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2    업데이트: 19-11-2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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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깎아지른 순백의 절경에서 정갈한 백설을 뚫고 피어난 꽃처럼
아트코리아 | 조회 1,206
백자. 깎아지른 순백의 절경에서 정갈한 백설을 뚫고 피어난 꽃처럼
“대교약졸의 이치와 설백자의 품성으로 우리 시대의 백자가 지닌 의미에 화두를 던지다”
도예가 이점찬 경일대 디자인학부 교수/ KAIF 운영위원, 전시총감독
 

백자에는 중국과 서역의 교류흔적을 코발트빛으로 남긴 청화백자, 산화철 안료의 흑갈회빛이 생생한 철화백자, 맑은 토사에 산화구리의 적갈색 선을 그은 듯 한 진사백자, 고유의 형태로 조성한 민무늬 순백자가 있다. 태초에 수많은 흰색이 있었지만, 그 중 차가운 감촉에 따스한 빛을 지닌 흰색의 도자, 설백자는 청아한 눈의 빛깔을 까다롭지만 고결한 성품에 담고 조선 시대부터 전래해 온 500년 백의민족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현대인들에게 전하고 있다.
 
노벨상 재단 초대작가상 선정위원들이 주목한 여백의 미, 백자의 설백빛 미소
초목에 둘러싸인 경북 흥정길 도예연구원에는 35년이 넘도록 흙을 만지고 20여 년 간 백자를 다듬어 온 도예의 대가 이점찬 교수가 살고 있다. 이 교수는 도예를 지역문화 활성화에 접목한 봉산도자기축제와 경북도자기 자문위원 활동 등 도예를 국내외에 널리 알린 시도들과, 백자의 청아하고 고결한 가치를 세련되게 재해석한 공로로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재단이 주관하는 평론가 선정 초대작가상을 지난 해 5월 수상하며 세계적인 백자 전문작가로서의 권위를 입증했다. 대개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백자들은 청화백자, 철화백자, 진사백자, 순백자 등이지만, 이 교수는 청자와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전환하면서 수 천 가지 흰 빛 중, 맑은 우유와 같은 유백색, 사람 눈의 흰자처럼 약간 푸른 기운을 띠는 청백색을 거쳐 겨울 눈꽃송이를 닮은 설백색을 선택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유럽의 미술사조는 수십 년 이상 지속된 적이 없었음에도, 우리의 경우는 흰 삼베옷을 입고 사대부들이 발전시켜온 조선의 500년 백자 문화 덕분에 백자의 강국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성형하여 가마에 굽기까지 10개 중 2,3개도 건지기 힘들만큼 까다로운 공정 속에서 탄생하는 백자 중에서도, 화려한 광택 없이 고통과 성숙, 추억과 설렘을 동시에 상징하는 설백자에 몰두해 온 이 교수는 흙을 고르는 단계부터 고운 질감과 최상의 색만을 골라, 광택이 적은 유약을 사용해 백자의 온건한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 교수는 물레로 성형하여 과일을 깎듯 표현을 각 지게 깎아내고, 세필을 그리듯 꽃과 잎, 줄기를 매개삼아 사계절 자연풍경을 상징하는 생명체와 연결한 상징물로 간결하게 표현한다. 오랜 시간 자연바람에 두고 건조시켜 만든다는 이 교수의 백자들은 20년이 지나 오롯한 경지에 올랐음에도, 도자의 최고 단계인 백자를 위해 여전히 배운다는 그의 철학과 21세기 우리시대의 백자는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드러내고 있다.
 
서투르나 서툴지 않고, 비어있으나 올찬, 무광이나 찬연한 백자와 같은 사회되길
이 교수에게 좋은 백자 만들기란 좋은 흙과 유액을 고르고, 여백의 미를 살리며 백자에 간결한 메시지를 담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백자의 흰 빛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무(無)의 개념은 모두 땅을 개간하듯 공들여 정화하는 노고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그 여백에는 명상의 최고 단계와 같은 정결함이 응축되어 있다. KAIF((사)한국국제조형미술협회)의 평창올림픽 기념전 겸 첫 뉴욕전인 제 17회 국제교류전에 소개된 이 교수의 대표작 <남산풍경>은 설백의 둥근 달항아리에 음각과 도색으로 한 송이 긴 꽃의 정경을 그려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교수의 간결하고도 맑은 백자들은 귀한 사대부들이 지닌 고결함을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단출함으로 인해 소박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도 지녔다. 또 최근에는 금이나 금박으로 현대적 표현기법을 구사하는 한편 그 절제미 속에 왕실의 안녕과 부의 상징이라는 고전적 기억도 담아낸다. 이 교수는 백자를 다루는 삶이란,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과 일맥상통한다고 전한다. 기교를 배제하고 서툴러 보이지만 알찬 느낌의 설백자에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맑고 깨끗한 흰빛을 담아 사회의 혼탁함을 정화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교수는 거칠고 화려하며 탁한 백자 대신 고요한 눈의 빛깔로 무광의 백자를 조형하는데, 그는 이 과정에서 느림의 성향을 지닌 백자로 하여금 혼란스러움을 정화하도록 하는 기질을 내포해 가고 있다. 한편 이와 반대로 지도자로서는 ‘외연확장’이라는 기치를 세워 대구 도예 계를 이끌었던 이 교수는, 국내의 도예인들에게 한국에서 도예로 업적을 세운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 작가가 되었다는 의미이니 자부심을 가지라는 격려를 보내고 있다. 또한 유명 작가들과 도예전공 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작가교류, 순회전시 계획을 통해 많은 전시를 이뤄낸 이 교수는, 뉴욕 전시총감독을 맡았던 KAIF에서 창립 15년 차인 올해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회원 수 2,300여 명에 속하는 이 단체에서 이 교수는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편성된 작가들의 모임을 지역 중심으로 확대하고, 장차 우수한 수준의 전시회에 작가들이 꾸준히 참가할 환경을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작가로서 절정에 달한 백자의 정결한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구현하여 세상에 맑은 울림을 남긴 이 교수는, 도예문화 선도자의 위치에서도 예술 문화의 귀중한 가치 앞에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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