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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

학원공화국 ?
이태수 | 조회 920

<세풍>-47-(2003.10.16)

학원공화국 ?

 

李 太 洙 <논설위원>

 

 공교육의 위기가 거론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 번창은 누구나 공감하는 우리 교육의 커다란 문제다. 국민 모두가 사교육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가 하면, 이 ‘교육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사회의 과외 열풍은 ‘집단정신병’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공교육을 잡아먹는 사교육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과외 과소비는 이제 ‘명품 과소비’ 차원을 넘어 ‘가짜 명품 과소비’라는 지적도 있다. 더 독하게 말하는 사람은 ‘마피아 과소비’라고도 한다. 과외가 인성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엄청난 해를 끼친다는 데 그 뿌리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민’이라 한다. 자신의 소득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집값 상승세나 사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이유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4 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2%나 늘어났다. 게다가 ‘학원 공화국’으로 불릴 만한 사교육 열기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지출 비중과 학교 교육비 중 민간 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라니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푸념뿐 아니라 한탄이 안 나올 수 없다.

 

 우리의 교육 문제는 대학 서열화에 따른 입시 경쟁과 이 경쟁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되는 데서 비롯된다. 그 이면에는 학벌 사회의 고착과 경쟁의 맹목성이 자리잡고 있다. 일제 시대 이후 전통적 계급 갈등이 해소된 뒤 이를 대체한 신형 ‘한국판 계급’ 균열로 대학 서열화에 따른 학벌 사회가 고착돼 왔다. 출세의 척도가 고교.대학 출신교가 되고, 일류 대학을 못 나온 사람은 제 구실을 못 하게 된 세태다.

 

 우리의 교육 위기는 교육 당국의 문제뿐 아니라 국가적 과제이다. 정부는 근래에도 다양한 사교육비 줄이기 대책을 논의해 왔다. 과외 수요를 부르는 대입 제도 개선책으로 자격고시화 하는 방안, 사교육 수요를 학교에서 흡수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들도 현실과 동떨어져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내놓은 사교육비 줄이기 방안도 과연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수학능력시험을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꾸고, 초.중.고 학제를 ‘6-4-2’제로 개편하며, 사설학원들의 관리.감독을 강화한다는 게 그 골자다. 그러나 점수제를 등급제로 바꿀 경우 변별력이 더 떨어져 대학들이 또 다른 평가 방법을 만든다면 되레 새로운 사교육을 부추기게 되지 않을는지…. 수능의 변별력 상실은 학생이나 학부모들 사이에 시빗거리가 되는 민감한 사안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전번 점수제 대학 입시에서도 소수점 이하 점수를 무시하는 바람에 합.불합격이 바뀌어 소송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학제 개편 역시 사교육비를 줄이는 방안이 될 수 있을지는 마찬가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고교 2년제는 더 짧은 기간에 성적을 올려야 하므로 사교육을 조장할 가능성을 더 커지게 한다. 인문계 고교의 경우 바로 ‘입시 기관’으로 전락하고, 입시학원들이 ‘쾌재’를 부를 건 뻔한 일이다. 학원 강사에 대한 면허제 도입, 학원비의 카드 사용 의무화 등도 어떻게 사교육비 경감과 연결된다는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과외를 없애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수없이 내놓았다. 하지만 사교육비가 되레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공교육은 무력화돼 왔다. 입시 제도가 바뀌고 대학들의 평가 방법이 달라질 때마다 학원들만 희색이 만면했다. 현재의 사교육 열풍은 모든 학생들을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공교육 체제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이번 방안은 5개 권역에서 다섯 번의 공청회를 거친 뒤 최종안으로 간다지만, 공교육부터 바로 세우는 등 좀더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보완되지 않는 한,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사교육의 번창을 불렀다면, 공교육이 겉돌지 않고 학원의 역할을 흡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학제나 대입 제도 등에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오히려 화를 키울 수 도 있다. 학벌주의, 일류대 지상주의, 과열 입시 경쟁을 막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과 ‘국민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사교육비 줄이기를 위한 공교육 살리기가 다각적으로 새롭게 모색되고 추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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