. 신라 ‘향가’의 처용가 시 한편으로 처용아내 연작시 시집 한 권을 낸 거지요. 처용아내가 역신과 바람피운 게 아니라, 만약 외간을 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소설 쓰는 기분으로 스토리가 쭉 이어졌습니다. 결말은 처용씨들이 칼을 버리고 방탕했기 때문에, 신라 시대 통일을 꿈꾸던 그 칼이 이제 여성의 손톱 가는 칼이 되어 암탉들이 시끄럽게 울어야 잘 사는 세상이 왔다고, 그래도 툭수바리 된장처럼 구수하게 같이 화합하자는 내용입니다.
 
◎ 이종암 : 1시집 『신처용가』는 ‘처용아내’ 연작시 86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시인이 가장 애송하는 시편은 무엇인지요? 저를 포함한 일반 독자들은 ‘처용아내 2’의 「休火山이라예」를 제일 많이 기억할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시집 『신처용가』로 시극이나 시낭송회도 많이 가졌지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정 숙 : 예. 실제로 처용아내 1 ‘웬생트집’이 처용가의 패러디로 김재홍의 현대시 백년사에 수록되어 있지요. 특히 ‘휴화산이라예’를 즐겨 낭송하고 고 조병화 선생님 김남조 선생님이 그 낭송을 무척 좋아하시지요. 그리고 이 두 편과 ‘처용가’만 있으면 어디서든 누구라도 즉석 시극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 많은 시인들이 역신으로, 처용으로 출연을 하셨지요.(웃음)
 
시극을 처음 무대에 올린 것은 1990년 제가 대구문학아카데미 회장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 행사에서 김재홍, 최동호, 정호승 선생님을 모시고 수능시험이 끝난 경산여고 강당이었습니다. 연극 연출가이신 김태석 선생님께서 잠깐 지도해주셨지요. 발표한지 거의 이십 오년이 지난 지금도 시극으로, 낭송으로, 마당극으로, 2010년엔 세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성공적 개최를 위한 대구 시의원들 후원으로 이병훈, 최경자 낭송가의 연출로 정식 무대에서 공연하고, 2019년 지난여름은 대구 칼라풀 축제에 참가하기도 했으니 저로선 감회가 새롭고 그 열정이신기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 시하늘 행사에서 누가 ‘그 열정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었을 때 얼른 ‘책임감’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 나 보이거나 유명해 질려 고 몸부림치는 게 아니고 내 시와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처음 등단했을 때 평론가이신 김재홍 교수님께서 시의 프로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 국어문학과를 거친 시인의 특성을 살 릴 수 있는 게 무얼까 곰곰 생각했었지요.
 
어쨌거나 신처용가 연작시를 쓸 때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부유하고 고상해 보이는 여성분이 쓰는 경상도 사투리, 어디서든 사투리를 들으면 바로 그 단어로 시를 썼지요. 시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시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이종암 : 정 숙 시인의 1시집 『신처용가』를 두고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는 시집 해설에서 “이 연작시들은 처용의 아내를 시적 주체 또는 시의 화자로 하여 오늘날 이 땅에서 아내의 심리 또는 여성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남성 위주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과 함께 진정한 인간해방의 길을 모색하고 있어 주목에 값한다.”라며 상찬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 시인들의 첫 시집 가운데 정 숙 시인의 『신처용가』만큼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은 시집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 여자와 아내가 받아야 했던 고초의 리얼리티와 내면 심리의 거침없는 표출의 힘은 정숙 시인을 대신하는 처용아내를 시적 화자로 내세우고, 입말의 경상도 사투리를 한껏 살려 현장성과 사실성을 드높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인의 생물학적 나이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서방님 늙고 빙들믄 누가 살피겠심니꺼,/시든 꽃도 꽃이라예./심 좋을 때 잘해 주이소. 예?”(「벌씨로?-처용아내 67[호랑이 우화]」 같은 농염한 성적 갈구의 언표는 20-30대의 아가씨가 아니라 지천명을 바라보는 아줌마의 것이라야 마땅한 것입니다. 정 숙 선생님,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 정 숙 : (웃음) 맞습니다. 시에서 가야금 연주, 대금 연주나 해금 연주 외에도 전체적으로 성적인 표현이 많았지요. 그 땐 남편과도 ‘제발 눈 좀 맞춰 보입시더’ 그런 심정이었지만 이젠 그 상황이 거꾸로 되었지요. 휴화산이 활화산이 되어 어르렁 거리니. 참 용감했지요? 시어른들이 보시고 무척 놀라셨을 걸 생각하면 죄송하기도 합니다. 그 모티브나 대상이 남편도 아니고 친정 고모부님들이었는데 진작 설명해드리지 않은 것이 후회됩니다. 지금도 남편은 ‘내가 처용입니다’ 하고 외치기도 하지요.
 
