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    업데이트: 16-06-15 19:10

미술정보

유화는 수채화처럼 투명하다?
아트코리아 | 조회 1,437
Dali, Salvador-
Figure at a Window, 1925, oil on canvas,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Madrid, Spain
살바도르 달리도 투층 기법을 이용해서 작업을 한 작가이다. 고전 작품에 매료되어 고전을 모사하고 재해석해서
현대적으로 풀어낸 그림들이 많다.
 
(2) 글레이즈 기법을 사용한 화가들
 
glaze:
 
1.판유리를 끼우다. 유리창을 끼우다.
2. 투명한 윗칠을 하다. 표면에 얼음으로 얇게 덮다
글레이즈는 말 그대로 판 유리를 끼운 듯이 투명한 윗칠을 하는 기법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투명한 기법을 적용한 작가들은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우리들은 작가들이 그저 유화물감을 단순히 바르고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소개할 작가들은 우리가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유명한 작가들이다.
유화를 최초로 가장 잘 다룬 얀 반아이크 형제, 루벤스, 렘브란트, 살바도르 달리 등, 이 작가들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명 수채화보다 더 투명하고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거기에다 바쉬니를 칠하면, 글레이즈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이 더욱 더 투명해진다.
빛의 광학적 현상으로 인해서 그 효과는 더욱더 배가되는 것이다. 빛이 글레이즈 기법을 적용한 화면에 닿으면 굴절률이 낮아져서 빛을 투과하게 되면서 색유리의 투명한 느낌처럼 보여진다. 시대적 순으로 나열한 글레이즈를 사용한 대표적 작가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얀반 아이크 형제

프랑드르의 화가 얀 반 아이크는 유화 물감의 발명자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일은 그 이전부터 안료의 미디엄으로 쓰여져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리적 정확성에 대해서는 미술사가들이 논박할 소지가 있긴 하지만, 반 아이크가 발견한 기법들이 회화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1420년경 자신의 달걀 템페라화 중 하나가 햇빛에 의해 갈라지는 것을 발견한 반 아이크는 그늘에서 건조할 수 있는 오일을 찾기 위한 실험을 통해 테레빈 유의 일종인 브루게스 화이트 바니시(Bruges white varnish)를 린시드 유나 호두유에 섞어서 만드는 하나의 공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이것을 달걀 노른자와 안료를 섞어 그리는 템페라의 바니시로 이용하다가 나중에는 순수 안료에 이 오일 혼합물을 직접 섞기 시작했다.
이것은 햇빛이 없어도 잘 건조될 뿐만 아니라, 글레이즈나 광채가 나는 투명한 막처럼 색채에 광택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색의 선명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음영과 색채를 수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르놀피니의 결혼」 82x60㎝ 1434년 oil on panal


얀 반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자세히 보면 이러한 글레이즈 효과가 잘 나타나 있다. 배경 침대의 붉은 쿠션의 부분을 잘 관찰해 보자. 우선, 주황(버밀리온)과 소량의 실버화이트가 혼합되어 밑칠로 칠했고 실버화이트를 섞어서 점점 밝은 부분을 묘사한 다음, 그 위에 아주 엷은 붉은색의 투명물감을 발라서 투명한 글레이즈 효과를 냈다. 또한 녹색의 의상도 투명하고 선명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도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선 암록청(마라카이토)에 실버화이트를 혼합한 불투명한 밝은 녹색이 칠해지고, 다음에 실버화이트를 조금만 섞어 채도가 높아지는 암군청이 올라가고 마지막에 수지산 동(투명한 녹색)이 엷게 칠해진 것이다. *
반 아이크의 추종자인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Messina, 1430-1475)는 베니스에 유화를 보급시켰으며, 지오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는 반 아이크의 빛나는 색채와 아름다운 화면과 유사한 효과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는 유화 기법을 전개한 사람은 벨리니의 제자 티치아노(1490-1576)였다.
그는 그림을 하나의 색채로 가볍게 처리한 다음 밝은 부분은 두껍고 불투명한 색으로, 그림자는 엷게 칠했다. 이러한 투명한 광택의 색채는 그림 전체에 빛과 깊이를 부여한다. 디자인의 유동성. 광택 있는 색채, 그리고 깊이 있는 색조는 이런 '전통적인' 유화 기법의 특징들이다.
 
