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    업데이트: 12-10-19 12:50

시가 있는 아침

안개
강문숙 | 조회 806

<5>

안개

 

 

초겨울 아침

안개가 풀리면서 길도 풀린다. 날마다

하늘은 미세한 그물을 깁고

안개는 사람들의 무딘 코끝에서 이끼처럼 자란다.

보이지 않는 말(言語)들이

안개 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길 위에서의 싸움이 부쩍 늘었다.

저마다 얼굴을 가린 채,

목소리만 버섯처럼 붉게 자란다.

서로 안개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들 탓에 안개가 낀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돌들이 하얗게 타오른다.

타면서 가늘게 휘파람 소리를 내기도 한다.

빨간 가방을 멘 아이가

안개 속을 지나간다. 잠시 후

낯익은 여자가 헤엄치듯 빠져나온다.

수없이 분열하는 하얀 불꽃 사이를

벗은 나무와

얼굴 없는 사람들과

돌아앉은 집들이 떠다닌다. 때론

기운 하늘마저도 허우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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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신춘문예 공모가 시작되었다. 12년 전, 신춘문예 당선작을 꺼내놓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이맘때쯤이면 안개가 소읍을 점령하고, 길을 지워놓는다. 사람들은 모두가 남의 탓으로 돌린다.

안개 속을 걷다보면 가늘게 휘파람 소리가 나는 듯 하다. 수없이 분열하는 물방울의 분자가 저마다 내는 소리가 흘러 다니기 때문일까. 기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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