◎ 이종암 : 조금 전에 저는 정 숙 시인의 1시집 『신처용가』의 성과를 이야기 하면서 살아있는 입말의 경상도 사투리를 언급하였습니다. 경상도 사투리 사용을 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꼭 경상도 사투리여야만 시적 의미가 불끈 살아나는 20편 정도의 1부만 그렇게 하고, 나머지 2,3,4부의 시편들은 표준어로 시작(詩作)했다면 오히려 정 숙 시인이 의도했던 바가 더 잘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정 숙 : 그건 전체 분위기가 깨어지니까 안 되지 않을까요? 시인들 전국 모임에서
전라도 사투리는 국악에서 창으로 구수한 소리가 되지만 경상도 사투리는 안된다고 하시던 송수권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제게 악수를 청하면서 등을 두드려주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땐 사투리로 쓰는 게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고 조병화 선생님께선 ‘정 숙 시인은 계속 사투리로 시를 쓰세요.’하셔서 그 다음 시집을 낼 때 부담이 되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 이종암 : 선생님 나이 55세에 펴낸 2시집 『위기의 꽃』(문학수첩,2002)도 아주 독특한 시집입니다. 1시집 『신처용가』 86편 모두가 ‘처용아내’라는 부제가 붙은 시편들로 채워져 있는데, 2시집 『위기의 꽃』에 실린 66편의 시들은 부제(副題)가 없고 시 말미에 향가나 고려속요 또는 선생님 1시집 속의 시구가 1-2행 정도 삽입되어 있습니다. 굳이 시집 전편의 작품들에게 그런 시적 치장 혹은 장치를 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 정숙 : 『위기의 꽃』은 수필 같은 시를 쓰겠다고 시작했지요. 사실 1시집 [신처용가]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도 놀랐고 또 내 시는 왜 다른 시인들의 시들과 다른가? 내심 고민했었습니다. 다른 점 그것이 좋은 것인데 그 땐 넘 순진했었던지 두려웠어요.
그래서 전국 시인들과 처음으로 우포늪에 가서 쓴 시가 [우포늪에서]란 시지요. 지금도 낭송가들이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미루나무와 담쟁이덩굴] 등을 쓰면서 삼국유사나 고려가요와 연결시켜보고 싶었어요. 지금 보면 복잡해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제 시집은 좀 더 새로운 시어를 찾고 잃어버린 고운 우리 말과 고어를 쓰느라 힘이 더 들기만 했지 반응이나 효과는 없었어요. 발간 당시는 시집『위기의 꽃』에서 사투리로 된 [압력솥]이란 시가 대학 수업시간에 들었다며 학생들의 전화가 오기도 했었어요. 『신처용가』도 대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해야 된다며 시집을 찾는 전화를 많이 했었지만 그런 장치에 후회도 되었는데 지금 향가를 소재로 한 송재학 선생님 시집을 보니 좀 더 삼국유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봐야겠다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 이종암 : 선생님 2시집에 수록된 「수로부인에게」라는 시, “꽃이/피어나는 것은/아얏!/비명을 삼키다가, 씹어 삼키다 짓는 일순의/슬픈 몸짓이더이다/삼킨 그 아픔을/온몸으로 녹여 꽃대궁에서/실뿌리까지 녹여 새새로 스며들어/사랑의/이슬방울로 거듭 태어나/아침 햇살에 빛날 때 비로소/꽃은/향기가 되더이다”를 보면 꽃이 피어나는 것과 그 꽃이 향기가 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저는 위 시를 정 숙 시인의 지향하는 시와 시세계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어떻습니까?
 
