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어떤 여류화가의 삶, 나혜석
2000년 발표된 미카엘의 단편 애니메이션 ‘아버지와 딸’은 그리움에 대한 한 편의 영상시다. 이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를 떠나보낸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문득 비운의 화가로 생을 마감한 한 여인이 떠올랐다.
한국의 근대 여류화가인 나혜석. 그녀는 한국 여성화가로는 처음 개인전을 가졌던 선구적인 예술가였다. 당시 유입되었던 일본의 인상주의 화풍을 벗어나, 스스로 파리의 야수파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수학하는 등 신조류의 예술혼을 키워나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함께 장기간 세계여행을 떠날 정도로 사랑했던 남편과 1929년 귀국한 직후 이혼하였다. 그 뒤 속세의 삶에서 벗어나 충남 공주의 마곡사에서 수도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1935년 서울에서 가졌던 소품전을 마지막으로 화업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연이어 찾아온 정신장애와 반신불수의 비극 속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꿈꾸던 열정과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것은 모든 작가가 꿈꾸는 모습이자, 모든 인간이 꿈꾸는 모습이기도 하다. 열정적인 화가이며, 한국 페미니즘 문학의 원류라 불렸던 여성문학가 나혜석. 3·1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5개월의 옥고를 치른 뒤 “여자도 사람이외다”라고 외쳐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씨앗이 되기도 한 시, ‘인형의 家’ 중에서 한 대목을 보며 그 외침이 오늘에도 유효함을 깨닫게 된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저/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올 한 해 그녀처럼 열정적인 삶을 살기를 모두에게 바란다. 그리고 이런 삶이, 모두의 삶이 마감될 때까지 이어지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김병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