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    업데이트: 16-06-15 19:10

미술정보

물감의 기원
아트코리아 | 조회 1,246

염료 사용의 역사는 오래 되어, BC 2000년경에는 이미 쪽염색이 행하여 졌다. 1856W.H.퍼킨이 최초의 합성염료인 모브 또는 모베인의 합성에 성공하고, 이듬해 영국에서 공업화될 때까지는 주로 천연염료가 사용되었다. 천연염료는 대부분 견뢰도가 낮고 색조가 선명하지 않으며, 또한 복잡한 염색법의 필요 때문에 점차 합성염료로 대체되어 오늘날 천연염료는 공예품 등 특수한 용도에만 사용된다.

 

합성염료는 1866L.라이트후드에 의한 아닐린블랙의 공업적 제조법, 같은 해 C.그레베들에 의한 알리자린의 합성, 1878P.뵈티거에 의한 최초의 직접염료인 콩고레드의 합성, 1880A.바이어에 의한 인디고 합성, 1893H.R.바이달에 의한 황화염료의 제조, 1897R.E.슈미트에 의한 알리자린사피롤 B 등 안트라퀴논계 산성염료의 개발 등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그 기초가 구축되었다. 그 사이 P.그리스에 의한 커플링 반응의 발견, O.N.비트의 발색단설, 바이어에 의한 인디고의 분자구조 결정 등 유기화학의 발달이 합성염료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유기화학 특히 유기합성화학과 합성염료는 상부상조하면서 발전해온 것으로, 오늘날 유기화학의 발달은 합성염료의 진보에 힘입었다. 20세기에 많은 배트염료가 독일에서 개발되어 1910년경 독일은 전세계 염료의 80%를 생산하였다.

염료의 합성기술은 화약류나 독가스의 제조기술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각국이 염료공업의 발전에 힘을 쏟아 여러 나라에 염료공업이 보급되었다. 1912년 불용성 아조염료인 나프톨 AS, 1915년 합금속 염료, 1930년 안트라퀴논계 아세테이트 염료 등이 개발·시판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형광 백색염료·중성 금속함유염료·합성섬유용 염료·반응성 염료 등이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제조되었다.

 

 

물감의 기원-페니키아 민족은 바닷가에 치솟은 해발 3000m 높이의 레바논 산지 때문에 내륙과는 고립되어 일찍부터 바다로 진출했다. 이들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수많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국제적인 장사꾼으로 명성을 날렸다. 최상품 목재인 레바논 백향목과 함께 페니키아 최고의 특산품은 자주 물감이었다. 순금의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싼 자주 물감으로 물들인 자색 옷은 부유층의 상징이었고 로마시대에는 왕궁 자색(royal purple)’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구석기 시대 말기에 이르러 철이나 구리 등의 여러 금속들이 산화되어 다양한 색깔을 띤 녹을 채취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서기전 1500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 벽화들은 모두 이러한 물감을 사용한 것들이다. 서기전 4000년경부터 도시와 왕국이 생겨나 왕이나 제사장 등 특권층의 고유 의상이 필요하게 되면서 천의 염색을 위한 물감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주로 식물의 꽃, , 열매, 껍질, 뿌리 등에서 추출한 물감이 사용됐다. 하지만 햇빛이나 세탁으로 쉽게 색이 바랬기 때문에 좀더 질이 좋은 물감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자주 물감은 두로의 수호신 멜카르트가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그가 개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는데 소라를 깨물은 개의 입이 처음에는 붉게 물들었다가 차츰 자주빛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페니키아의 어원이 되는 페닉크붉은 자주라는 뜻으로서 원래는 지중해에 서식하는 소라의 일종이다. 서기전 1500년경 기록된 누지 문서에는 자주 물감을 후리어로 키나후라고 표기했고 가나안(크나안)’의 어원이라는 학설도 제기됐다. 자주색을 의미하는 영어의 퍼플(purple)’은 원래 지중해에 서식하는 소라의 이름인 그리스어 포르피라(porphyra)’와 라틴어 푸르푸라(purpura)’에서 유래됐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나 이 원래 식물의 이름이지만 이로부터 추출된 색깔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출 처 : [인터넷] http://html.yonsei.ac.kr/~hlee/seminar/theology25.htm

 

 

그림물감- colors 그림을 그리는 데 쓰는 색소와 고착제(固着劑)를 합쳐 만든 물감.그림물감은 넓은 뜻으로는 섬유를 물들이는 염료나 요업제품의 착색에 쓰이는 물감까지도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는 그림에 쓰는 물감에 한정한다. 옛날에는 아름다운 색을 가진 천연광물의 분말을 적당한 액체에 풀어서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무기·유기안료(有機顔料)를 주재료로 하여, ·아교·고무질·기름·수지(樹脂·합성수지 등의 전색제(展色劑)와 섞어 개어서 고체 또는 반고체로 굳힌 것을 쓴다.