● 정 숙 : 역시 안목이 높으시네요. 시인이 되기 전까진 그저 꽃이 예쁘다고만 할 줄 알았지요. 그러나 모든 사물의 근본 뿌리를 찾아 내려가는 습성이 길러지고 보니 겉이 아닌 속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연작시를 쓰면서 한 가지를 계속 따져 내려가면서 사유의 힘이 생겼다고 할까요? ‘이를 갈아라! 삽질을 더 깊이 해라’ 이런 채찍질에 자꾸 시달리다 보니 한 송이 꽃에서 내가 보이고 어머니의 말씀이 들리고 모든 사물의 아우성에 가슴이 찢어지기도 하더군요.
 
다시 말하면 시인의 직관력과 시안眼이 어설프게 반 무당이 되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것이 시인의 길이고 맏며느리의 길이라고 생각했지요.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써 놓고 보니 자신에 대한 각오가 들어있더군요. 제 졸시 ‘우포늪에서’ ‘흰 소의 울음 징채를 찾아’ ‘풋울음 잡다’ 등등, 저 자신도 모르게 제가 지향하는 깨달음의 세계지요. 발견과 깨달음이 있어야 감동을 주는 시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 이종암 : 2006년, 선생님 나이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59세에 3시집 『불의 눈빛』(시학,2006)이 발간됩니다. 시집 속에 수록된 60편의 작품 전편에 부제(副題)가 달려 있습니다. 그 부제가 모르스 부호, 연(蓮), 노을꽃 등도 있지만 주로 불의 여자, 늪의 여자, 벽 속의 여자, 거울 속 여자, 간이 밴 여자, 접시 깨는 여자 형식의 무슨 여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시적 주체들인 이들은 모두 정숙 선생님의 대리 인물인가요?
 
● 정 숙 : 아니라고 해도 결국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시 ‘모르스부호’는 시아버님께서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말씀은 못하시고 맏며느리인 제 손바닥을 꼭꼭 누르시던 모습을 그린 시입니다. ‘접시 깨는 여자’는 시로 고정관념을 깨는 여자지요.
 
그 당시 수챗구멍이 막혔다가 뻥 뚫리듯 시인지 뭔지 우째 그리도 쏟아지던지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그냥 인쇄본 책으로 묶어 놓은 것들이 너무 많아 얼마 전에 깜짝 놀랐어요. 연작시를 쓰면 좋은 점이 주제를 하나 잡고 보면 시를 쓰도록 보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방방 뛰며 작두를 타거나 굿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시라는 마귀에 시달린다는 사실입니다.
 
 
◎ 이종암 : 정 숙 선생님! 좀 왜람된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의 가족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불혹을 넘긴 40대 중반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하여 ‘처용아내’가 된 원인 중의 하나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들 출가시켜가며 산 맏며느리의 신산한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친정 쪽으로 보면 바로 위의 언니가 역시 시인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정경자 선생님이시지요? 친정어머니나 아버지가 시인 정 숙에게 끼친 영향은 없습니까?
 
● 정 숙 :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제게 기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자인 출신인 ‘장덕조’ 같은 소설가가 되어라 그 말씀이 심적 부담이 되어 중 고 시절 한 번도 문예반에 들지 않았어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사진반 아니면 연극반
등 엉뚱한 주변만 맴돌았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아닌 척 하는 그런 심정으로 시간만 보냈지요. 경북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입학시험에 우정에 관한 산문을 쓰라고 했는데 그 때 쓴 글이 사소한 말다툼에 비뚤어진 우정이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사실 반 상상력 반으로 썼는데 대학 신문에 글 내라는 청탁이 몇 번 왔었는데 끝까지 거절했었지요. 그만큼 저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어요.
 
아버지께선 돌아가시기 전 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셨고 친정어머니께서는 옛날 ‘우미인곡’을 외우시면서 아흔이 지나서도 글을 쓰고 싶다고 자기 인생이 소설 몇 권은 될 거라고 하셔서 노트 드리면서 적어 보시라고 했더니 몇 페이지 쓰시다가 항복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엄만 얘기만 하세요. 글은 제가 받아쓸게요. 해서 ‘낙동강’연작으로 옮기기도 했어요. 정경자 시인은 동생인 제가 늘 안스러운가 봅니다. 더 다치기 전에 가만히 죽은 듯 있으라고 몇 번이나 충고하시지요.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다 흙이라 하는 구나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이 시를 인생의 모토로 삼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결혼 15년 뒤에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깊은 늪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하늘이 까맣고 아득했어요.
 
