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37    업데이트: 16-07-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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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너무 많아
아트코리아 | 조회 730

길이 너무 많아
                                                -이태수


길이 많아, 너무 많은 길 위에서
길을 잃는다. 눈 비비고 보아도 안 보여
비틀거린다. 붙들어도 마냥 달리고
달리면서도 멈춰 서는 저 길들…… 언젠가는
다다르고 싶은, 아득한 집, 꿈결 같은 방과
햇살 퍼덕이며 뛰어내리는
창 하나 끌어당겨 꿈꾸고 싶다.

길은 가다 서다 뒤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얽히고설킨 발자국들과 거기 담긴 먼지들만
되돌아온다. 며칠째 풀들은 기죽은 듯,
느릿느릿, 황사 뒤집어쓴 채 엎드린다.
나무들도 덩달아 주저앉거나 허리를 구부린다.
불콰하게 중얼거리는 서녘, 풀잎들도
제 먼저 돌아앉으며 어둠을 껴입는다.

날이 저물자, 새들은 허공의 길들
구부려 안은 채 나뭇가지에 걸린 제 둥지에
깃들인다. 어두워져도 여전히 길이 많아,
너무 많은 길 위에서 길을 버린다.

별빛 쏟아지는 나의 집, 꿈결 같은 방과 창 하나,
그 길들 죄다 끌어당긴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
그 바깥에서만 밑도 끝도 없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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