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    업데이트: 12-11-21 15:13

킬럼-1

정신의 위기 극복을
이태수 | 조회 774

정신의 위기 극복을

 

李 太 洙 <북부지역본부장>

 

 지금 우리 사회는 모순과 갈등으로 혼미를 거듭하면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불신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이 혼탁한 사회에서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은 더욱 그렇다. 신분이 높거나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의 비도덕적 행태가 허탈감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정치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돈이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는 풍토가 그렇고, 그런 풍토 때문에 불거진 불상사들이 더욱 그렇다. 한보사태와 관련해 구속된 국회의원들이 증인으로 나온 청문회의 경우 더더욱 그러했다. 답변을 하든, 질문을 하는 입장에 서든, 진실을 밝히려 하기보다는 결정적인 문제들은 오히려 덮거나 숨기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

 

 정경유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고질병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깨끗한 정치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그 대열에 나설 수 없는 분위기가 우리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이 해묵은 병이 계속 덧나기만 하다가 이즈음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비극의 수렁을 벗어나야만 한다. 정치인과 기업인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냉엄한 자기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비극은 우리 스스로 자초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잘못된 선거풍토와 모순을 안고 있는 정치제도를 고치려 하기보다는 정치인들에게만 화살을 쏘아댔고, 정치인들이 돈을 뿌리도록 부추긴 감도 없지는 않다.

 

 정치현실뿐 아니라 위축을 거듭하며 벼랑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경제, 황장엽의 망명이 사사하듯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는 북한 문제 등도 우리를 불안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문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박이문 교수(포항공대)가 지적하고 있듯이 예술은 오락화하고, 예술가들은 개그맨으로 전락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문화는 상업성에 급격히 오염되고, 대중문화의 경우 민중성과 저속성을 혼동하며 표류하고 있다. 특히 신세대들은 새로움과 천박한 서구의 대중문화를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정치현실이 그렇듯이 모든 것이 혼탁하고 뒤죽박죽인 이즈음 정신적인 위기는 생각보다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일부 지식인들이 그런 것처럼 정신적 빈곤을 이유로 자주성을 은폐해서는 안 된다. 상업주의로만 기우는 대중문화 생산자들이 오해하고 있듯이 문화적 저속성이 민중성이나 세계화의 이름으로 포장돼서도 안 된다. 졸부들이 부추기는 바와 같이 사회적 공익에 위배되는 과소비가 개인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변명돼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성급한 서구의 모방과 추종이나 신토불이라는 복고주의로 자주력의 빈곤과 창조력의 부재를 숨겨서도 안 된다.

 

 우리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우리 정신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우리의 정신적 빈곤과 타락, 즉 문화적 주체성의 상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정신적 줏대를 확고하게 세우고 다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뼈대가 굳건해야 한다.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줏대는 보다 자주적․합리적인 사고, 보다 의젓하고 품위 있는 미학적 감각, 당당한 자존심을 갖춘 철저한 도덕적 감수성의 터전에서 싹이 트고 자랄 수 있다. 우매하고 천박하고 악한 것과 싸우는 데서 인간의 존엄성,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정신적 무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모든 것이 바뀌고 뒤틀려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 그 자체이다. 인간성의 본질은 사람들이 달나라나 별나라에 가서 사는 시대가 오더라도 그 자체를 벗어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세월이 거꾸로 흐른다고 해도 어린이는 언제까지나 어린이다운 순진무구함을 지니고 태어나며,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뜨거운 열정과 이상을 가슴에 불 지피게 될 것이다. 이 점 때문에도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이 혼돈상을 결코 절망적인 빛깔로만 읽지 않고 싶다. 밝은 내일을 간절히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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