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    업데이트: 18-04-11 15:30

칠곡이야기

송암 이원경을 기리는 재사 모암재
아트코리아 | 조회 767

1905년 송암 이원경의 재사로 후손 이승연이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떤 자료에는 이인술의 민가로 기록되어있다.그러나 칠곡읍지에 의하면 모암재였다.


모암재 뒤안 
 
북구 구암동 307번지에 있다. 1905년  지강 이승연이 그의 선조 송암 이원경의 재사로 건축했으나 지금은 음식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원경은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택선(擇善), 호는 송암(松巖)이다. 

 이당(李唐)의 차자이집(李集)을 일대(一代)로 하고 좌통례공 이극견의 차자 승사랑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광주이씨의 후손이다. 진사 이덕부(李德符)의 다섯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풍천임씨, 부인은 문화류이다.
진락당(眞樂堂) 김취성(金就成)을 스승으로 섬겼다. 과거 공부를 하지 아니하고 성리학에 전심하였는데 오건(吳健)강유선(康惟善), 여암(呂巖), 송사이(宋師頤) 등과 같은 여러 현인들과 공경하며 도의의 사귐을 맺었다. 높이 누워 세상을 보고 즐겼으며, 뜻을 높게 가지고 스스로 힘써 지조를 지켰다. 문목공 정구(鄭逑)가 항상 공경하여 정중히 대하였는데, 이원경에 대해 “외로이 뛰어나고 높고 깨끗한 자품과 범위를 뛰어넘는 높고 뛰어난 재주로 집에 거처하면 효성과 우애의 덕을 몸소 실천하고 세상에 처함에는 몸을 숨기고 말 없는 도(道)를 다하였다. 세상을 개탄하여 강개(慷慨)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힘써서 길이 한 도시락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도 비는 상황을 만나도 더욱 청렴결백하여 곤궁(困窮)을 견디는 절조(節操)를 더욱 높게 지녔다. 요순(堯舜)의 맑고 밝은 운수(運數)를 만나도 엄광(嚴光)과 도연명(陶淵明)의 세상에 숨어사는 절조(節操)에 뜻을 두었다”라고 평하였다. 사양서원 별사에 모셔져 제향되었다. 묘소는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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