채료(彩料)의 발견과 그 사용법의 연구형태에 따라서 납화(蠟畵프레스코화·템페라화·데트랑프·수채화(투명과슈(불투명파스텔화·콘테화·크레용화 등으로 분류되어 왔으나, 기본적으로는 안료나 염료가 사용된 것에는 변함이 없으며, 변화되어 온 것은 채료를 정착시키는 중개물의 용법이나 매재(媒材)의 변천이다.

이 과정에서 채색효과로서 이들 채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채색에 윤이 나는 발색(發色)을 구하여 마침내 유화의 그림물감으로 발전한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윤을 죽이는 발색효과를 만들어 온 프레스코화와 동양화의 그림물감이다. 따라서 채료의 발견과 그것이 사용된 모습은 오래된 것으로는 유사 이전의 알타미라 동굴이나 라스코 동굴의 벽화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주된 채료는 산화철을 정색(呈色) 성분으로 하는 천연토(天然土)이며, 색상은 황색·갈색·자색(紫色)을 나타내고, 흑색은 식물성 탄화물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BC 2050년경 이집트의 제11왕조에 이르러 녹·청의 천연광물이 채료로서 나타났고, 그리스에서는 BC 4세기에 레드[鉛白:염기성 탄산납]의 제조법이 알려졌으며, 버밀리언의 원료인 진사(辰砂)가 천연 출토되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한 포도주를 짜낸 찌꺼기를 건조 탄화시켜서 포도탄()을 만들었으며, 유리·황토·호박(琥珀) 등도 채료로 쓰였다. 한편, 의술용(醫術用)으로 기름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어 아마(亞麻양귀비·호두에서 기름을 짜는 법, 기름의 건성(乾性)을 늘리는 방법, 탈색법이나 기름의 건조를 촉진하는 일산화납이 알려져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은 후세의 유화물감의 완성에 커다란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관판화(棺板畵) 및 그리스의 폴리그노토스와 아리스티드(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가 발명했다고 전해지는 납화법(蠟畵法)에서도 채료에 전색성과 고착력을 지니게 하고 투명효과를 줌으로써 심미성을 증대시키고 내구성을 유지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물감이 되는 안료의 색수(色數)는 중세까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반 에이크 때에도 연백(鉛白:실버화이트(:라피스라줄리녹토(綠土:테르벨트석황(石黃:올피멘트황토와 그것을 구운 적갈색 및 흑갈색, 그리고 매더의 78색에 지나지 않았다. 르네상스 무렵부터 식물성 염료나 동물성 색소가 이용되었으며, 흑석(黑石)도 화재(畵材)로 나타났다. 실제로 안료가 인공적으로 개발된 것은 1704년 독일의 디스바흐가 청색염료를 만든 것이 시초이며, 산업혁명의 물결로 19세기에 이르러 염료공업이 갑자기 활발해지면서부터이다. 그때까지 화가의 공방(工房)에서 황토를 구워 색상을 변화시키거나, 약연()으로 원색을 빻아서 수파정제(水精製:물속에서 체로 걸러 그 웃물을 뜨는 방법)를 하던 작업은 기계에 의한 공장작업으로 옮겨졌으며, 보존법도 크게 바뀌었다. 산화를 막기 위하여 동물의 장기인 소의 방광에 채워 물항아리에 저장해 두던 것이, 1824년 영국에서 금속 튜브가 발명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편리한 것이 되었다.

이 동안 화가의 팔레트에 나타난 라피스라줄리는 값이 비쌌기 때문에, 같은해 프랑스 정부가 장려금을 내놓고 화학적 합성법을 연구시킨 결과 기메가 오늘날의 울트라마린[群靑]을 만들어냈다. 말라카이트(malachite:孔雀石)도 변색이 빠르기 때문에 자연히 쓰지 않게 되고, 1819세기의 그림에 많이 나타난 비투민(bitumen:瀝靑)이나 텔드캐슬도 자연히 사라졌다. 이들에 비하여 그림물감 중에서 생명이 긴 안료는 실버화이트이다. 1845년 공업화되어 그림물감에 끼어든 징크화이트(프랑스의 쿠르투아가 1782년에 개발)도 안정성이 있고 그 수요가 많지만, 유럽에서는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고, 실버화이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레드라고 하던 실버화이트는 브랑드프롱이란 이름으로 오늘날에 이른다.