그 때부터  ‘장덕조’ 같은 소설가가 되라는 어릴 때 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계속 들려오고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어요. 시어머님께선 늘 편찮으셔서 식구들이 유리그릇처럼 다루었지요. 그래서 삼십년을 함께 살았고, 돌아기시기 전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씀을 며칠 동안 하셨지요. 돌아보면 친정에서나 시집과 사회에서나 시기와 질시 속에 사는 게 제 사주팔자라는 걸 늦게 깨닫기도 했어요. 전 그런 것들을 침묵으로, 죄의식으로 제 사유의 밑거름으로 만들었고 글 쓰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종암 : 4시집 『바람다비祭』(시학,2009)에 오면 정 숙 시인의 시 세계가 확연하게 다른 빛깔을 보여줍니다. 1시집 『신처용가』, 2시집 『위기의 꽃』, 3시집 『불의 눈빛』에서 보여준 각주와 부제로 가득 채워진 시집 형식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내용적으로도 여성의 뜨거운 몸의 이야기 보다는 내면의 성찰과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노래하는 시편들이 많습니다. 넋두리의 사설과 같은 길이가 긴 형식의 시 보다는 아포리즘 같은 짧고 함축적이면서 명징한 시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정 숙 선생님 시 세계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후반기 시작이 바로 4시집 『바람다비祭』에서 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단절 혹은 한 매듭은 새로운 성장을 의미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는 무엇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까?
 
 
● 정 숙 : 저도 네 번 째 시집 『바람다비祭』가 시집으로 가장 성공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니 시집마다 뭔가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 보이는군요. 그건 좋은 시 한 편을 위해 노력했다는 뜻이겠지요.(웃음) 추억에 젖은 재생상상력이 아닌 좀 더 나은 은유의 연상 상상력의 긴 사설이 아닌 함축된 묘사와 사유가 깊어지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지요. 주위에 유명한 시인이나 스승의 줄을 붙잡고 빨리 유명해지기보다 정말 가슴 울리는 시 한편 써야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어금니 부러지도록 이를 갈았다는 증거기도 하지요. 사실 전 아직까지도 제가 신인인 줄 알고 직진만 하고 있어요.
 
◎ 이종암 : 4시집 『바람다비祭』 맨 첫머리 시편이 “누가 터뜨리고 있는가 바람과 불빛으로 한평생 낡은 내 한 벌 부대자루 속의 숨은 혈관을”이라는 한 행으로 된 「바람祭」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은 함부로 울지 않는다」는 시는 “밤 내내 제 깃털에서 뽑아내는 실로 하늘울음 깁고 있을지언정”에서 보듯, 시 제목을 시 내용의 뒷부분을 끊어내어 처리함으로써 시의 선명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정숙 선생님, 방금 인용한 짧은 시 두 편은 정숙 시인의 시 창작 행위를 함축하는 내용으로 읽어도 되는지요?
 
● 정 숙 : 예. 될 수 있으면 짧게 명징하게 그래서 제가 7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에서 인생‘이란 시를 좋아하지요. 팝핀 현준이 작은 의자를 끌며 춤추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쓴 시입니다.
 
인생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
의자에 끌려다닌다
어린 엉덩이조차 걸칠 수 없는
작은 의자
평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끌려가는
나의 한 생애
 
 
◎ 이종암 : 앞서 말씀드린 두 편의 시 말고도 「시인은, 시인은」, 「암각화」 같은 작품들이 시인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는 시편들입니다. 위 시편들과 「자화상 소묘」를 지나서야 만날 수 있는 시편이 바로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입니다. 4시집 『바람다비祭』의 백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금 이 자리에서 같이 읽어보고 싶습니다.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위 시는 그냥 4시집 『바람다비祭』의 백미만이 아니라 1시집 『신처용가』, 2시집 『위기의 꽃』, 3시집 『불의 눈빛』을 총 결산하는 작품으로 저는 읽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깊디깊은 시 속의 귀한 말씀을 어떻게 전해 들었습니까? 이런 절창(絶唱)을 어떻게 쓰게 된 것인지 좀 알려주십시오.
 
● 정 숙 : 감사합니다. 제 시를 그렇게 열심히 읽어주시다니 제 시 인생에서 ‘첫 남자’로 보입니다. 진짜로 감사합니다.
 
