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시집 [유리창 이쪽]은 봄-꿈 같은,
곡두(또는, 幻影)를 찾아 나선 길의 시편입니다.
미망(未忘)과 미명(未明)의 그 길은 어둠이라는 빛의 세계라
시인의 마차가 아니고는 말(馬/言)을 끌 수 없고,
시인의 내면과 안광이 발하는 유리-창이 아니고는
감히 나설 수도, 다가설 수도 없습니다.
‘아름답고 깊고 먼 것들’에 이르는 시의 길은
‘무엇’과‘어떻게’보다는
‘왜’와‘어디’가 비밀입니다.
왜 시인가, 시는 어디에 있는가……
따지고 보면, 거기가 거기인 길인 것을.
아니, ‘거기가 거기’라는 이 의두(疑頭)와 실재에 대해
시인은 끊임없이 질문하며 기다리고 다가섭니다.
나와 너, 이쪽과 저쪽, 부재와 존재, 꿈과 현실이
딴은 불이(不二)의 바깥 길인 것을 압니다.
“순수한 운행을 따를 때만이 시는 그 진정성을 얻는다”는
프랑수와 줄리앙의 말은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입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 가고 오는 것의 흐름과 이행에
온전히 나를 내맡기며 또 다른 나, 즉
“당신이 빚으면 내가 듣는 이 고요”(「당신과 나」)라는 말씀.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 고요의 신(神)입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하강이라는 상승이 시의 중심이고,
바깥이고, 해탈인 것을.
이제 나만 홀로 시의 고요한/고유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어둠 속 생명-embryo(胚, 胎兒)’의 그 소리,
한나절의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