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    업데이트: 12-10-19 12:50

시가 있는 아침

어디 있을까, 그 소나무는
강문숙 | 조회 825

<2>

어디 있을까, 그 소나무는

 

 

나는 처음 알았다

그 많은 소나무 중에 섭씨 80도가 넘어야

솔방울 속의 포자가 벌어져 번식한 다는 걸

 

온 산이 붉게 타면서

노루와산토끼와청설모와멧돼지와오소리나무와너구리와

개똥지빠귀와소쩍새와노랑부리저어새와맷새와때까치와

엉겅퀴와산나리와구절초와원추리와며느리밑씻개와

장수하늘소와쇠똥구리와송충이와쥐며느리들이

좌왕우왕, 검은 숲의 화석이 될 때

화염을 뚫고 반짝이는 생명의 알갱이가 휙, 휘익

 

때때로 너무 절박하여, 나의 삶이

나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 가듯이

 

신이 감추어둔 비장의 카드

불타기 전에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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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극단적인 절망 속에서도 딛고 일어나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 아름다움이란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차가운 얼음 조각을 손목의 정맥 위에 얹었을 때처럼 쨍한 감동을 준다. 재앙이라고까지 불리는 대형산불이 난 적이 있다. 거대한 검은 잿덩이가 된 산을 지나며 가슴 아파 고개를 돌리고 말았는데, 이듬해 봄에 파란 고사리순을 내미는 것을 보고 엎드려 입맞추고 싶었다. ‘생명에의 외경’이란 그런 때를 두고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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