이 시는 낭송가들이 아주 좋아하고 시극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합니다. 이 한편으로도 아버지와 딸의 모습으로 퍼포먼스 한 편 충분히 할 수 있지요. 또 결혼하는 딸에게 보낸 편지 형식이라 더 감동을 주는 것 같아 저 자신도 가슴 뿌듯한 작품입니다. 친정아버지가 더 그리워지기도 하고, 딸로서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한 점 죄송스럽고 후회도 하면서, 살아계실 때 시인이 되어 딸의 시집을 보셨으면 얼마나 기뻐 하셨을 텐데 사실 4시집 『바람다비祭』에서 ‘갈대를 위하여’란 시가 [만해 님 시인상]을 수상했습니다.
 
갈대를 위하여
 
질기고도 약한 심줄 고르느라
지친 날개의 뼛조각들
얼마나 더 잘 말려야
비워버린 그 몸속 길이
바람이 된 영가의 흐느낌이
숨결 깊은 피리소리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란 시가 더 정감이 깊기도 하고 감동을 주는 시라며 독자들이나 낭송가들이 많이 좋아하더군요.
 
언제부턴가 징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시 강의하는 자신이 징채이고 강의를 듣는 분들이 징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또 제 자신이 징이고 그 분들의 반응이 징채가 되어 자신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강의 시간에 그런 말하면 모두 소름끼치도록 전율이 온다는 말을 해줬을 때 자신이 어느 정도 잘 단련된 징수(징잡이) 인가 착각하기도 했어요. 전 강의하는 거나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제 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뒤쫓아 오는 것처럼 숨 가쁘게 시를 쓰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곁눈질 할 여가가 없었어요.
 
◎ 이종암 : 선생님, 5시집 『유배시편』(시학,2011)에는 지금 우리 시대에 유배와도 같은 형극의 삶을 살고 있는 여려 군상들의 삶을 72편의 시로 갈무리 하고 있습니다. 겨울 지하도 노숙자를 비롯하여 뇌성마비 김 씨, 구제역으로 인한 살 처분 풍광, 역전 뒷골목 사창가 여인, 어느 종군 위안부, 나환자, 발가락으로 숟가락을 겨우 드는 장애자,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 아흔 다섯의 고사목 내 어머니, 불운의 멕시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 곱추 난장이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의 삶을 시로 형상화 하여 고발하면서 또 그들의 삶을 위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집 전체가 통째로 유배시편 1에서 72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 숙 선생님은 참으로 배포와 통이 큰 시인이 분명합니다. 이런 기획과 의도를 어떻게 하셨는지요?
 
● 정 숙 : 탄광에 갇힌 칠레 광부 33인의 뉴스를 접하면서 안타까워하다 ‘쪽지와 구멍’이란 시를 쓰면서 유배라는 말이 떠오르고 저 자신도 시라는 유배지에 갇힌 것 같다는 깨달음에 이어 현대인들이 거의 다 유배자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뉴스나 극한 직업을 샅샅이 뒤져가며 연작시를 썼지요.
 
이런 연작시 역시 평론가 김재홍 교수님이 구멍가게가 아닌 백화점 같은, 그곳에 가면 없는 것이 없는 그런 통 큰 시를 쓰라는 말씀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이 선생님 역시 교사라는 직업에, 시인에, 남편, 아버지 그런 의자나 직책에 유배된 시인이지요. 이처럼 연작시를 쓸 때는 언제 어디서나 그 방면의 모습들이 아주 가까이서 들리고 보이기 시작하지요. 연작시를 쓰며 한 가지 주제로 삽질을 하다보면 시 쓰는 일이 신나고 즐겁습니다. 집중하는 그 기간 동안은 무엇으로 시를 쓸까 막연하지 않거든요.
 
