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8    업데이트: 21-07-26 12:31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창의적인 전개방법에 대하여
아트코리아 | 조회 889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창의적인 전개방법에 대하여

여기 한 켤레의 ‘구두’가 있습니다. 시인은 그 것을 바라보며 글을 씁니다. 

(a)‘항로 없는 이 배는 어디로 가나?/ 지금은 시인의 애수를 싣고/ 눈물을 흘리려 한강으로 나가는 길이랍니다.// 선장들이 상륙한 뒤면 배는/ 마루의 부두에서 말없이 다음의 항행을 기다립니다./ 온순한 강아지여.// 길가의 구두 수선인의 독크야드에서까지 거절을 당하면/ 상처를 걸머진 그러나 한때는 화려하던 에나멜 혹은 키드의 군함들은/ 그리스도의 관대한 마음을 가진 쓰레기통이 삼켜버립니다.’

(김기림의 시 ‘구두’)

이 작품은 ‘구두=배’라는 시적 발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우리 현대시에서 이런 생각을 가장 먼저 시도한 시인은 김기림 시인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 발상을 논리적으로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장은 구두 주인이 되고, 마루는 부두가 되고, 구두 수선방은 조선소(dockyard)가 되는 것이지요.

이 때 배·선장·항행·부두·독크야드 등을 비유기표라고 하는데, 그것들은 비유기의 즉, 구두·사람·외출·마루·구둣방으로 비유체계가 형성되면서 너무 공식적이고 기계적인 전개를 하고 있어서 뜻을 알고 나면 감흥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b)‘신발장 속 다 해진 신발들 나란히 누워 있다/ 여름날 아침 제비가 처마 떠나 들판 쏘다니며/ 벌레 물어다 새끼들 주린 입에 물려주듯이/ 저 신발들 번갈아, 누추한 가장 신고/ 세상 바다에 나가/ 위태롭게 출렁, 출렁대면서/ 비린 양식 싣고 와 어린 자식들 허기진 배 채워 주었다/ 밑창 닳고 축 나간,/ 옆구리 움푹 파인 줄 선명한,/두 귀 닫고 깜깜 적막에 든,/ 들여다볼 적마다 뭉클해지는 저것들/ 살붙이인 양 여태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재무의 시 ‘폐선들’)

이 시는 신발을 배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 즉 ‘신발=배’라는 시적 발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버릴 때가 다 된 낡은 신발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김기림의 시와 유사하지요. 그러나 이재무 시인은 평범한 일상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표현을 통해 기본적인 발상을 설득력 있게 만듦으로써 시적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발상 자체가 반드시 새로워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따지고 보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발상 자체가 새롭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신기한 발상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것에만 집착하면서 언어유희에 치우치거나 관념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면 글을 쓰는 사람의 사유를 바탕으로 일상 속에서 얻은 감동이나 깨달음을 시적 발상으로 끌어안아야 시적 전개에 부자연스러움이나 억지스러움이 생기지 않게 되고 진정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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