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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

‘죽어 가는’ 文學
이태수 | 조회 758

<세풍>-52-(2004.6.10)

‘죽어 가는’ 文學

 

李 太 洙 <논설위원>

 

 요즘 젊은 세대들의 문학에 대한 무거운 논의들을 지켜보면서 일말의 자괴감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명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정신문화의 으뜸자리’를 차지해 왔던 문학이 ‘변두리로 밀려난다’든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됐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지고, 그 현장에서 영향력을 뿌리던 문인들마저 백기를 드는 모습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젊은 작가는 우리 문학은 그 사회성과 엄숙성이 1970, 80년대의 유산이라며, ‘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진단했다. 문인들이 ‘자기들끼리의 문학’ ‘문학을 위한 문학’ ‘권력화한 문학’ 속에 안주하고 있으므로 빚어지는 현상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이제 소설을 쓰는 건 ‘새롭고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에 대한 도전’이자 ‘죽은 고목(문학)에서 새싹을 틔우려는 원초적 생명 의지와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사실 문학이 죽어가고 있는 데는 안팎의 원인이 적지 않아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현학적인 문인들이 어려운 어휘나 문장, 난해한 표현으로 독자들을 질리게 만들거나 문학으로부터 쫓아버리는 면도 없지 않다. 보통 독자들 가운데도 솔직하지 못한 경우 이런 물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젊은 작가의 표현대로 ‘원초적 생명 의지’와도 같이 문학적 상상력을 더 깊고 넓게 펼쳐내면서 바뀌고 있는 시대상을 제대로 담아내려는 노력을 하는 문인들이 있는 반면, 통속적인 흐름에 영합하면서 가벼움과 상업성에 애써 기우는 문인들도 적지 않다. 제사보다는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사이비 문인들까지 늘어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언젠가 중진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가 ‘진지한 창작은 더 줄어들고 소외될 것이며, 통속소설들이 압도해갈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 진단에는 문인들의 ‘시류 타기’와 ‘가벼워지기’도 문제지만, 독자 쪽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전망에다 한 술 더 뜬다면, 이대로 가다가는 통속소설마저 밀려나 설자리가 볼품 없이 좁아져 버릴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작품은 물론 책을 읽지 않는 분위기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포퓰리즘에의 기울어짐’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였던가, 한 영화제작자는 인터뷰를 통해 ‘오늘에는 영화가 문학을 대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정서적인 대변도, 우리 시대 사람들의 무의식을 읽어내는 트렌드적 성향도, 지금 사람들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꿈도 영화가 맡게 됐다는 뜻이 아닌지 모르겠다.

 

 더 넓게 보면, 문학의 위기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와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질만능주의와 인문학 경시 풍조, 학벌사회가 끊임없이 부추기는 입시 위주의 교육 등 한국적 폐단까지 보태 ‘한없는 가벼움’을 부채질하고 있는 느낌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들어 놀랍게도 한국영화 관객 1천만 명 시대를 열었다. 근년 들어 국제영화제에서 큼직한 상을 잇따라 따내면서 세계 속에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며, 문학의 위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무튼, 매체와 표현양식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는 이 변화의 시대에 문학의 소외를 놓고 타령만 늘어놓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문인들이 아직도, 책을 읽는 대신 컴퓨터나 영상매체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을 외면한 채, 거의 팔리지 않는 문예지들의 사양길을 마냥 아쉬워하거나 독자들을 원망하면서, 죽어 가는 문학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학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진실한 체험과 사상, 느낌 등을 녹여 전달하는 ‘가치 있는 경험의 언어를 매개로 한 표현’이다. 이 때문에 독자들이 좋은 문학과 만나면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이나 현실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희열을 느끼게 되고, 그 의미를 재인식하는 정서적 반응을 드러내게 된다. 낯선 세계와 마주칠 경우 경이감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날로 이런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지금은 ‘전통적인 문자 매체가 시대를 이끌어 가는 유효 기간이 끝났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시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학의 진정한 부활’을 다시 꿈꾼다면, 그 죽음에의 위기가 ‘타살적’이든 ‘자살적’이든, 문인들로서는 최선을 다해 ‘새 길 찾기’나 ‘거슬러 오르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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