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초월한 온라인 전시관

대구 2019 석경 이원동전
2019/05/15 | 아트코리아 | 조회 36515 | 댓글 3

봉산문화회관
석경 이원동 '石鏡 李元東'

521일(화) ~ 526일(일)
봉산문화회관 3층 전관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tel.053-661-3500)  

 

석경 이원동, 맑은 몰입의 청광매(淸狂梅) - 이인숙
 
 
사군자라는 주제
 
사군자그림의 주제는 군자(君子)이다. 매난국죽 네 가지 식물이 사군자로 각별하게 군자의 상징을 얻게 되었다. ‘지조로운’(이원동 작가의 표현) 대상인 것이다. 그 상징성을 사자성어로 요약한 것을 적어보면 매화의 설리개화(雪裏開花), 난초의 공곡유향(空谷幽香), 국화의 오상고절(傲霜孤節), 대나무의 녹죽의의(綠竹猗猗) 등이다. 이외에도 매난국죽의 생태를 인격의 관점에서 기린 어휘들이 많이 있다. 지금의 말로 적어보면 이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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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불굴의 의지
난초: 고독한 향기
국화: 포기 하지 않는 대기만성
대나무: 변치 않는 굳센 용기
 
군자라는 주제는 시와 산문의 문학으로, 노래와 연주의 음악으로, 문양과 그림의 미술 등으로 꽃 피어 동아시아 고전 예술을 수놓았다. 이상적 인간상을 지향한 왕조시대 지식층의 도우미였던 매난국죽의 메시지는 지금도 좌우명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주체만을 북돋우는 이 추상적 관념은 한 개인의 인생 목표를 단조롭게 설정했던 왕조시대 가치관을 반영한다. 신분 제도, 유교 이념, 농업 사회 등 지금과는 달랐던 삶의 여건 속에서 나왔다. 그래서 군자라는 관념적 가치는 마음수련과 자기계발이라는 범주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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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라는 주제가 미술사 속에서 성장해 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묵죽과 묵란은 죽석화, 석란화로 그려지며 허심우석(虛心友石), 석교난맹(石交蘭盟)의 우정으로 확장되었다. 우죽(雨竹), 설죽(雪竹), 풍죽(風竹) 등 기후를 반영하며 서정성을 띠기도 했고, 무근란(無根蘭), 노근란(露根蘭), 현애란(懸崖蘭) 등으로 시대를 우의하기도 했다. 매화그림과 국화그림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사군자화는 시대적 요청과 작가의 개성으로 이념과 형식을 넓히며 생명력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군자라는 주제는 이제 주체 중심에서 군자의 주변과 군자가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로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군자는 인간다운 인간이다. 그리고 이 목표지점은 인류세의 사라지지 않을 공통선이다. 다만 환경이 바뀌었으므로 이 주제는 대대적인 혁신의 리빌딩과 버전 업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불굴의 의지로 포기하지 않고 더불어 발전을 도모할 때, 고독한 향기를 아낌없이 주변에 퍼트릴 때, 포기하지 않는 대기만성의 열망에 유연한 유머를 곁들일 때, 변치 않는 굳은 마음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함께 할 때 군자라는 주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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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회화사에서 매화그림
 
