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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론

“명품비엔날레라고? 차라리 명품관에 가보시라!”
아트코리아 | 조회 896
미술평론가 류병학이 본 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2

“명품비엔날레라고? 차라리 명품관에 가보시라!”

청공비, 동네 슈퍼마켓 디스플레이

 

2009년 11월 12일 (목) 20:53:39 동양일보  dynews1991@dynews.co.kr
 

자, 이번엔 변광섭 총괄부장이 돋보였다는 디스플레이를 보자. 적어도 필자가 본 청공비 디스플레이는, 백화점 명품관 디스플레이는 고사하고 동네 슈퍼마켓 디스플레이였다. 모 미술계 관계자는 “이번 청공비 디피는 대학 졸전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0여년이 넘도록 전시 기획이 전무한 이 전시감독은 ‘똑같은 작품이라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는 큐레이터의 기본적인 연출 감각을 간과한 것 같다.(청공비 홈피에 올려진 이인범 전시감독 경력에서 전시기획만 본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신설 이전과 함께 도입된 학예연구직제도에 따라 1986년부터 1993까지 큐레이터로 활동한 것이 전부이다.)

물론 본전시I과 본전시II는 전시장이 아닌 체육관(롤러스케이트장과 국민생활관)에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파티션 제작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전시I이 개최된 롤러스케이트장 경우 타원형의 동선을 이용하여 파티션 제작을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전시작품들은 그 타원형을 따라 마치 ‘줄줄이 사탕’처럼 디스플레이되어 다양한 작품들의 특징들을 반감시켰다.

필자의 기억에 남는 특별히 디스플레이된 작품은 <인공의 지평>에 전시된 MBC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에서 한윤주 역의 미술작품을 제작한 김유선의 ‘무지개’이다. 왜냐하면 김유선의 ‘무지개’는 단독으로 제작된 파티션 공간에 딱 한 작품만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요소들이 제거된 전시공간에 설치된 김유선의 ‘무지개’는 감상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덧붙여 김유선의 ‘무지개’는 순수공예 작품이 아닌 탈공예적 작품이란 점에서 <인공의 지평>이 아닌 <오브제, 그 이후>에 전시되어야 마땅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본전시II가 개최된 곳은 국민생활관이다. 국민생활관 파티션 제작은 관중석을 십분 활용했는데, 그 점에 필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두말할 것도 없이 파티션 제작을 하려면 무엇보다 공간의 특징을 파악해야만 한다. 본전시I과 본전시II의 파티션 제작은 공간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한 것으로 생각된다. 파티션 제작과 마찬가지로 작품연출을 하려면 무엇보다 작품의 특징을 파악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 작품의 특징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연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청공비 본전시II에 전시된 하이메 아욘(Jamie Hayon)의 <쇼타임 컬렉션(Showtime collection)>을 들어보자. 커버가 있는 1인용 의자 ‘쇼타임 체어’ 경우 겉은 미끄러운 폴리에틸렌 소재로 제작된 반면, 내부는 마치 귀족 마차처럼 가죽 소재로 럭셔리하다. 그리고 ‘다리가 많은 캐비닛(Multi-Leg Cabinet)’ 경우 캐비닛의 표면은 심플하게 처리된 반면, 캐비닛 다리들은 기능을 넘어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 따라서 하이메 아욘의 작품은 연출에서 조명은 기본이다.

 

그런데 <오브제, 그 이후> 출구 쪽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기억되는 하이메 아욘의 <쇼타임 컬렉션>은 어두운 조명으로 인해 작품의 특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쇼타임 체어’ 경우 조명이 내부를 비추지 못해 외부와 내부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고, ‘다리가 많은 캐비닛’ 경우 캐비닛 다리에 조명이 비추지 못해 다양하고 독특한 다리를 감상할 수 없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인범 전시감독은 ‘전시감독으로 역점을 둔 부분’에 대해 “생산성 있는 미래의 비전, 꿈과 상상력, 창의력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연출했다. 고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구성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외람되게도 청공비의 연출은 작품의 특징들을 살리기는커녕 반감시켜 고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체험할 수 없도록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하이메 아욘은 올해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London Design Festival 09)에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거대한 체스 작품을 설치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오늘날 유망한 디자이너 중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만약 그가 청공비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보았다면, 그가 어떤 반응을 했을지 뻔할 것 같다. 필자가 알기로 이번 청공비에 전시된 하이메 아욘의 <쇼타임 컬렉션>은 aA 디자인 뮤지엄에 소장된 작품을 빌려온 것이다. 만약 aA 디자인 뮤지엄 김명한 사장이 청공비에 전시된 하이메 아욘의 <쇼타임 컬렉션>을 보았다면 앞으로 두 번 다시 자신의 소장품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다.

 

덧붙여 하이메 아욘의 <쇼타임 컬렉션>은 (이미 단편적이나마 작품의 특징을 읽어보았듯이) 탈공예적 작품이라기보다 오히려 순수공예 작품에 가깝다는 점에서 <오브제, 그 이후>에 전시될 것이 아니라 <인공의 지평>에 전시되었어야 타당할 것 같다.

진중권은 ‘미래도시’를 표방한 인천도시축전을 보고 자신의 블로그에 “차라리 하이마트를 가는 게 훨씬 더 풍요로울 뻔 했다”고 토로했다. 필자가 (진중권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명품 비엔날레’를 방문하는 것보다 차라리 백화점 명품관을 가는 게 훨씬 더 풍요로울 뻔 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번 청공비에 대해 “디스플레이가 돋보였다”고 말한 변광섭 총괄부장에게 ‘명품관에 가보시라’고 당부하고 싶다. 머시라? 청주에 명품관이 없다고…요?

 

<계속>

◇류병학 약력

△미술평론가 겸 전시기획자

△2000 미디어시티- 서울 커미셔너

△2006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전시감독

△격주간 ‘아트레이드’ 편집주간 역임, 현 아트센터 ‘나비’고문

△저서 ‘이우환의 입장들’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 ‘리빙퍼니처’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 ‘이것이 한국화다’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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