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8    업데이트: 17-10-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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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 강사가 되다②…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최우수상
아트코리아 | 조회 1,797
고행이 반복되자 신세가 처량해졌다

그림 이태형
 

나의 아버지는 급격히 뇌쇠함에 따라 우리 집도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비로소 마음을 바꾸어 학교 입학을 허락했다. 개울을 건너고 신작로 자갈길을 십리나 걸어가야 초등학교가 있었다. 솜바지 저고리에 코 수건을 달고 입학식에 갔다. 관내에서 100여 명이 넘는 꼬마들이 입학을 했다. 나는 늙은 아버지가 부끄러워 자꾸만 아버지의 시선을 피했다.

등`하굣길은 멀고 힘들었지만 매일 매일 배우는 한글과 숫자가 흥미가 있었다. 나는 비교적 공부를 잘했다. 읽기 쓰기에서 늘 1등을 했다. 덩치가 크고 싸움도 잘하는 친구가 반장이 되고 나는 부반장이 되었다.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삼국지라는 소설책을 읽게 되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소금장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무궁무진한 이야기에 완전 빠지게 되었다. 이 밖에도 수호지나 서유기가 같은 흥미진진한 중국 소설에 빠져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선생님은 꿈을 갖고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야 성공을 이룬다고 하셨다. 나는 꿈이 많기도 했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이야기꾼도 되고 싶었다. 신문기자도 되고 싶었고 화가도 되고 싶었다. 이렇듯 여러 가지 꿈을 갖게 된 것은 여러 부문에 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내가 삼국지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 친구들이 모여들어 숨죽여 들었고 글짓기를 하면 뽑혔고 그림을 그리면 늘 1등을 하여 게시판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그림이 군 대회에 나가 1등을 하고, 도 대회까지 진출하여 상을 탔기 때문이었다. 이때 내 별명은 솔거, 약장수, 변호사 등 세 가지나 되었다. 나는 학교장상을 타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집안 형편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열네 살에 소년 농사꾼이 되었다. 날마다 지게를 지고 머슴들을 따라다니며 나무를 하고 풀 베는 일을 배웠다.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으나 마음은 항상 비둘기 마냥 콩밭에 있었다. 눈에 책들이 어른거렸다. 인근 마을에서 읍내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는 단 한 명이었다. 그 친구는 여순반란 사변 때 반란군에게 아버지를 잃고 원호가족이 되어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원호가족은 국가에서 무상으로 고등학교까지 보내주었다. 나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검은 교복과 중자가 붙은 모자, 손에 든 책가방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머슴들이 시원한 그늘나무 아래서 지게에 누워 낮잠을 잘 때 나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이러한 모습을 본 이장님이 귀가 번뜩이는 말을 했다. "강의록으로 공부하면 혼자서도 독학을 할 수가 있단다!" "고맙습니다. 이장님!"

나는 독학을 하기로 했다. 강의록 값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았다. 약 3천원을 호가했다. 집에는 돈도 없거니와 공부를 한다면 반대를 할 것 같았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결심을 했다.

장작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산촌에서 돈을 만드는 일은 나무장사뿐이었다.              

◆독학 그 인고의 세월

지게에 톱과 도끼를 지고 지리산으로 올랐다. 죽은 나무 등걸을 옮기고 썰어 도끼로 장작을 만들었다. 열네 살 소년의 힘과 기술로는 벅찬 일이었다. 어른이 한두 번에 갈라질 등걸들이 수없이 패야 장작이 되었다.

장작을 지게에 싣고 칡넝쿨로 단단히 묶었다. 산에서 구례읍까지는 장장 오십 리 길, 20㎞나 되었다. 고무신을 신고 자갈길을 걷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 땀이 나면 미끈덕 거렸다. 가끔 자동차들이 먼지를 일으키고 지나갔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에 먼지가 덧칠을 하여 삼중고의 길이 되었다. 40㎏ 정도의 무게도 점점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여섯 시간이 소요되었다. 배는 고프고 허기가 졌다. 국밥집에 100원을 받고 장작을 팔았다. 국밥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국밥을 사 먹으라고 몸은 유혹을 하고 가슴에서는 강의록을 사라고 했다. 허기를 참고 귀가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 오니 이미 땅거미가 짙어지고 밤이 되어 있었다. 도둑고양이처럼 부엌에 들어가 식은 밥을 말아 먹었다. 발이 불어터서 짓물러 있었다. 소리 죽여 울며 잠에 곯아 떨어졌다.

