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    업데이트: 17-06-09 22:43

중국서화미학

기운 - 부산 번역
아트코리아 | 조회 793

기운 

气韵


    기운생동은 사혁이 그림을 품평한 이론서인 <육법>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역대로 서화를 품평하는 최고의 기준이자 동시에 회화창작의 최고의 경지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그럼 무엇을 '기'라고 부르는 것일까? 노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품고 있다. 기를 충하는 것을 조화로 삼는다. " 여기서 기는 '유물혼성'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양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세를 포용하고 조화하는 모든 것이 본래 시작된 원기이다. 기는 형태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는 오히려 천지 사이에서 채워지고 없어진다. "면면히 존재하고 쓰여짐이 불근하다" 또한 기는 회화라는 구체적이고 미묘한 작은 천지에서도 역시 무형의 존재로서 한 폭의 회화 전체 평면공간에서 채워지고 없어지고 한다. 비록 기는 형태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화면상의 경물에 그릴 때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비록 보여지지 않지만 포치 구성상의 형세에서 끌어낸 유동하며 연관되는 시각적 인상들에서 기의 종적이 포작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운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문심조룡>의 해설을 보자. "같은 소리에 서로 응하는 것이 운이다." 또 말하길 "운은 정취풍도이다." "화가 소리나게 된 것을 운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설해 볼 수 있다. 만약 소리의 물결들이 음양이란 두 가지 서로 상반상성하는 진동형식의 존재가 아니라 변화가 없는 직선형의 유동이라면 오르락내리락 기복하는 음운미감이 발생할 수 있을까? 회화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반상성의 운동형식의 세를 가진 음양이 드러나야만 비로서 정취와 미감이 생성된다. 마치 용필에서 반드시 곡선미와 일률적이지 않은 빠른 운동의 리듬감의 운율미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림에 있어서의 '동성상응'의 도리는 서로 통하는 음운의 음절압운과 같다. 많은 것들을 각기 다르게 변화시키는 한편 세를 따르며 서로 조화로운 필치를 연관시켜 하나가 되게 한다. 혹은 많은 구체적 형을 가진 격물들이 서로 상통한 세를 좇고 연관되어 진다. 이러한 서로 조화되고 서로 연관 지어지는 감각을 바로 '기'라고 한다. 서로 조화되고 연관지어지는 구체적인 필치 및 그 형의 구체적인 변화로 생겨나는 바의 리듬감을 바로 '운'이라고 한다. 선명하게 말해보자면, 기와 운은 본래 둘이 아니다. 기운생동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회화형세가 갖추고 있는 기지유창 및 율동의 미감일 따름이다. 루옌샤오의 <운수송풍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그림 39)

 

그림 39

루옌샤오의 <운수송풍도>

 

 

 

 

 

    우리의 제 1 감각으로 화면에서 우러나오는 생기발랄한 기운이다. 이것이 바로 기운생동의 효응이다. 이러한 시각적 감각의 주요한 요소를 조성하여 화면격물과 필묵간의 풍부한 변화 및 그것들을 하나의 기로 관통시켜주는  조직적 형식이다. 구름과 물의 속성은 유동변환이다. 화가는 거듭 생동감 있는 필법 및 유동성 있는 필세의 조형으로 동감을 더 더욱 강렬하게 하여 화면 안에 기운이 충만되게 한다. 구체적인 부분까지 심도있게 들어간 즉 구름과 물의 호응은 기울어진 세가 이루어 진다. 서로 비추고 둘러 감싸 안으며 또한 커다란 기세와 리듬감을 이룬다. 한편 구름과 물은 본래 허한 것이어서 반대로 선을 구륵하여 실체를 표현하고, 산과 나무는 본래 실한 것이어 거듭 어지러운 구름을 이용해 허를 드러낸다. 허한 중에 실하고 실한 중에 허한 것이다. 허와 실은 서로 보완하며 이루어진다. 허와 실의 리듬감이 다양하게 변화되며 드러나게 된다. 화면의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일석일수가 다 규모를 가지고, 일필일묵이 다 율동감을 구성하여 무수히 많은 형태가 있어 눈이 있어도 다 볼 겨를이 없을 정도이다. 허실의 리듬이 갖추어 지지 아니한 곳이 없어 또 기로서 그것을 통하고 이끄니 늑 기운을 이름이다. 

