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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나의 예술, 나의 삶]구상화가 김윤종 - 매일신문 / 2020-08-10
아트코리아 | 조회 522
구상화가 김윤종 작가가 그의 '하늘보기' 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윤종 제공
구상화가 김윤종 작가가 그의 '하늘보기' 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윤종 제공

김윤종 작 '하늘보기'
김윤종 작 '하늘보기'


하얀 뭉게구름이 쪽빛 창공을 캔버스 삼아 갖가지 형상을 자아내는 하늘을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혹은 평생에 얼마동안 쳐다보면서 살까? 여기 구름과 푸른 하늘을 대상으로 그림그리기의 화두로 삼아 13년째 '하늘보기'연작에 몰두하고 있는 구상화가가 있다.

그는 결혼상대에게 "나에게 그림 그리는 일보다 우선하는 일은 없다"고 선언할 만큼 화가의 길을 천직으로 여겼고, 대학 졸업 후 생활을 위해 교편을 잡고서도 방과 후에는 신접살림집보다 화실로 먼저 발길을 옮겼을 정도로 나름 그림을 이번 생의 소명으로 알고 화업에 열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교직과 화가의 두 길을 병행한다는 건 결국 하나의 일에는 소홀하거나 거짓일 수밖에 없다"는 마음의 짐이 늘 그의 가슴 한 구석을 짓눌러오던 차에 올해 2월에 29년간 교직생활을 명예퇴직하고 '전업화가'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된 장본인은 다름 아닌 구상화가 김윤종(60)이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 기성9길에 위치한 전원주택(80㎡) 한 동은 지난해 늦가을 김윤종이 새 출발을 다짐하는 '제2의 화업'을 위한 둥지가 됐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이 고향인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영양군 교육청이 주관한 미술실기대회에 담임교사의 자전거를 타고 참가해 수상하면서 그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외가인 안동으로 나와 중고시절 미술부 활동을 통해 화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는 선친의 반대에 부닥쳤고 서울에서 재수를 해 영남대 미술대학 회화과(79학번)에 입학했다. 김윤종의 회고에 따르면 선친의 반대는 미술대학을 다닐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이후 그가 대학졸업 후 대구 불로 중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으면서 비로소 선친의 반대는 어느 정도 누그러뜨려졌다.

"교편을 잡을 때도 한 5년 정도만 하고 그림만 그리려고 했는데 그게 어느덧 2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윤종은 교직 29년 동안에도 24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첫 개인전은 1995년 송아당 화랑에서였다. 이때 화풍은 자연주의적 경향의 구상화가 주류였다. 문명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원초적이며 태곳적 자연 풍광이 그의 캔버스에 옮겨졌다.

"대학시절 학생미술 그룹인 미벽회를 중심으로 군중 속 현실을 빗댄 그림을 그린 적도 있죠.

표정 없는 군중이나 철조망에 갇힌 군중의 모습을 크게 그리기도 했지만 이후 나의 정서와는 근원적으로 맞지 않았고 또 그런 그림들이 단순히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는 교직을 하면서도 화가로서 본분에 충실하고자 밤을 새워 작품 활동에 매진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있다고 술회했다. 특히 그는 방학을 맞을 때마다 일주일에서 열흘씩 전국을 다니는 스케치 여행을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작가가 13년째 꾸준히 그리면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하늘보기' 연작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김윤종의 '하늘보기'는 2007년 동원화랑 초대전에서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전국을 돌며 스케치여행을 하면서 원초적 자연풍광에 대한 소재의 한계에 부닥치게 됐습니다. 어느 곳에서 스케치를 하던 중 '아! 이곳은 여름보다 겨울 풍경이 더 낫겠다' 싶어 한 두 계절 후 다시 찾았을 때 어느새 없던 도로가 생겨났고 둑이 세워짐에 따라 문명에 의한 자연 파괴를 경험했고 제가 원했던 풍경은 간데없이 사라지는 걸 목격했죠."

그런 와중에 언젠가 서해안 스케치 도중 선유도를 방문했는데 일기예보에 장마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것을 피해 목포로 내려가는 도로에서 비가 그친 후 해가 나오면서 구름이 낀 맑은 하늘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뭉게구름들의 다양한 조형적 형태가 삼라만상을 다 품은 듯 그에게 안겨들었던 것이다.

순간 그는 "아뿔사! 저 풍경이 내가 찾던 최고의 자연 소재가 아닌가"를 깨닫고 한국적 정서에 맞는 하늘 풍경을 캔버스에 옮길 생각에 사진을 찍고 현장느낌을 메모한 후 유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역' 64괘 중 첫머리를 차지하는 중천건(重天乾) 문언전에는 '하늘은 굳세고 강건하니 만물이 비로소 시작되는 곳'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김윤종은 이때 하늘의 풍광에서 문명에 의해 파괴되지 않을 영원한 자연풍광을 발견(?)한 셈이다.

"하늘보기 초기에는 구름의 다양한 물성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많은 그림을 그리면서 다양한 기법을 시도해 구름의 물성에 최대한 닮게 다가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기법 중 하나가 원근법의 무시였다.

대개의 풍경화에서 하늘은 배경요소에 불과하다. 김윤종은 반대로 하늘의 구름을 주제로 부각시킨다. 그의 구름은 화면 정면에서 보면 마치 관람자의 눈높이와 동일하게 구름의 형상들이 펼쳐진다. 이런 시각적 효과는 구름의 조형적 형태와 웅장한 기운을 표현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나다. 덧붙여 대담하고 적극적인 화면분할도 한몫을 한다. 그는 하늘과 바다, 하늘과 육지의 풍경을 8대2나 심지어 9대1정도로 분할함으로써 구름의 형태와 창공의 빛깔을 더욱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그의 작업은 지난 7월 대구문화예술회관 중견작가전에서 선보인 그의 대형 하늘보기 작품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가로 811cm에 세로 181cm의 대형 작품은 시선을 압도하고 남았다.

"이제는 하늘보기 연작에서 보이는 것만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상상력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을 그려 볼랍니다."

최근 김윤종은 팔공산 아래에서 작업하다보니 밤하늘을 자주 보게 됐고 그러다보니 밤하늘 별들의 운행 속에서 서로 속삭이고 소통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됨에 따라 밤하늘 풍경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의 밤하늘 그림이 이전에도 없는 건 아니지만 별이 속삭이는 진짜 밤하늘 그림을 볼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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