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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

‘바람 자서 좋은 날’을
이태수 | 조회 758

<세풍>-51-(2004.4.15)

‘바람 자서 좋은 날’을

 

李 太 洙 <논설위원>

 

 이번 총선을 앞두고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언제, 어떤 바람이 불어닥칠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대통령의 국정 문제로 국회가 탄핵소추를 결의하자 ‘탄풍(彈風)’이 거셌다. 얼마 뒤엔 ‘거대 여당 견제론’을 앞세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박풍(朴風)’이 그 바람을 한풀 꺾었다. 다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으로 비롯된 ‘노풍(老風)’이 가세했다.

 

 게다가 지난 대선 때의 ‘노풍(盧風)’을 주도했던 문성근 명계남씨의 ‘잡탕론’ ‘분당론’도 바람의 향방을 흔들었다. ‘눈물’과 ‘삼보일배’로 효과를 가져온 ‘여풍(女風)’도 만만치 않았다. 이 바람은 점차 민심의 판도를 바꾸는가 하면, 급기야 ‘노풍(老風)’ 등의 탓으로 정동영 의장이 선대위원장과 비례대표 후보를 물러나고, 단식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직도 어떤 바람이 더 세고 주효했으며 국민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는지는 안개 속이지만, 아무튼 오늘은 그 결정이 내려지는 날이다. 개혁.진보와 보수, 거여와 거야, 국정 책임과 탄핵 혼란 등이 국민의 선택으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듯이, 오늘이 그 ‘바람들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까 걱정이다. 총선의 결과나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우리 사회에는 또 어떤 바람이 불어닥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이 어느 쪽의 손을 많이 들어주든, 모두가 바람과 남을 탓하기보다는 그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내 탓’으로 여기며 평상심(平常心)으로 돌아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정치인들이 달라지겠다고 거듭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오늘 이후 과연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는지…. 나라와 민생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바람몰이’로 자기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온 정치 풍향과 사회 풍속이 과연 어느 정도 달라질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정치권의 바람몰이로 ‘해방 공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리면서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여기는 흑백논리가 덧나고 있는 점은 크게 우려된다.

 

 그 뿐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골이 깊어지고, 지역주의가 더욱 고개를 드는가 하면, 날로 벌어지는 세대 사이의 간극, 여전히 감정이 앞선 ‘냄비 기질’, 숙질 줄 모르는 오기와 독선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비판적 이성’의 회복인지도 모른다. 이 이성은 최소한 ‘너’와 ‘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적 비판을 통해서 쌓아 나가는 일종의 대화 속의 지혜이며, 화해와 상생을 지향하기도 한다. 또한 너와 내가 서로 비판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고 보완해 나아가게 하며, 너와 나 사이에 상호개방성을 통해 자기실현의 길을 열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판적 이성은 어떤 사람에 의한 어떤 절대적 사상과 견해, 절대적 가치의식도 부정하곤 한다. 그 대신 어떤 사람으로부터 오는 반론.이견.비판만은 겸허하고 성실히 받아들여지게 한다. 그리하여 확신에 찬 견해가 안고 있는 독단을 떨쳐내게 해주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사유.행위를 거부만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옳다는 ‘독단’으로부터도 벗어나게 하며, 절대적인 확신마저 수정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최소한 그 비판적 이성만은 회복해야 한다.

 

 중국 후한(後漢)의 순열(荀悅)은 위(僞).사(私).방(放).사(奢) 등 당시 나라의 네 가지 병을 개탄했다. 거짓이 가득하고, 자기 몫만 챙기며, 무법방종이 판을 치는가 하면, 분수에 넘치는 소비가 바로 그 사환(四患)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중병들을 앓아 왔다고 할 수 있다.

 

 정치판에는 거짓들이 가득하고, 국가 사회는 ‘내 몫’만 챙기려는 병이 깊을 대로 깊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법 제도와 원칙을 무시하고 방종이 고개를 들었다. 정직을 가장해 남의 아픈 곳만 들춰내는 대립과 적대감이 창궐하기도 했다. 신용불량자들도 계속 늘어나는가 하면, 도리(理)는 아예 접어두고 권리(利)의 발톱만 세운 채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살벌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 자기와 생각이나 주장이 다르면 편가르기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을 게 아니라 유연(柔軟)의 마음으로 상대방도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회 구조를 ‘선과 악, 적과 동지’의 게임으로 여기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비판적인 이성으로나마 포용하는 유연하고 따뜻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보다 나은 내일이 기약될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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