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    업데이트: 12-10-19 12:50

시가 있는 아침

겨울 나무
강문숙 | 조회 848

<8>

겨울 나무

 

 

물 속 같은 고요에 이끌려

마당가에 내려선다.

지그시 누르면 부드럽게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마를 풀잎들.

사방에 은단향 가득하다.

까칠한 모서리를 둥글게 감싸는 안개

겨울나무들 가늘게 실눈을 뜨고 내려다본다.

꿈속을 더듬는지, 가끔 부르르 떨며

작은 물방울들을 터뜨린다. 온몸으로

즐겁게 부서지는 물방울들의 우주!

이제는 노래부르고 싶다.

저 푸른 대기속을 둥둥 떠다니며

부딪히는 것마다 끌어안고 싶다.

발끝에 무수히 차이는 길모퉁이 찌그러진 돌

싸늘하게 식은 낙엽들

낮게 허리 구부려 입맞추고 싶다.

 

이 겨울 끝나는 날,

자세 흐트러지지 않은 저 나뭇가지에

뿌리부터 타고 올라가

연둣빛 잎새로 피어나리라.

투명한 햇살 끌어당겨

잎잎이 뒤척이며 물들이던 나무들,

마당가에 고인 어둠 지켜보다가

작은 물방울들 가만가만 불러모으리라.

누군가 따스하게 등 기대오면, 한번쯤

동그랗게 몸 흔들어

그이 발 아래 터뜨리리라.

 

 

 

마당가의 나무가 십이월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겨울나무를 보면 왜 평화롭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아마도 그 기도하는 자세 때문에 우리를 겸허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평화는 낮은 곳으로 임한다고 했으니... 저 겨울 나무, 자세 흐트러뜨리지 않고 서 있다가 때가 되면 연둣빛 잎새를 피워 올리리라. 투명한 햇살 끌어당겨 누군가 따스하게 등 기댈 수 있는, 나도 겨울나무이고 싶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