 

      기운은 본래 매우 추상적인 것이어서 아주 번거로운 문제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는 기운에 대한 해설은 자못 신비롭고 다채롭다. 송나라 곽사는 <화론>에서 말한다. "그 기운과 같아 반드시 태어나 아는 것이다. 진실로 기묘한 비밀을 얻을 수 없고, 세월로 도달할 수도 없다. 신회를 묵묵히 계하는 것이니, 그러해서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기운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면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운은 생과 함께 나오는 천재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명나라 동기차이 말한 바의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 길을 가라. 가슴 속에 혼탁한 것들을 털어버리고 손 가는 대로 그려낸다면 산수가 전신이 되는 것이다."일 것이다. 동기창이 말한 것은, 책을 읽은 것은 화가의 문학적 수양과 지식을 향상시키게 하여 작가의 생활약력이 된다고 보며 화가의 정신기질을 변화시켜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그림의 기운생동 미감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서여기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한 화가의 인품이 향상되면 그 화가의 회화작품의 기질의 향상에도 큰 영향을 끼치므로 그림에서도 역시 그 사람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기운과 기질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인들의 이러한 인식방법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기운 이라는 것은 회화형식이 낳은 시각적인 율동미감이기 때문에 이 미감도 역시 회화에서의 풍신과 기품있는 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 예로 양귀비와 서자의 일화를 들 수 있다. 그림을 사람에 비유함에 이 풍신기도가 드러난 곳이 바로 "정취, 풍도"가 아니겠는가? 이는 분명 사람과 그림의 기질이 밖으로 넘쳐 흐르게 되는 것을 말함이다.

 

 

      들쑥날쑥 기복하며 죽 이어진 산맥, 끊임없이 이어지는 용맥, 굽고 꺾이며 이리저리 뱅뱅 돌고 도는 계류, 자유자래로 흩어졌다 모이는 백운 또한 그러한 기세로부터 "기운"을 찾고 있는 바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유추해 보면 중국 산수화 속에서의 모든 조합형식, 화법운용 그리고 최종의 효과를 포함하는 모든 것들이, 이러한 생각의 갈피와 방법으로서 "기운생동"이라는 정보를 탐색하고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림 40

져지앙의 <임천도>

 


      당연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운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다. 마치 사람의 정서와 풍도가 내재적 외재적으로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표시하는 것과 같다. 비록 형식은 정신을 담아내는 캐리어라고 하지만 질서감과 운율감만을 이용하여 '기운' 이 두 글자의 전체 내용을 포괄 망라해 차지해 버릴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말해보자. 질서감이 규정되어진 아래의 음율변화는 각기 다르고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심지어 회화의 격조, 품위의 고하도 표현한다. 우리는 격치가 낮은 그림이라고 평가내릴 수 없다. 다만 혹은 정치와 풍도라고 불리우는 질서감과 음율감이 갖추어 지지 않은 것이다. 정취와 경계가 너무 낮은 것이고 풍도과 기질이 높지 않았을 따름이다. 이러한 작품을 기운생동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설사 사혁이 말하는 6법을 고루 갖추었다고 해도 그 정서가 추악하거나 혹은 전쟁이나 사망을 부르는 것이라면 자연스레 사람들에게는 싫어하는 감정이 생겨날 것이다. 이런 회화작품을 기운생동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회화상에서의 기운은 형식적 필묵사이에서의 질서와 음율감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림 41

<석도산수첩>의 4번째

 

     예를 들면 격조, 품위, 등등의 요소가 그것이다. 한데 기운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하는  형식적 필묵의 질서와 음율감각이 얼마나 중요한가의 문제를 넘어서서 반드시 진선미의 전제하에 규정되어진다. 마치 정취를 말하기 시작하면 바로 문인의 고아한 선비를 떠올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혹은 풍도라고 말하기만 하면 절개있는 군자와 굳건한 장사를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한 바와 같이 '기운' 두 글자는 여전히 신비한 색채를 띠고 있다. 우리는 '만권의 책을 일고, 만리의 길을 걸어라.'라는 전통적인 방법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끊임없이 중국인의 예술 및 인품의 소질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우리 마음속의 지혜의 창을 활짝 열어젖혀야 할 것이다.

 

 

그림 42

제백석의 <와성십리출산천>

개구리 소리 십리 산골짜기 샘에서 나온다.

 

 

     총괄해보자. 기운이란 일종의 회화정신이다. 기운은 형식적 필묵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형식과 필묵에 구속될 뿐 만 아니라 위에서 서술한 필묵 구성 허실 련형(도가에서의 양생술) 수양 의경 등을 포함한다. 기운이란 놈이 내비치지 않는 곳이 없다. 중요한 것은 만물이 끊이지 않고 드러나는 화면 및 그림 밖의 종합적인 관조를 통해서 그 내재적 규율성의 변화와 연관을 발견해 갈 수 있다. 규율성이란 것은 바로 '理리'자이다. 일단 이 '理리'라는 녀석을 인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일을 유추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고 지식을 섭렵하여 다른 유사한 것을 미루어 알 수 있게 된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