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    업데이트: 18-04-11 15:30

칠곡이야기

청주 양씨 팔거 입향조 재사(齋舍) 거은재
아트코리아 | 조회 716

청주 양씨 팔거 입향조 거은 양관을 기리기 위한 재사의 기능과 더불어 문중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공간 거은재  전경


거은재 전면


입향조 거은 양관의 묘비

 

청주 양씨 팔거 입향조 재사(齋舍) 거은재

 

 

 

거은재(莒隱齋)는 청주 양씨 팔거 입향조 거은(莒隱) 양관(楊綰, 1618~1680)을 기리는 재사이자 종중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회합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공은 아버지 묵헌(黙軒) 홍례(弘禮, 1591~1653)와 어머니 풍천 임씨 사이에 달성군 다사읍 달천리 즉 달래에서 5남 2년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후 칠곡 자지미로 들어오니 곧 팔거 입향조가 된다.

아버지 묵헌으로부터 글을 배워 수신(修身)과 교자손(敎子孫) 즉 자식들 공부시키기에 전념했다고 한다.

아호 거은은 팔거에 은거(隱居)하며 살겠다는 뜻으로 오늘날 국우동 일대의 청주 양씨는 모두 공의 후손들이다.

아버지 묵헌은 통덕랑으로 한강 정구와 외조부 낙재 서사원으로부터 글을 배워 덕행과 문장이 뛰어나 사림의 존경을 받았다. 당시 명사이자 예송논쟁에서 서인의 거두 우암 송시열을 실각시킨 죽헌(竹軒) 도신징(都愼徵, 1611~1678)과 사월당(沙月堂) 류시번(柳時藩, 1569~1640) 등과 교유했다.

팔거로 입향하기 전 청주 양씨는 거은공의 할아버지 남재(南齋) 득효(得孝, 1572~1645)가 용양위(龍讓衛) 소속으로 대구진에 분속(分屬)되어 있으면서 낙재에게 나아가 글을 배우면서 그의 사위가 되어 다사 이천에 정착한데서 비롯된다.

즉 남제는 대구 입향조이고, 거은은 팔거 입향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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