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8    업데이트: 23-02-16 09:38

언론, 평론

한국회화의 동질성, 그 새길트기와 길 넓히기 - 이태수 (시인)
관리자 | 조회 1,093
한국회화의 동질성, 그 새길트기와 길 넓히기
 
이태수 (시인)
 
한국화가 김봉천은 창의력과 조형감각이 뛰어난 작가이다. 그는 이미 80년대 중반 무렵부터 공모전들을 통해 역량을 드러내면서 유망주로 부각됐으며 현대 회화로서의 한국화의 위상을 새롭게 하려는 실험을 거듭, 개성적인 세계를 일구어 왔다.
공모전 경력만 보더라도 그의 재능과 가능성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일찍이 이십대의 나이로 공모전에 도전, 85년부터 91년 까지만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2회)과 입선(3회), 대구미술대전 대상 수상과 특선(4회), 신라미술대전 우수상 수상과 특선 등을 기록했으며, 젊은 나이지만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영입됐다. 각종 기획 그룹전을 통해서도 눈부신 활약을 했으며, 비형회와 영남한국화회, 한국미술협회 등의 회원으로 한국화의 새 흐름을 이끌어 내는 선두그룹의 주자로 달려왔다.
 
그는 일찍부터 현대감각이 두드러지는 한국화를 빚기 시작, 한국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꿈꾸는가 하면, 한국회화의 동질성을 새롭게 창출하려는 방법론적 실험을 통해 돋보이는 작가로 조용히 떠올랐다. 특히 그는 새로움을 겨냥하면서도 필연성을 벗어나지 않고, 서구미술의 세례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의식을 축으로 실험을 거듭했다. 그는 ‘신대륙’을 찾아 ‘새길트기’를 하면서도 신기하거나 기이한 제스쳐로 포장된 ‘개성’ (가짜 개성)을 만들지 않고, 낯선길을 택하되 우리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주체의식을 흩트리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런 치열하고 진취적인 작가의식은 신뢰감과 기대치를 높여 주었고, 작업의 성과로도 기록되고 있다.
 
그는 어디까지나 동양적(또는 한국적)인 정신주의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재료인 화선지와 수묵을 저버리지 않고, 그것들이 갖는 성향과 특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일체화를 시도했으며, 한걸음 나아가 현대감각과 연계되는 재료와 기법을 도입하는 덕목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80년대 중반부터 그는 종래의 준법이나 찰, 태점 등 낯익은 표현 언어들을 뛰어 넘어 서구적 시각세계를 은밀하게 받아 들였다. 화면구조에 중점을 두고 입체적인 재질감에 엑센트를 찍었다. 프로타쥬 기법을 응용한 텍스츄어를 다양하게 활용하는가 하면 종래의 한국화에서와는 달리 면의 개념을 도입하는 새로움을 이끌어 냈다. 그는 또 이같은 기법적 실험과 함께 파라핀 등 회화적인 안료를 사용, 번짐의 효과를 억제하거나 조절하고 채색을 구사하는 시도로 현대적인 감각과 연결되는 화면을 빚어 보였다.
연작 ‘암천’ 에서는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독특한 이미지들을 돋우어 냈으며, 연작 ‘파흔’의 경우 우리 고유의 문양들이 거느리는 상징성 등 전통적인 이미지들을 살려내면서도 참신한 감수성이 두드러지는 추상, 또는 반추상의 회화로 나아간 면모를 읽게 했다. 그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종래의 고정 관념으로서의 한국화를 넘어서서 한국의 회화로 새로이 자리매김을 하는 독자적인 경지를 일구고, 한국화가 국제적인 문맥 속에서 회화의 자리로 돌아서게 하는 가능성을 열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그림들은 아직 하나의 확고한 틀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런 시사를 던져주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한다. 서구적인 방법론을 쫓아가기 보다는 전통적인 사상과 정신을 축으로 현대적 기법과 재료를 끌어들이는 방향감각과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어 ‘전통’과 ‘현대’라는 상반된 관계를 융화, 그 필연적인 문맥에서 새로운 한국회화의 동질성을 추출하려는 창의력을 가까이 집히게 한다.
 
근래에 그는 그동안의 실험을 응용한 구체적인 형상화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야’ ‘원’ 등의 연작들을 통해 또 다른 면모의 조짐들을 드러낸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면서 단순화되거나 생략, 왜곡된 형상과, 그런 구상적인 요소들을 떠받들던 추상적인 요소들로 독특한 심상풍경들을 연출하던 90년대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근작들은 구상적인 요소가 더욱 강조되는 반추상이나 구상에로의 회귀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구상작품들의 경우도 추상적인 요소가 끼어들어 작가의 의도를 강조하는 구실을 하게 하거나, 대상 (형상)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더라도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세계나 심상풍경을 떠받들어주는 등가물로 읽게 하는, 재구성된 형상 (대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원-소외된 지대’ 등은 소외된 계층의 인간상을 구체적으로 묘사, 그들의 아픔과 희망을 따스한 가슴과 연민으로 그려내고 있어 인간성 회복, 또는 인간주의가 그의 새로운 테마로 자리 잡고 있음도 알 수 있게 한다.
그는 아직 젊고 가능성 쪽으로 열려있으며, 패기만만하다. 이번 첫 개인전은 또 다른 비약을 예비하는 계기가 되고, 여태까지의 가능성들을 더욱 선명한 성과의 기록으로 연결시키는 디딤돌이 되기 바란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