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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 2018-06-04
아트코리아 | 조회 345
6월입니다. 어느새 벌써 한 해의 허리께에 와버렸다고 화들짝 놀라다가도 한참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한 달, 우리 역사 속에서 유월은 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서로에게 상처로 기억되는 때이기도 하지요. 특히 올해는 민족적인 갈등의 중심이었던 남북문제가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어떤 정치적인 이슈보다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지요. 그것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리 외면하고 싶어도 역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개인은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국가에 의해서 개인의 운명이 규정되어지는 때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 시어머니는 전쟁미망인이십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까봐 일주일이나 헛간에 숨겨두었던 열일곱살 큰딸을 이웃마을 가난한 총각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집을 보냈답니다. 그런데 안도의 한숨을 내려놓기도 전에 6·25 전쟁이 터지고 그녀의 남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던 거죠.

남매와 늙은 시부모에다가 어린 시누이 셋은 고스란히 혼자 남은 그녀의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긴 세월을 다 말할 필요는 없는 일이고요, 왜 이렇게 개인사적인 경험담을 나열하는가 하면 진정성 있는 글쓰기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모두가 호된 시집살이를 표현하려고 할 때, 저는 상주 낙동 출신 시어머니 김덕순 여사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던 거죠. 그 속에는 한 산골 소녀의 소박한 꿈이 있었고, 일제 강점기의 치욕스러운 삶이 있었고, 그 치욕의 송곳을 겨우 피했는가 싶었는데 전쟁의 포화 속으로 사라진 남편을 대신한 한국여인들의 바윗덩이 같은 삶이 담겨 있었습니다. 미워하기보다는 가슴 아픈 전쟁 미망인의 한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새벽이슬에 젖은 채, 어머니 맨발로 돌아오신다/ 검은 섬 하나 껴안고 잡풀처럼 쓰러지신 어머니/ 유월, 그 푸른 새벽을 돌아누우신다// 산등성이를 타고 뭉클뭉클 피어오르는/ 찔레 덤불 속, 어머니/ 하얗게 은가락지로 반짝이다가/ 낡은 고무신 벗어놓고 길 떠나신다/ 발끝에서 기억 속의 길이 무명 옷고름처럼 풀어진다// 어머니, 이 땅의 어머니이신 어머니/ 이젠 그만 좀 잊으세요/ 긴 겨울밤보다 짧은 여름밤이 더 무서워요/ 해마다 유월이면 무너지는 그 어깨, 핏발 선 그 눈빛/ 그럴수록 자꾸만 되살아나는 아버지// 모두가 저렇게 태평한데/ 어머니의 유월만 등 시퍼렇게 살아있으면 어떡해요/ 유월은 내년에도 그 다음에도 새순처럼 자꾸자꾸 돋아날 게 뻔한데/ 다시 슬픔으로 옷 갈아입으시는 미망 속의 저 어머니들.’ (졸시 ‘유월’ 중) 

글을 쓰려고 할 때 작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바탕에는 ‘인간’이라는 가장 중심적인 화두가 깔려있어야 합니다. 사회현상을 간과하지 않고 역사인식을 깊이 새기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글로써 나타낼 수 있는 첫 번째 사유조건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글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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