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0    업데이트: 16-06-03 11:24

미술이론

예술인 복지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과제
아트코리아 | 조회 732

예술인 복지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과제

글 : 박영정(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

 

 

| 예술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술인’하면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예술적 창조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예술가적 영혼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생활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가난'이 연상되곤 한다. 경제적 보상은 미미하지만 창조적 활동에서 얻는 자기 만족감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곧 예술인의 삶이다.

사회 전체가 절대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던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예술인들은 물질적 결핍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에서 느껴지는 정신적 충족감을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 1970년대의 문인들이 누렸던 사회적 지위를 상기해 보라. 그러나 국민 소득 1만 달러 시대를 넘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모든 직업을 경제적 관점에서 줄 세우기 하게 되고, 예술인의 ‘경제적 무능력’(?)은 시대의 정신적 보루로서 위상마저 흔들어 버렸다.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하면 전통적으로 낮은 경제적 지위에 이제는 사회적 지위까지 하락하여 예술인은 ‘사회적 몰락’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모든 예술인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40대 이상의 예술인들은 대부분 ‘보통사람들’보다도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당대의 성공한 예술인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소수의 ‘살아남아 있는 예술인’에 불과하다는 점에 있다. 예술인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성공 이전 단계’에 있는 예술인들은 진입 초기단계부터 예술계 내부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그와 동시에 다른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생활’도 지켜내야 한다.

사람들은 주택, 자녀교육, 건강유지, 노후준비, 재테크, 여가생활 등등 우리 시대의 ‘생활인’의 핵심 의제들을 직업 활동을 통해 해결한다. 그것이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예술인이라는 직업은 그러한 것들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예술 활동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 연마에 올인하게 되어 ‘생활인’으로서의 의식조차 빈약한 상황이다. 예술인 가운데는 경제적 가치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을 문제로 여긴 나머지 재테크니 노후준비니 하는 것들을 불필요한 사치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 예술인에게 복지는 무엇인가

 

사실 예술인이 언제나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예술인은 경제적 여유가 발생하면 자신의 생활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예술 활동에 재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계 내부에서 작동되는 예술인의 가치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 활동에서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타인과의 경쟁의 형태가 아닐 수 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결과적으로 경제적 보상도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예술인의 삶이다.

그런데 개개인의 성공한 예술인의 삶의 궤적은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그러한 길을 향하여 달려가는 예술인 가운데 다수가 사실은 ‘생활의 문제’로 인해 다른 직업으로 옮겨간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예술계를 떠나 버리기 때문에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예술계에 남아 있는 예술인 가운데 절대적 빈곤층이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부부가 예술 활동에 종사하다가 자녀가 태어나 ‘생활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가 예술계를 떠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면 처음부터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경제 능력에 의존(?) 가능한 경우에만 예술 활동에 뛰어들기도 한다.

예술인 복지의 핵심은 절대빈곤에 놓여 있는 예술인들을 구휼하는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예술인이라는 직업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다수의 예술인이 예술 활동만으로는 최소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정도의 경제적 보상을 받고 있다면, 그리고 그 대부분이 사적인 지지 체계를 통해 보완되고 있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직업 집단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직업 집단과 유사한 수준의 경제적 보상체계를 마련하여 예비 직업인들이 자신의 선호도나 적성에 따라 예술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직업 선택의 과정에서 예술인이라는 직업이 원천적으로 배제되지 않는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볼 때 예술인 복지가 필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지난 7월 14일 ‘예술인 복지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 지난 7월 14일 ‘예술인 복지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 가칭 ‘예술인공제회’ 설립 논의가 의미하는 것

 

예술인 복지에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예술인들의 소득을 공적 재원을 동원하여 보전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쌀 직불금과 같은 시장 보완적 보전제도나 실업급여의 지급과 같이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급여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4대보험으로 지칭되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다.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및 국민연금이 그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제도의 타깃이 근로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국민을 기본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랜서로서의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는 예술인의 경우 법적으로 근로자 지위가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사업장 가입자 외에 지역 가입자 제도가 있어서 예술인의 다수가 이 제도에 포섭되어 있다. 그러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근로자’ 지위에 있는 예술인에게만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경우 프리랜서 예술인도 가입 자격 및 의무는 주어져 있지만 열악한 경제 환경으로 인해 실질적인 가입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4대보험 가운데 건강보험만이 ‘국민보험’의 가입 수준을 보이고 있고, 나머지 3개의 보험제도에서는 소외된 ‘국민’이 많고, 특히 예술인은 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예술인 복지의 증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4대보험에 편입될 수 있는 제도의 개선 및 가입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 4대보험이 ‘국민보험’ 제도라면 예술인이라 하여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법제에서 프리랜서 예술인을 피고용자, 즉 근로자로 인정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사례에서 보이듯 그것은 지난한 ‘노력’의 과정에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술인의 경우 스스로를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내부적 문제도 안고 있다. 따라서 예술인이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의 제도적 혜택을 받는 일은 당장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사진:국민과 함께 하는 4대사회보험광고  

이러한 과정에서 지난 참여정부 시기부터 논의되어 왔던

 대안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술인공제회’의 설립 방안이다.

 공제회란 원래 특정 직업 집단 내부의 자발적 상호부조

조직이지만, 예술인의 경우 일정 수준의 공적 재원 투입에

의한 공공적 성격의 조직으로 제안되었다. 물론 그 공제회가

 앞서 4대보험을 대체하는 대안적 복지 체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 공제회가 담당할 수 있는 복지 기능이란 극히 제한적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회보장제도를 대체한다기보다는 보충

하는 복지 체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예술인 복지 프로그램의 전망과 과제

 

예술인 복지에 대해 정부에서 관여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어느 부분이고, 또 어디까지일까. 예술인이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고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떠한 보장 체계가 필요한 것일까.

지금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예술인공제회’를 기본 모델로 한 ‘예술인 복지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예술계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기대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제회 프로그램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연금’을 중심으로 설계된 공제상품에 대해서도 창작환경과 생활 여건의 개선의 시급성에 견주어 먼 나라의 얘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예술인도 많다. 그렇다고 예술계 밖에서 예술인 복지 프로그램을 위한 공적 재원이 ‘대기 중’인 것도 아니다. 지금 예술인 복지 프로그램의 도입과 정착 과정에는 예술계 안팎의 인식 전환에서 출발하여 적정 수준의 공적 재원을 발굴하고, 무엇보다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세부 프로그램의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검열과 같이 정치적 제약으로부터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다면 지금은 예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누려야 할 제반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권적 개념의 권리 실현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것은 ‘정상적인 직업 집단’이 누려야 할 생활  환경의 보장이 필요하며, 그것은 최저생계비와 같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보장에서 나아가 적정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문장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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