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8    업데이트: 21-07-26 12:31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쓰려고 하자
아트코리아 | 조회 554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쓰려고 하자


작가 파울러는 글을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이마에 피땀이 맺힐 때까지 그저 텅 빈 종이를 바라보고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어떤 소재를 취했으면 집중적으로 몰입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또 그 무엇(내용)과 어떻게(형식) 때문에 쩔쩔매는 학생들에게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은 ‘똥누듯이 쓰라’고도 했답니다. 이 말은 억지로 만들거나 짜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쓰라는 말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말은 쉽지만 어디 글쓰기가 그렇게 만만한 일인가요. 

첫째,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쓰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책에서 본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경험에 속하지만,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직접적인 경험만큼 생생하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요. 남의 입을 통해서 빠져나온 말을 받아 적다보면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게 될 우려가 있고, 책으로 얻는 지식과 지혜를 말로 옮겨 적다보면 현학이나 지적 허영의 늪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둘째,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쓰는 일입니다. 시인 이정록의 말을 인용하면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전화를 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 그걸 쓰라고 한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고 한다. 단언컨대 좋은 글은 자신의 울타리 안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 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이런 생각을 ‘문지방 삼천리’라는 말로 기발하게 압축했습니다. 

셋째는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화려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것을 쓰라는 말도 있지요. 화려한 장미나 백합보다 들꽃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내 속의 상처와 흉터와 광기를 샅샅이 뒤져서 검색하고 꺼내서 말리고 다독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진실한 아름다움은 감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어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보다 그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나의 경험 중에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 것을 우리는 ‘정서적 경험’이라고 구분할 수가 있겠는데요. 여기서 또 하나의 함정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내가 무슨 일을 했는가, 어떻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는가에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소재를 해석하는 능력, 즉 상상력의 도움 없이 어떤 소재에 매달리는 것은 소재주의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특별히 경계해야 할 문제입니다. 

소재주의는 목적의식이 지나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말라.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쓰는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쓸 것이며 또 어떠한 각도에서 세계를 볼 것이며, 당신이 어떠한 태도로 이 세계를 포용할 것인가에 있다’는 중국시인 아이칭의 말은 의미가 있습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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