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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

文學의 ‘프로슈머’ 경향
이태수 | 조회 786

<세풍>-40-(2002.11.28)

文學의 ‘프로슈머’ 경향

 

 

李 太 洙 <논설위원>

 

 

 문학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우리 문화 전반이 경량화되는 영향도 적지 않겠지만, 무게와 깊이를 지닌 문학보다는 발랄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표현의 작품들이 읽히는 경향이 지속적으로 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보다는 대중적 교감이 잘 되는 문학이 선호되는 분위기가 굳어지는 소위 ‘대중화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탓인지, 요즘 많이 팔리는 작품집들이 대부분 쉽게 읽히고 유행어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으로 일관하는 경우라 한다. 이런 추세 때문에 깊이 있는 사유보다는 감성과 감상을 가볍게 자극하는 작품들이 판을 치는가 하면, 정평이 나 있는 문인들마저 아예 노선을 바꿔 그런 작품을 전략적으로 쓰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게다가 출판계와 매스컴도 그런 분위기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게 한다.

 

 출판계는 안심할 수 있는 소수의 ‘스타’ 작가·시인들에게 계속 투자하는 게 관행이 돼 버렸으며, 텔레비전의 책 소개 프로그램들도 대중적 인기 몰이를 하고 있어 스타들의 고착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모습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아무개다, 하면 무조건 사고 보는 ‘명품 의식’이 옷뿐 아니라 문학으로도 옮겨진 것”이라지만, 문학의 장래를 생각하면 결코 간과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요즘은 문단에는 ‘프로슈머(prosumer)’라는 신조어까지 나돈다. 생산자를 뜻하는 ‘producer’와 소비자를 의미하는 ‘consumer’의 합성어인 이 조어는 인터넷을 통해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독자가 직접 문학작품을 생산해 만족을 얻는 데서 만들어진 말이지만,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깊이 있는 문학작품을 읽어 줄 독자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는지 모를 일이다.

 

 영상화 시대를 맞아 문학이 제공하던 재미와 영향력이 상당 부분 영화·텔레비전·컴퓨터 화면 등으로 넘어간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날에는 책상 앞에 앉아 문장 수업을 하는 등 문학에 열정을 쏟을 법한 재능과 꿈을 지닌 젊은이들이 영상매체나 그와 가까운 문학의 변두리로 쏠리고 있는 분위기도 시대적인 추세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을 축으로 하는 우리의 정신문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뒷걸음질하거나 황폐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문학이 살아남고 우리의 정신문화가 상승작용을 하려면 오히려 달라진 문화적 환경에 대한 ‘반발의 정신’을 강력한 동력으로 삼는 지혜와 슬기가 요구되는 게 아닐는지…. 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 옹호가 지상과제라 할 수 있으므로 살아남아야 할 뿐 아니라 반드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문인들은 가벼움으로 치닫는 시대를 박차고 오르거나 거슬러 오르면서까지 ‘신성한 언어’와 ‘정신의 깊이와 높이’를 지키고 새롭게 창출하려는 도전 정신과 사명감을 갖는 게 옳다. 그러나 이제 빵이 되기 어려운 그 길을 마냥 걸으라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는 문학만 선호된다면 우리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으며, 뭔가 생각하게 하고 깊이가 있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치닫는 기류가 드세 진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위기 조짐들은 그뿐 아니다. 이른바 신춘문예 시즌이 돌아 왔지만, 젊고 패기만만한 남성 문학 지망생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현상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근년 들어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의 70% 이상이 30대 이상의 여성이다. 문예지·문학지를 통한 문단 등단의 여성화·고령화 추세는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최근 문학계간지들의 등단자들도 대부분이 여성이며, 40대 이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문학적 수련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거나 진중한 문학에 무게 중심을 두기 때문이라는 긍정적인 풀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보다는 젊은 남성들이 문학을 기피하는 경향이고, 상대적으로 결혼 뒤 생활의 여유를 찾은 여성들이 자기성취를 위해 늦깎이 등단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라면 분명 문제가 없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문예창작과를 둔 대학이 전국에 50여 곳이나 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문학의 위기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문학의 위기는 바로 정신문화의 위기라고 볼 때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은 세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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