◎ 이종암 : 종심(從心), 고희(古稀)를 몇 년 앞두고 펴낸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는 무르익은 정 숙 시인 언어의 춤사위가 한껏 펼쳐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시집을 열심히 읽고서 ≪대경일보≫ 2016년 4월 18일에 선생님 시 「화경花經」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혹여 기억나시는지요? 그 소개문을 여러분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시집 『신처용가』를 펴내면서 스스로 ‘처용 아내’라 말하는 정 숙 시인의 7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를 읽는다. 질펀한 ‘에로티시즘의 안과 밖’(이태수)으로 세상을 노래한 것은 이전 시집부터 연속선상에 있는 정숙 시인의 특징이다. 등단 25년을 지나 칠순을 눈앞에 두고 펴낸 이번 시집에는 내용과 형식에서 그 완숙미(完熟美)를 한껏 보여주는 작품들이 여럿이다. 표제시「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를 비롯하여 「연서連書」 「화경花經」 「수묵화 한 점」 「하관」 「풋울음 잡다」 등이 예의 시편들이다. 이 시집으로 그는 지난 2015년 제25회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시「화경花經」은 진달래(참꽃) 군락지로 유명한 대구의 비슬산과 그 정상의 대견사지 터에 새로 들어선 대견사 법당의 풍경, 그 아래 진달래 꽃잎으로 마련한 야단법석(野壇法席)의 큰 노래이다. “비슬산을 오르는 저 구도자들,” “연분홍보라 화경花經”의 참꽃을 “봄바람 남실남실” 읽을 때 번진 “그 향기”가 “대견사 새 법당 풍경을 흔들어 깨”우고, 그것이 또 “하늘 운판”과 “바람 소리, 그 깃털들”이 “진달래 꽃잎 위에 야단법석‘으로 이어지고 펼쳐지는 활달한 그림이 참 좋다. 정숙 시인의 시를 통해서 “하늘 열쇠 간직한/꽃과 열매”(「연서連書」)를 보니 그게 또한 경(經)이로다. 우리는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풋울음 잡다」) 나올 정 숙 시인의 다음 시집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정 숙 선생님, 마음에 흡족하였는지요? 혹여 선생님 시를 잘못 읽은 것은 아닌지요?
 
● 정 숙 : 그 글을 읽고 감탄했지요. 역시 이 종 암 이란 시인이 큰 물건이라고, 언제 차 한 잔 나누며 시를 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요.
 
◎ 이종암 : 제가 대표시 15선에 수록하지는 않았지만 7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에서 주목한 시편이 “노랑나비 한 마리 칼날로 얼음 긁다가 종내 춤을 추면서 얼음을 연주한다 얼음벽이란 주먹다짐으로 무너뜨리기보다 김연아처럼 사뿐사뿐 그림 그리면서 종달새 울음소리로, 춘란의 향기로 미소 지으면서, 세상의 못 박힌 사람들 가슴을 녹여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듯이,”의 「얼음을 연주하다」입니다. 위 시는 지금 선생님께서 걸어가고 있는 시의 보폭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은 시절의 처용아내의 숨질 거친 소리가 아니라 대상과 사물의 사태를 끌어안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 정 숙 : 예. 전 언제나 중용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화합을 위해 이 편 저 편 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사실 늘 손해를 보지만 어느 누구도 왕따 시키기에 동참 할 수 없었어요. 늘 똑바로 서서 옳고 그름을 제 나름대로 판단하면서 서로 화합시키고 싶었어요. 고집스레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을 삼갑니다. 나중 천천히 슬쩍 짚고 지나가지요. 같이 애달거나 화를 내지 않기 때문에 속이 터지는 사람도 가끔 있지만 딸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 어쩔 수 없었어요.
 
◎ 이종암 : 정 숙 시인의 후기 시집들에서 가려 뽑은 “핏발 세운 저 가시는 날개의 뼈대가 아닌가”(「장미, 날개 파닥이다」),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흙발, 흙손 평생 죄수 내 어머니의 연못, 콩밭에서도 연꽃은 핀다”(「연꽃들-유배시편 43」), “사랑이란 스쳐가는 바람결 같은 것” (「화사등선花蛇登仙-전등사 3」) “정취사 아래 펼쳐진 꼬부랑 고갯길이/파도를 업고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잠든다”(「정취암 단하정사에서」),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지 않는다/봄날이 오지 않는다”(「풋울음 잡다」) 등의 시구들은 깊이와 아름다움이 함께 들어있어 제가 훔쳐가고 싶도록 탐나는 것들입니다. 다시는 지천명 아래의 ‘처용아내’로 돌아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 정 숙 : 감사합니다. 심심해서 이제 처용여자로 가려고 하는데 어쩌지요? 처용아내는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며 고집부리다가 한 세월 다 갔으니 이젠 처용의 여자(애인)가 되어 사랑에 빠지고 싶은데 이미 ‘처용여자’ 연작으로 두 편을 ‘문학청춘’에 발표했는데, 그리고 새 시집 <연인, 있어요‘> 가 곧 ’시산맥‘이란 잡지에서 (감성기획 공모전에 당선 됨)출간될 텐데 우야지요?
 
