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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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46    업데이트: 21-11-04 13:00

<오늘의 자작추천시> 박숙이, 감자
아트코리아 | 조회 606
감자
박 숙 이
 

감자를 깎으며 알았습니다
감자는, 감자의 눈이 잘 발아한 만큼 감자가 달린다는 걸발아란 싹이 튼다는 뜻인데
감자역시도 우리 처음 만날 때처럼 
눈에서 먼저 사랑이 은근히 싹튼다는 걸 알았습니다

눈에서 먼저 사랑이 파랗게 싹튼 후로는
흙에 스며들어 
그 사랑이 둥글게 둥글게 옹골차게 완성될 때까지는

눈을 감자 눈을 감자
있는 눈도 없는 척
봐도 못 본 척,
하여, 지금 눈앞의 감자가 눈을 적당히 감고 있습니다

바람 앞에서도 눈 감고 돌부리 앞에서도 눈 감고 
어둠속에서 굴레 속에서도 지긋이 눈감자고
수백 번 아니 수 천 번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실행했으므로 
우린, 여기까지 넌출넌출 둥글게 온 것입니다

감자는, 여러 개의 눈으로 자신을 과묵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 아 둥근 삶이란, 조용히 눈 감을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 작가노트


   
▲ 박숙이 시인눈이 많은 감자는 늘 조용히 살아갈 궁리를 궁굴리고 있었다.
친정 엄마께서도 맏며느리는 눈을 감고 살아야 한다고 귀에 못질을 해주셨다. 
제자리에서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둥글어진 저 감자, 저 감자의 지론도 아마 눈을 감고 살아가자 이것 아니었겠는가.* 박숙이 시인은 매일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시안>으로 등단하였다. 한국문협, 한국시협 및 시산맥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활짝』을 펴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김영미안 anteajun@naver.com<저작권자 © 부울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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