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37    업데이트: 16-07-21 17:03

사이버서재

서녘이 타고 있다
이태수 | 조회 894

서녘이 타고 있다

                                                 -이태수


서녘이 붉게 탄다.
새들은 노을 속으로 날아오르고
나뭇잎들은 손을 풀고 땅 위로 내린다.
간간이 적막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벗은 나뭇가지들을 감싸 안는다. 속절도 없이
나는 그 풍경 안켠에 마음 부려놓으며
멀거니 바라보다가 다가서서 들여다본다.

아무래도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뒷걸음이나 게걸음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참담하다. 이 적막은 그 말을 은밀히
들려주고 있는 건지. 눈 비비며 들여다보고
뒤집어 생각해 봐도 마냥 그대로다. 아예
주눅 들어서인지, 저 높고 낮은 집들은
표정도 없는 불들을 내걸고 있다.
그 위를 짓누르는 뿌윰한 하늘 자락엔
수상한 기호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것만 같다.

이쯤에서 다시 바라보면 어김없이
빈 나뭇가지에 두둥실 걸리는 둥근 달,
별들도 따스하게 서로 아마 조아리며
모이거나 흩어져 앉아 있다. 겨울이 오고 다시
가버리면 봄도 돌아오련만, 흰 가루 한 숟갈에도
화들짝 놀라는, 이 뜬금없는 공포의 그림자들을
적막은 안간힘으로 끌어안고 있는 건지,
서녘은 아직도 저토록 불게 타고 있다.

깊은 밤, 홀로 성호를 그으면

조금씩 낮아집니다. 이마와 가슴,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에 차례로

희미한 불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낮아져야

환한 불이 켜질는지요?

 

날마다 가슴치면서도

때로는 손이, 발이, 또 어떤 때는

마음이 고장난 기계입니다.

제동을 걸어도 멈추지 않거나

옆으로 빠지기 일쑤입니다.

 

그럴 때 마다 아프게 뒤척이며

이마 조아려 두 손 모으지만

그 분이 대신 짊어지고 매달리셨던

그 십자가는 아득합니다.

불쌍히 여겨 내려다보기만 합니다.

 

도대체 내 마음의 십자가는

언제쯤 가벼워질는지요?

가벼워져서 그 분의 눈부심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어두워질수록

환한 불을 켜야 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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