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    업데이트: 12-11-21 15:13

킬럼-1

신춘문예와 문학열병
이태수 | 조회 943

신춘문예와 문학열병

 

李 太 洙 <문화부장>

 

 문학 지망생들이 한차례 열병을 앓는 계절이다. 문단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일간지의 신춘문예가 가장 권위 있고 화려한 등용문이며, 지금이 바로 그 신춘문예 시즌이기 때문이다.

 

 신춘문예를 공모하는 일간지들은 지금쯤 대부분 심사를 막 끝내고 당선자들에게 개별통보를 했거나, 막바지 심사를 진행 중일 것이다. 응모한 문학도들 중에는 벌써 당선소감을 써서 우체국을 다녀온 경우도 있을 것이며,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거나 이미 좌절감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춘문예가 이같이 문학도들에게 열병을 앓게 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월간지나 계간지와는 달리 당선작이 수십만 부, 또는 수백만부나 발행되는 신문의 신년호에 화려하게 소개되고, 그 작품들이 수백만의 독자 앞에 펼쳐진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백 편, 수천 편의 경쟁 작과 겨뤄 당당하고 깨끗하게 문인자격증을 얻게 되며, 원로문인들마저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낼 정도의 두둑한 원고료를 받게 되기도 한다.

 

 신춘문예는 1925년 동아일보가 처음 시작했다. 이 신문의 주필 겸 편집국장이었던 소설가 홍명희가 단편소설, 신시, 가극, 동요, 가정소설, 동화극 등 6개 부문에 걸쳐 작품을 모집, 아동문학가 한정동과 윤석중이 당선 1호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어 김동리 서정주 등 수많은 문단의 별들을 배출했다. 조선일보는 3년 늦게 시작해 박영준 김유정 김정한 황석영 등 뛰어난 문인들은 발굴했다. 지방지로서 가장 오랜 신춘문예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매일신문이 1957년에 이 제도를 두어 김원일 이문열 등 빼어난 문인들을 낳았으며, 현재 단편소설, 시, 시조, 동시, 동화, 문학평론 등 6개 장르를 두고 있다.

 

 신춘문예는 우리문학의 초창기부터 문단의 커다란 활력소가 됐으며, 문단의 자극제 역할을 했다. 이미 작고한 문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문인들이 신춘문예의 관문을 거쳤으며, 두드러지게 활약한 문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문단에서는 이따금 「신춘문예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한다. 신춘문예가 공개 경쟁에 의한 공정성이 확보되기는 하지만 한편 또는 몇 편의 작품으로 작가의 역량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 가장 뚜렷한 근거이다. 또한 응모작이 모방이나 표절일 경우, 심지어는 기성문인들이 손을 댄 경우도 식별하기 어려우며, 설령 그런 혐의가 보이더라도 응모된 작품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해마다 모작, 표절작 시비가 일기도 하며, 당선이 취소되는 사태마저 벌어진다.

 

 뿐만 아니다. 신인으로서의 패기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자세마저 갖추고 있지 않은 응모자들도 있어 한심스럽다. 올해 심사과정에서도 말썽을 빚고 있지만, 같은 작품을 여러 신문에 겹치기 투고한 응모자들이 적지 않다. 상식을 벗어난 이 같은 자세는 투기와 요행심리의 소산이다. 문단을 어지럽히고 신춘문예의 의도를 심각하게 굴절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며, 동료 문학도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95년의 신춘문예를 통해서는 ‘참신한 신인 발굴’이라는 신춘문예의 본래 의도에 부응하는, 참신하고 믿음직한 새얼굴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