다음 날도 지리산으로 올랐다. 고행의 길이 반복되었다. 이렇듯 열다섯 차례를 다니며 돈을 모으니 1천500원이 되었다.

이때 심한 좌절과 염세주의가 몰려왔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라는 유행가가 영향을 준 것이다. 윤심덕이라는 가수가 유부남 유학생 김우진과 사랑을 하고 현해탄 바다에 동반 자살을 하여 유명해진 유행가였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사랑도 명예도 다 싫다'로 이어지는 가사는 죽음을 부추기는 자살을 생각하게 했다.

나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고 느껴졌다. 늙은 아버지 척박한 산촌 문맹자들만 사는 현실이 너무나 암담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다음 세상에 태어나 마음껏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나는 밤새 호롱불 아래서 아버지께 유서를 썼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불효자는 먼저 갑니다라고 썼다. 유서에 눈물이 번져나갔다.

다음 날 아무 일이 없는 듯 지게를 지고 뒷동산으로 올랐다. 칡넝쿨로 올무를 만들었다. 소나무에 올무를 걸고 목을 넣고 발을 뗐다. 쿵하고 내 몸이 땅바닥에 추락했다. 칡넝쿨이 끊어진 것이다. 엉덩방아만 찧고 자살은 실패했다. 다른 방법을 알았다.

신작로에 숨어 있다가 트럭이 목재를 싣고 달리면 트럭에 뛰어들기로 했다. 신작로 모퉁이에 숨어 있었다. 목재를 가득 실은 지엠시 트럭이 나타났다. 이때 쏜살처럼 트럭 밑으로 뛰어들었다. 끼익 하고 트럭이 멈추었다. 흡사 임꺽정처럼 생긴 운전수가 내려오더니 내 뺨을 오소리 개 뺨치듯 갈겼다. "이 새끼야 뒈지려면 저수지에 빠져 죽어! 내 식구가 열이야!" "고맙습니다. 아저씨 죽는 방법을 알려주어서요!"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운전수는 혀를 차며 트럭을 몰고 떠나버렸다.

나는 얼얼한 뺨을 만지며 마을 위로 향했다. 무려 수심이 5m나 되는 오동나무 소로 향했다. 바위에 고무신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큰 돌을 들고 소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내 배 위에 누가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연신 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임마 죽을 용기가 있음 그 용기로 살아봐. 니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다. 죽을 용기로 다시 시작해 너는 꼭 성공할 거야!"

방학을 맞아 내려온 지주 아들 대학생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시골로 내려와 있었다. 오동나무 소에 수영을 하려 왔다가 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구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가족들이 연유를 알고 1천500원을 보태주었다. 나는 우체국에 가서 3천원을 강의록 선불로 서울로 보냈다. 날마다 집배원 아저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흡사 이 도령을 기다리는 춘향의 심정으로!

열흘 만에 강의록이 도착했다. 수염투성이의 링컨 대통령이 표지에 실려 있었다. 독학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링컨 대통령이었다. 종합강의록에는 영어를 비롯해 수학 국사 등 중`고등학교 전 과목이 실려 있었다.

<9월 5일 자는 2017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작인 홍원주 씨의 '나뭇꾼 강사가 되다③ '이 게재됩니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은

전국 언론사 최초로 매일신문이 제정해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입니다. 당선작 발표일(매년 7월 7일) 기준, 만 65세 이상이며, 미등단 및 등단 10년 이하인 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공모 부문은 논픽션(200자 원고지 100매 이상), 시(7편 이상), 수필(5편 이상) 등 3부문이며, 작품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2018년도 매일시니어문학상은 2018년 5월 초순 모집공고를 내고, 6월 초순 마감하며, 7월 7일 매일신문 창간기념호에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매일신문은 시니어문학상을 통해 선배세대의 지난했던 삶을 기리는 한편, 문학작품을 통해 선후배 세대가 공감과 감동의 폭을 넓혀 함께 더 나은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홍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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