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5    업데이트: 21-02-03 16:26

자유로운 이야기

​이태수(李太洙) 선생님께 - 김상환 드림
아트코리아 | 조회 400
이태수(李太洙) 선생님께

열여섯 번째 시집 [유리창 이쪽]은 봄-꿈 같은, 
곡두(또는, 幻影)를 찾아 나선 길의 시편입니다.
미망(未忘)과 미명(未明)의 그 길은 어둠이라는 빛의 세계라 
시인의 마차가 아니고는 말(馬/言)을 끌 수 없고, 
시인의 내면과 안광이 발하는 유리-창이 아니고는 
감히 나설 수도, 다가설 수도 없습니다.
‘아름답고 깊고 먼 것들’에 이르는 시의 길은
‘무엇’과‘어떻게’보다는
‘왜’와‘어디’가 비밀입니다.
왜 시인가, 시는 어디에 있는가…… 
따지고 보면, 거기가 거기인 길인 것을.
아니, ‘거기가 거기’라는 이 의두(疑頭)와 실재에 대해 
시인은 끊임없이 질문하며 기다리고 다가섭니다.
나와 너, 이쪽과 저쪽, 부재와 존재, 꿈과 현실이 
딴은 불이(不二)의 바깥 길인 것을 압니다.
“순수한 운행을 따를 때만이 시는 그 진정성을 얻는다”는 
프랑수와 줄리앙의 말은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입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 가고 오는 것의 흐름과 이행에 
온전히 나를 내맡기며 또 다른 나, 즉 
“당신이 빚으면 내가 듣는 이 고요”(「당신과 나」)라는 말씀.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 고요의 신(神)입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하강이라는 상승이 시의 중심이고, 
바깥이고, 해탈인 것을.
이제 나만 홀로 시의 고요한/고유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어둠 속 생명-embryo(胚, 胎兒)’의 그 소리, 
한나절의 영원.


잎사귀 떨구는 나뭇가지에 앉아 

재잘거리는 멧새 서너 마리

꽃잎 시드는 페튜니아 옆엔

모닥불을 빨갛게 지피는 샐비어들 

가을 한나절 장독대 위에는

빗금으로 내려와 앉는 햇살

나지막이 고추잠자리들 날아들고
—이태수,「가을 한나절」전문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내내 청안하심과 건승을 빕니다. 

김상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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