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    업데이트: 12-10-19 12:50

시가 있는 아침

고분 속에서
강문숙 | 조회 816

<9>

고분 속에서

 

 

 

여자가 조심스레 문을 연다. 순간

커다란 눈동자 같은 내부가 번뜩인다.

침입자를 경계하듯 소요하는 먼지들

먼지들의 입을 막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엉거주춤, 고분 속으로 들어선다.

고여 있던 시간들이 출렁이다가

토기의 빗금 문양을 타고 흘러내린다.

무명 머릿수건을 탁탁, 털며

쌀 안치러 가는 여자의 뒤를 따라간다.

아궁이에서 매캐한 연기가 번지고

누군가 기침을 해댄다. 그 소리

고분 밖의 생애까지도 목메이게 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죽음과 함께 밥 먹고 숨쉬는 시간들

쭈그러드는 쌀자루가 안절부절 못했겠지만,

고분 속은 무풍지대 최후의 안식처였을까.

 

고분 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찬바람 불어 잎들이 떨어져 내린다.

철커덕, 누군가 고분의 입구를 막는다.

아직도 그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를

남겨둔 채, 서둘러 승용차에 시동을 건가.

콘크리트고분 속으로 가는 뒷모습들

불빛 속으로 사라진다.

 

 

  고령의 지산동 44호 고분은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순장묘이다. 박물관에 재현된 고분 속에 아궁이 불씨가 그대로 남아 있게 연출한 것은 묘한 느낌을 더해 준다. 마치 내가 그 속에 살고 있어서 저녁밥을 짓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얼룩진 무명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잠시 허리를 펴본다. 다른 사람의 생에 함께 묻어서 살고 있는 목숨이 어느새 평화로워지다니, 이렇게 두려운 안주가 어디 있을까. 고분 밖을 나와서 더 큰 고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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