루벤스
 
성 게오르기우스와 악룡(惡龍)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를 받고 참수 (斬首)된 로마의 군인이며 순교자였던 성 게오르기우스가, 카파도키아의 수도에서 악룡(惡龍)을 퇴치하여 왕녀를 구출하였다는 전설은 루벤스 이전에 많은 화가들에게 많이 다루어졌었다. 이 그림은 신앙심이 강한 루벤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보인다. 그것은 색채의 다양성과 동(動)과 정(靜)의 대조이다. 루벤스의 이탈리아에서의 수련은 특히 색채의 회화적 가치를 인식케 하였고, 색채로 이루어지는 화면 구성을 중요시하게 하였다. 빛과 색과의 관계, 빛과 어둠의 대조에서 형태가 부상(浮上)한다는 사실이다. 한편 동적인 장면의 구성은 정적인 면과의 대비에서 그 효과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회화적인 요소가 이 작품에서 발휘되고 있으며 극적인 성격을 주고 있다.
유화에 있어 그 다음으로 현저한 발전은 루벤스(Rubens, 班f-1640)와 더불어 이루어졌다. 그는 흰 바탕 위에 회색으로 칠을 한 다음 작업을 했는데, 밑칠이 보이는 차갑고 반투명한 중간색조의 칠(인프라마투라) 위에 골든 엄버(golden umber)로 선묘와 음영을 가했다. 그런 다음 이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거나 이보다는 더 밝고 가벼운 색조로 그려서 부분적으로 투명한 광채가 있는 않은 층으로 완성시켰다.
루벤스는 벨라스케스(Velasquez, 1599-1660)와 렘브란트(Rembrant, 1605-1689)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이 두 사람은 루벤스와는 다르게 유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벨라스케즈는 유연하지만 때로는 두터운 붓질로 우아하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림을 그려, 특히 그가 그린 초상화인 (부채를 든 여인)에서 이러한 매혹적인 감수성이 나타난다. 렘브란트는 때로 부분적으로 단색으로 그린 다음 이 위에 광택이 있는 불투명한 붓질로 덧칠하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리자일' 기법(grisaille, 횐색이나 회색의 물감 위에 다른 색으로 가볍게 글레이징하는 기법)은 18세기경에는 일반에 널리 사용되었는데, 레이놀즈(Reynolds)도 이 기법을 사용한 화가 중의 하나이다.
이렇듯 복잡한 글레이즈 기법은 세기의 거장들에게는 자유자재로 사용되었으나 어떤 작가들은 이를 수고스럽고 즉각성이 결여된 것으로 여겼다. 영국의 화가 게인즈버러(Gaulsborough, 1727-1788)와 스페인의 거장 고야(Goya, 1746-1828)는 이러한 기법에 반발하여 즘더 자유롭고 직접적인 루벤스의 스타일 - 이것이 꼭 루벤스의 방식은 아니지만 - 로 돌아간 화가들이다.
18세기의 전문적인 도료상들은 즉석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죽주머니에 담겨진 유화 물감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19세기 중반에 등장하는 금속 튜브 물감의 선조격인 셈이다. 야외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나 컨스터블(Constable, 1766-1837)과 같은 선도적인 풍경 화가들에게는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물감을 자신에 맞게 조절하여 만듦으로써 미디엄을 통제하는 하나의 권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화가들과 미술사가들은 이에 반발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제품화 된 물감은 그 유용성과 효율성으로 말미암아 널리 사용되어 새롭고 직접적인 기법과 장인 정신의 새로운 정립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분할된' 면에 대한 분석과 열려진 대기에 대한 직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월리엄 터너(William Turner,1775-1851)는 인상파의 직접적인 선구자가 되었다.
모네(Monet, 1840-1596), 세잔(Cezanne, 1839-1506), 피사로(Pissarro, 1831-1908), 시슬리(Sisley, 1839-1899)로 대표되는 인상파 화가들의 가장 큰 특징은 불투명한 색점이나 획을 서로 나란히 병치하여 관람자의 눈에서 혼합이 되는 분색 기법이라고 할수 있다.
20세기 초기 인상파의 반 고흐(van Gogh, 1853-1890)와 고갱(Gauguin, 1848-1908)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전통을 조롱하는 듯한 기법은 많은 화가들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단 한 가지 '옳은' 방법이란 없으며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
살바도르 달리

Swans Reflecting Elephants 1937 Oil on Canvas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3)같은 작가들은 물감을 여러 층으로 쌓아 나가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반 아이크로부터 직접 전승되어온 기법이었다. 또한 추상표현주의자들, 특히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516)과 같은 작가들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집어 던지고 그것이 흐르도록 하는 등의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시도들을 통하여 유화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유화는 여전히 고난도의 기술과 지식을 요구한다. 만약 물감이 적절치 못하고 부주의한 방법으로 사용된다면 그 그림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레오나르도가 그의 물감에 과도한 오일을 사용하여 작품에 손상을 주었던 그 시대에 있어서나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기법은 사용되는 재료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1937년부터 세차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그 계기로 르네상스 고전주의로 복귀하려는 욕구가 커졌으며, 르네상스 바로크 작가들의 작품에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된다.
달리는 그의 특징적인 주제와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들을 포기하지 않고 전통적인 회화로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초현실주의와의 공식적인 결별의 감정을 달랬다. 갈라와 함께 스페인 북부 카다케스 부근에 정착하면서 종교적 주제를 중심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담아내어 <리갈항구의 마돈나>, <십자가에 달리신 성 요한의 예수>와 같은 주제로 여러 작품을 제작하였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그는 <원자의 레다>, <비키니 섬의 세 스핑크스>의 영감이 되어 주었던 핵물리학과 연관된 과학적 발견과 DNA 구조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활동은 영화제작과 연극무대 장치, 보석 디자인, 홀로그램에까지 확장되는데 이 모든 작품들을 제작하면서도 그는 세속적이고 거만하고 과장적인 변장을 포기하지 않고 그림 그리기와 글쓰는 일을 계속 병행하였다.
1982년 갈라의 죽음이 있기까지 매우 활동적이었던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달리는 1974년에 문을 연 달리 연극-미술관을 헌정하여 우리를 달리의 세계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항상 존경해 마지 않던 미켈란젤로, 벨라스케스와 같은 옛 거장들의 작품을 번안하여 제작하였다. 살아있을 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예술가로서의 달리에 대한 평가는 1989년 그의 죽음 이후에는 아무도 그의 위대함을 의심하지 않는 듯 하다.*
ⓒHong Se-Yon's Painting's Meterial and technique
* 사토 이치로 '회화 기술 입문' 미술출판사 1988 P.110, 111
*복영근 '달리의 초현실주의' 인용 www.peaceone.net/heart/art/dali/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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