이와 같이 그림물감의 세계는 19세기 유기합성화학의 발달에 의하여 그 화학적 성질이나 내구성이 약한 천연유기질의 것은 인공적인 것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천연자원의 소멸에 의하여 합성물로 바뀐 네이플스옐로나 테르벨트 등도 있다. 반 에이크 이래 사용된 올피멘트도 유독성과 불안정성 때문에 20세기에 접어들자 곧 모습을 감추었다. 1809년 보게란에 의하여 새로이 등장한 크롬옐로는 19세기 중반부터 채료로서 터너와 고흐에게 애용되었다. 이어서 1917년에 카드뮴옐로가 안정성 있는 것으로 채택되었다.

다시 석유화학의 발전에 따라 아조계(프타로시아닌계의 미립자 안료가 만들어졌는데 이들의 착색력은 재래의 것의 300배 이상이었다. 그림물감의 색수는 각국의 제조회사에 의하여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중요한 것만 해도 5060종이 넘고, 중간색 등을 합하면 100종 이상 된다. 그러나 화가가 상용하는 색수는 의외로 적어서 최저 7색에서 24색 정도이다. 이것만으로도 화면에 복잡한 뉘앙스가 나타나는 것은 그 혼색(混色)의 기술에 의하여 다채로운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림물감의 제조회사로는 프랑스·영국·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독일 등에 1세기 이상의 전통기술을 가진 회사가 있다. 품질의 첫째 조건은 안료의 품질이지만, 안료를 그림물감으로 처리하는 기술이나 안료 계열의 선정, 합성기술, 날련(捏練)기술 등도 중요하다.

 

 

2. 독성

안료로 사용되는 금속원소는 중금속의 염류이므로 독성을 지닌다. 본질적으로 독성을 지닌 것으로는 구리와 비소성분을 가진 에메랄드그린, 납 성분을 가진 실버화이트·크롬옐로 등 제레노우세스에 의한 중독요소를 가진 크롬레드계, 황화수은을 가진 버밀리언 등이 있다.

코발트바이올렛 라이트 등은 비산 코발트가 주성분이며, 모두 은·비소·구리··카드뮴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온전한 피부에서는 흡수되지 않으며, 상처에 붙은 것을 방치하거나 직접 입으로 핥지 않는 한 안전하다. 그리고 옛날에는 독성을 이용하여 방부제로 사용한 진사 등은 황화수은의 형태로 있는 한 인체에는 독성이 없다.

 

3. 동양

동양에서는 원석(原石)을 분쇄하여 정제한 석채(石彩:眞彩), 황토색에서 갈색의 정색성분을 갖는 풍화토(風化土)를 원료로 하는 이채(泥彩), 동물성 색소에서 만든 연지 등이 있다. 백색계에는 조개껍데기를 태워서 만든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는 호분(胡粉)과 백토(白土연백이 사용된다. 연백은 서양물감의 실버화이트로, 황화(黃化)해서 암색화(暗色化)하기 쉬운 단점이 있다.

그 외 금·은니(銀泥·수정말(水晶末산호말(珊瑚末연단(鉛丹석황(石黃) 등 특수한 것들이 있으며, 신암(新岩)이라는 의화물(擬和物)에 의한 것도 만들어지고 있다. 안료는 입자를 잘게 할수록 색이 엷어지는 것으로 가령, 녹청·군청을 더욱 미립자로 만들면 백록(白綠백군(白群)의 색이 된다. 또 안료는 분말 그대로의 색과 젖어 있는 색을 비교해 보면 젖은 색 쪽이 발색하여 짙게 보인다. 수성과 유성의 젖은 색에서는 유성 쪽이 더 짙게 보인다. 동양화에서는 대부분의 채료가 불투명하게 칠해지는데, 그것은 중개물(仲介物)이 교수(膠水)인 까닭이며 안료의 종류에 따라 교수의 농도는 정착과 발색에 큰 관계가 있다

 

마케도니아Alexandros the Great , BC 356~BC 323.6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발명*1704년 독일의 디스바흐->1824년 영국에서 금속 튜브가 발명

출처 :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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