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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

‘내 탓이오’와 ‘똑바로’
이태수 | 조회 846

<세풍>-42-(2003.3.6)

‘내 탓이오’와 ‘똑바로’

 

 

李 太 洙 <논설위원>

 

 1980년대가 거의 저물어갈 무렵,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내 탓이오’라는 표어를 내걸고 벌였던 ‘신뢰 회복’ 운동이 새삼스럽게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가슴을 세 번 치면서 자신의 허물에 화살을 돌리는 ‘고백의 기도’에서 따온 이 말은 날로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세태에 비춰 더없이 소중한 덕목으로 보인다.

 

 더구나 새로운 세기를 맞으면서 이 단체는 ‘내 탓이오’ 운동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 화두를 ‘우리 함께 똑바로’로 바꿔 그 의미를 더욱 증폭시켰었다. ‘도덕성 회복’을 지향하는 이 운동은 공동체 의식과 ‘곧게’ ‘바르게’ ‘정직하게’를 끌어안음으로써 ‘내 탓이오’의 자기성찰과 고백에서 한층 강력해지면서 적극적인 빛깔을 띤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 함께 똑바로’는 고사하고 ‘내 탓이오’가 실종된 지 이미 오래되지는 않았는지…. 그 사정은 그야말로 위도, 아래도 없을 지경이다. 가진 사람은 권력과 부(富)를 더 가지려고만 하고, 없는 사람들은 박탈감 때문에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며, 불평과 불만만 커지는 형국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천륜(天倫’ ‘인륜(人倫)’ 등의 말이 있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미덕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제 밥그릇 챙기기’식의 개인이나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하는가 하면, 그 요구도 봇물처럼 분출되는 상황으로 치달아 왔다. 이 때문에 위는 위대로, 아래는 아래대로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너는 돼도 나는 안 된다’거나 ‘너 죽고 나 살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궁극적으로는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공멸의 위기까지 부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는 ‘졸속’과 ‘부실’이 날개를 달고, ‘관리 부재’가 심화되면서 반복적으로 재앙을 부르곤 했다. 그 때마다 ‘이익(?)을 얻는 사람 따로, 희생되는 사람 따로’인 비극을 빚었다. 더구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앙이나 참극들이 대부분 사람들의 잘못이나 관리의 소홀과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공직자들의 도덕적 무감각이 도를 넘고 있다는 비판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배는 침몰하고 있는데, 그 배를 구하려 하기보다 자리 지키기와 출세에만 눈이 어두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같은 이기주의는 개인주의와도 엄연한 차이가 있다. 개인주의는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치 않고 자신과 소속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나보다는 남을 위하고, 주위와 더불어 사는 이타주의를 높이 여겨 왔다. 훌륭한 목민관들이야 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기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는 배금주의와 결합되면서 더욱 메마른 세태를 조장해 왔다. 급기야 이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과 규정을 어기고, 공공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예사롭게 여긴다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능력 없는 사람’으로 비웃는가 하면, 불신과 무질서와 약육강식의 투쟁 상태가 지속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는 누구든지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찾아야 한다. 특히 공인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과 자리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이번 대구지하철 참사는 분명히 미증유의 인재(人災)요, 관재(官災)다. ‘내 탓이오’와 ‘똑바로’가 실종된 지점에서 빚어진 엄청난 참사요, 어처구니없는 비극이다. 지금 그 당사자들도 곤욕을 치르는 중이지만, 이기주의에 안일주의까지 보태져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좀 독하게 말하면 공인들의 어리석음이 피할 수 없는 ‘부메랑’까지 부른 꼴이다.

 

 엄청난 재앙을 부르는 인재나 관재 시비가 고장난 녹음기처럼 재생되지 않는 날이 언제쯤 올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이 참회의 지점에서 따스하고 살만한 사회를 위해 ‘내 탓이오’와 ‘똑바로’라는 ‘마음의 촛불’을 밝혀야 한다. 거기에다 ‘나눔’과 ‘베풂’을 보탠 불꽃이 타오를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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