사군자가 하나의 장르로 회화사에 자리 잡은 명나라 말기 이후 매화는 대나무와 난초에 비해 하위 소재였다. 대나무그림과 난초그림은 우위를 다툴 때도 있었으나 굳이 따지자면 대나무가 첫째, 난초가 두 번째, 매화는 세 번째가 될 것이다. 대나무는 『시경』에 나오고, 난초는 공자와 굴원이 언급한데 비해, 매화는 북송 때 임포로 인해 문인들의 애호를 받게 되었다. 대나무와 난초에 비해 서사의 역사가 짧은 것이다.
그래서 매화를 주제로 삼은 화가들 중에는 대나무나 난초의 대가와 경쟁하지 않기 위해 매화를 그렸을 것 같은 작가도 있다. 승산이 적은 쪽 보다 다른 길로 가서 일가를 이루겠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청나라 중기의 동심(冬心) 금농, 조선 말기의 우봉(又峯) 조희룡, 근대기 대구의 경재(敬齋) 서상하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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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농은 시인이자 서예가, 금석고동(金石古董) 수집가로서 만년에 묵죽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양주팔괴 중 판교(板橋) 정섭을 능가할 수 없게 되자 매화그림으로 방향을 바꾸어 유명해지게 되었다. 조희룡은 추사(秋史) 김정희의 제자인 중인(中人) 문인화가로 처음에는 김정희풍 묵란을 그렸지만 중년 이후 매화그림에 전력을 기울여 한국미술사 최고의 매화그림 작가로 남게 되었다. 서상하는 석재(石齋) 서병오와 두 살 차이 나는 동년배로 서병오의 영향 아래 사군자화, 화훼화 등을 그렸는데 특히 매화그림 대작을 많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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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대나무나 난초 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진 만큼 전통 화법의 중압이 적어 작가의 실험 정신과 창작력이 더욱 발휘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금농은 색채를 도입해 홍매로 매화그림의 정체성을 확장했고, 불투명 화이트인 호분(胡粉)으로 흰 매화꽃을 칠하기도 했다. 홍백매를 함께 그려 쌍색매화(雙色梅花)를 개척했으며, 황매(黃梅)까지 합해 삼색매화(三色梅花)도 그렸다. 색채 뿐 만 아니라 매화그림의 구도와 형식에 있어서도 금농은 신기원을 이루었다.
김정희가 사군자에는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와 서예의 필법이 들어가야 한다고 할 때, 조희룡은 그림은 학식이 아니라 손의 재능이라는 수예(手藝)를 주장하며 붉은 꽃송이가 만발한 화사한 홍매를 그렸다. 금농처럼 벼루 수집가였던 조희룡은 금농의 호 백이연전부옹(百二硯田富翁)에서 따와 백이연전전려(百二硏田田廬), 백이연전경자(百二硏田耕者) 등으로 호를 쓰기도 했다. 벼루는 문인에게 미인의 거울과 같다는 말이 있다. 조희룡은 매화그림의 거장인 금농을 열심히 배웠던 것이다. 조희룡은 백매, 홍매, 홍백매, 전수식(全樹式) 홍백매 연폭(連幅) 등 다양한 유형의 매화그림을 남겼다. <매화서옥도>(간송미술관 소장)는 탐매도(探梅圖), 심매도(尋梅圖)의 전통을 계승하여 자신의 지극한 매화 사랑을 산수화와 결합시킨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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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그림을 이야기할 때 청나라에서는 금농을, 조선에서는 조희룡을 빠트릴 수 없다. 이들이 이룬 혁신은 그 당시 작가들 중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금농과 조희룡은 자신이 넘을 수 없는 대가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불리한 조건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들의 매화그림은 미술사에 남았다. 지금의 미술 세계에서 사군자화는 불리한 조건 속에 있다. 그러나 매화를 통해 금농과 조희룡이 정섭과 김정희를 능가했던 것처럼 지금의 이 조건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작가가 나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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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묵성과 여백미
 
군자라는 주제는 군자를 지향하는 지식층에서 필연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지필묵연이라는 필기구를 가지고 공부를 하고 시를 쓰던 그들 중에는 그림에 소질과 취미가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언가를 묘사하는 훈련을 받은 적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그들은 평소 공부하며 글씨를 쓰던 필력을 바탕으로 간단한 먹그림을 그렸다.
그들에게는 자연히 글씨 쓰기로 숙련된 일필휘지의 서예적 필치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사용해 왔던 먹 사용법이 있었다. 이들이 이미지가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 때 가장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필(筆)과 묵(墨)의 정밀함(精)과 숙련됨(熟)이었다. 평생 손에 쥐던 먹과 붓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필묵의 수준에 대해서는 도사들이었다. 무어라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한 인격체의 뼈(骨)와 피(血)의 개성이라고 할 필묵미가 문인화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여백(餘白)은 무언가를 그린 후 그려지지 않은 부분인 공백이다. 그러나 비었다고 하지 않고 남았다고 한다. 여백은 어떻게 보면 문인화가들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안 그린 부분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얼마나 잘 그려서 재현된 이미지로 감동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안 그려서 여운을 남길 것인가가 문인화의 한 특징이다. 사군자화에서도 여백은 텅 비어 있으면서 변화무쌍한 공령(空靈)의 공간이 된다. 여백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여백이 그려져야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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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은 수묵이 그렇듯이 그림에 있어서 하나의 발명이었다. 수묵은 당나라 말에, 여백은 남송 시대에 발명되어 많은 작가들에 의해 변화를 거치며 성장했다. 그러나 예술의 경우 이미 발명된 것은 활용할 필요조건일 뿐이지 우월성을 담보할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지금의 사군자화는 지나간 시대 문인 출신들의 일과예(一科藝)와 달리 전문 작가들의 영역이다. 또 다른 승부처를 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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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경 청광매(淸狂梅)
 
