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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

패거리․제몫 챙기기
이태수 | 조회 830

<세풍>-44-(2003.5.29)

패거리․제몫 챙기기

 

李 太 洙 <논설위원>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지럽다. 원칙이 없고, 도덕성도 땅에 떨어져버렸다. 각계각층의 ‘집단 분출’식 요구를 통한 ‘제 몫만 챙기기’가 위험 수위를 넘고 있으며, 거짓말이나 말 바꾸기, 극단적인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친다. 자신들의 이해에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집단의 힘으로 요구를 관철하려는 풍조가 널리 퍼지고, 실제 그런 ‘막무가내’식 힘의 논리가 먹혀드는 ‘아픈 현실’이다. 그 바람에 우리 사회는 자신과 자신이 소속된 ‘패거리’의 이익만 추구하는 ‘삭막한 풍경’ 속에 내팽개쳐지고, 그 세력 다툼이 창궐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정도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면서 요구도 그만큼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더러는 상호 극단적으로 부딪치며, 뜻을 관철하기 위한 세력 다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하게 바로선 사회라면 그게 별 문제가 아니다. 다소의 불만을 갖게 되고, 얼마간의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원칙과 도덕성만 담보된다면 공감하거나 수긍하게 될 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러나 공정하고 투명한 원칙과 도덕성이 무너져버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불만 세력’의 요구를 뒷거래로 받아들이고 무마시키는 바람이 고개를 들었다. ‘강하게 밀어붙이면 이익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생각들을 키워 오기도 했다. 그 때문에 도덕성은 물론 원칙마저 내팽개친 채 패거리끼리 세력 다툼으로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버린 느낌이다. 심지어 폭넓은 지지는커녕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단체라도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면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판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실세들과 ‘코드’만 맞으면 만사형통인 ‘패거리 세상’이라면 우리의 장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사실 갈수록 그런 풍조가 확산, 크고 작은 집단들이 거의 예외 없이 패거리 만들기와 실리 추구로 이전투구를 하는 모습이다. 온 나라가 집단주의에 빠지고, 눈앞의 이익만 챙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젠 불안한 차원을 넘어 위기감마저 버리지 못하겠다는 한탄도 나온다.

 

 근래의 몇 가지 사례만 들더라도 두산중공업․철도노조의 파업, 화물연대 운송 거부 사태에 이은 교육부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일부 시행 유보 결정도 이익집단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그대로 밀리는 정부의 무원칙․무기력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코드’만 맞으면 수시로 말을 바꾸면서라도 자기편의 손을 들어주는 풍토라면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사회 현상 뿐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그 사정은 비슷해 적지 않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젠 어떤 공동체 안에서도 인격이나 능력보다는 같은 패거리만 중시되는 분위기에 속도가 붙는가 하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되레 푸대접받는다는 소리도 없지 않다. 뿐 아니라 능력이 있거나 바른 생각을 하면서 그런 집단 분위기에 순응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거나 밀려나기도 한다니 기가 찬다.

 

 우리 사회가 다시 건강하게 일어서려면, 다소의 불만을 가지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공감하거나 수긍할 수 있는 원칙부터 하나씩 바로 세워 나가야 한다. 국가․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패거리 문화’가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안 되고, 그 해악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이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다” “정직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 비판은 분노보다는 연민에 가까운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오죽했으면 정치인들을 그렇게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도층 인사들부터 ‘정직의 실종’에서 발길을 돌리는 일이다. 정치판이 끊임없는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제 몫만 챙기는 추세라면, 진정한 자성을 통한 투명성과 우리의 전통적인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원칙을 끝까지 중시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수범’을 앞세울 수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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