 
◎ 이종암 : 미리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제가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맨 끝머리에 수록된 시 「풋울음 잡다」입니다. 이 시는 4시집 『바람다비祭』 맨 끝머리에 수록된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와 비견되는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가 딸아이에게 내려가는 말씀이 중요한 시적 전언이고, 그 내용도 울음을 제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시집 『바람다비祭』의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가 정숙 시인이 기도 속에서 혹은 꿈결에서 아버지의 음성을 접하고 쓴 것이라면, 6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의 「풋울음 잡다」는 아버지의 음성이라기보다 이순(耳順)을 지나 종심(從心)의 연륜에서 일궈낸 정 숙 시인의 삶의 이치와 진리를 딸에게 전하면서도 자기 내면에게도 타이르고 있는 것으로 같습니다. 시인 정 숙 선생님께서 시력30년에서 일궈낸 최고의 작품으로 저는 「풋울음 잡다」를 들고 싶습니다. 절창(絶唱) 「풋울음 잡다」를 다시금 여러분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풋울음 잡다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당하고
  수천 번 두드려 맞는 단다
  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사 끌어안고
  재 넘어 홀리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로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 정 숙 : 어머나 진짜 족집게 도사시네요. 자기 내면을 다스린다는 말이 딱 맞는 말씀이네요. 진정한 시인과 예술가 그리고 맏며느리의 길이기도 하지요. 이 시는 류자효 시인의 <시 읽어주는 남자>에 수록된 시인데, 어느 날 심심해서 폰에서 검색을 했지요. 특히 징에 관한 글을 찾아보다가 ‘풋울음 잡다’란 말이 나왔어요. 징을 제작할 때 일차적으로 제자가 대강 형태만 제작한 것으로 소리가 잘 나지 않는 것을 말하고, 고수 징잡이가 다시 두드리고 담금질하여 징하게 울리는 소리가 재울음이라는 설명을 읽고 바로 시로 썼지요.
 
그 전에도 사전을 뒤적거리다가 ‘홀아비 좆’ 이란 단어를 보고 그 시어를 쓰기 위해 ‘봄비’ 라는 시를 썼지요. 그 시가 조선일보에 김수복의 ‘봄비’와 같이 실리기도 했었는데 ‘홀아비 좆’ 은 욕이 아니라 농기구의 일종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나중 문무학 선생님이 방통대학 시험문제에 출제하기도 했지요.‘ 홀아비 좆’의 뜻을 쓰라고. ‘봄비’라는 시는 2시집 <위기의 꽃>에 수록되었습니다.
 
◎ 이종암 : 정 숙 선생님! 대담을 일찍 준비하고 작업해야 했는데, 연말이라 여러 일들이 겹쳐서 이제야 늦게 대담을 하게 된 것을 해량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대담 준비를 하면서 선생님 시집 전부를 다시금 곰곰 읽으면서 제 시 공부에 많이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 완숙미의 접어든 정 숙 언어의 춤사위를 더 많이 보여주시고, 우리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에 큰 어른으로 오래오래 도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긴 시간 고맙습니다.
 
 
● 정 숙 :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이 많은 시집 외에도 얼마 전에 출판한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시선]까지 읽어주시고 감사합니다. 어른 노릇을 못해 죄송합니다. 그 동안 시와 산문 또 시집해설까지 열심히 쓰고 각 도서관과 대구문학 아카데미 그리고 인터넷으로 전국에 제자를 두고 가르치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위 분들의 격려의 말씀과 토닥임으로 도움이 컸습니다.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시가 고통이긴 하지만 시인으로 행복했습니다. 3시집 <불의 눈빛> 출판 기념회 때는 전국의 제자들이 대구에 모여 출판기념회를 열어주기도 했고 영상시도 홈페이지도 만들어 운영해주어 거기 영상이나 음악에서 그 동안 책임과 의무에 굳어버린 감성과 여성성을 깨워주기도 했으니까요.

2020년 봄에 출간될 8시집‘연인, 있어요’도 관심 있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오니 어느 후배가 ‘정 숙’ 이란 시인의 시를 잘 이해해 주고 얘기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자주 하게 됩니다. 현불문의 고문님과 이사님들 그리고 이종암 시인님과 회원님들 사랑하는 여러 제자님들께 정 숙의 시를 잘 부탁드립니다. 특히 제 1회 특집대담으로 조명을 해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