이원동 작가는 이번 전시작을 모두 매화그림으로 구성했고, 이 매화들은 모두 붉은 꽃의 홍매이다. 붉은 색의 상서와 매화의 격조를 모두 담아낸 그림들이다. 꽃이 매화 둥치에 비해 작고(小) 적어(少) 희소한 것은 매화나무가 오래되고 늙었기 때문이다. 열매를 수확하려는 매실농원의 매화나무와 달리 이런 고매(古梅)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매는 그래서 귀하다. 그 늙음과 오램이 숙성시킨 구불구불한 둥치와 가지의 추상성은 필묵미와 만났고, 올해 새로 꽃을 피운 아름다운 붉은 홍매 꽃은 상서로움을 상징한다.
사군자그림의 가장 중요한 정신을 한 글자로 꼽는다면 청(淸)이 될 것이다. 이원동 작가의 이번 전시작 매화그림들을 보았을 때 ‘청광매(淸狂梅)’라는 말이 떠올랐다. 매화그림에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지만 청광매라는 말을 누가 쓴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청광은 ‘맑은 몰입’이다. 몰입을 위한 스스로의 격리와 단절을 포함한다. 작가의 그러한 몰입에서 청광매가 나왔다. 작품의 스케일이 대단한 가운데 200×730㎝, 140×600㎝의 대작 홍매는 작업을 대하는 작가의 결기가 여전히 진행형임을 웅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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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작 중에 월매(月梅)그림이 여러 점 있어 그 유래가 된 임포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이원동 작가의 몰입을 위한 삶의 방식과 태도와도 연관이 되기 때문이다. 임포가 고산에서 홀로 살아간 것은 고립이나 도피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임포는 젊은 시절 강남을 주유하며 40세가 되도록 각지의 산수를 두루 돌아보았으나 모두 고향 서호만 못하다고 생각하여 행랑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와 서호의 북쪽 고산 북쪽자락에 초려(草廬)를 묶고 살았다. 고산에 살면서 집 주위는 물론 부근의 산과 물가 여기저기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임포는 매화를 심고 자기가 심은 매화를 즐기는 것을 재미로 삼았다. 매화 필 때는 한 달이나 집밖을 나가지 않고 종일 매화를 감상하고 시를 지으며 혼자 즐겁게 지냈다. 어떤 일보다 흔쾌했기 때문이다. 임포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매실이 열리면 수확해 두었다 팔아서 생활비에 보탰다.
서호 가에 살았던 임포의 매화시 중에 <산원소매(山園小梅)>가 있다. 구양수가 절찬한 아래의 두 구절에서 매화와 달을 한 쌍으로 그리는 그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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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횡사수청천(疏影橫斜水淸淺)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
성근 매화나무 그림자는 비스듬히 맑은 물위에 비치고
그윽한 매화향기는 몽롱한 달빛 속에 감도네
 
월매(月梅)그림의 주제는 암향(暗香)이다. 향기는 모양도 형태도 없지만 잊을 수 없는 각인을 남긴다. 작가는 한 인격의 형체 없는 특질을 그림이라는 형이상학적 물질의 형태로 영원히 남길 수 있다.
 
2019년 5월 이 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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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개
삭제   답글 손동옥  |  19/05/17 01:20
또박또박 송이송이 불타는 희망의 외침에 용기를 덤뿍 얻습니다. 감사드리며 전시 축하드립니다.
삭제   답글 유주은  |  19/05/16 16:16
여백이 있기에 꽃이 더 빛나보이네요^_^ 다양한 매화그림으로 눈과 마음이 정화됩니다~전시를 축하드립니다^.^
삭제   답글 이한솔  |  19/05/16 15:08
달과 매화의 조화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전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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