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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야기

이태수 2020.09.06.02:11 제35회 상화시인상 논란에 대해
아트코리아 | 조회 536
이태수 2020.09.06.02:11
제35회 상화시인상 논란에 대해
 
올해 봄, 여름이 너무 가혹합니다. 악몽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긴 장마와 물난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창궐로 참담하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게다가 뜻밖의 상화시인상 문제로 설상가상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곤욕을 치루고 있습니다.
제 문제로 대구문단에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감스럽고, 부덕의 소치라 부끄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간 제35회 상화시인상을 둘러싼 갈등을 수상자로 결정됐던 당사자로서 하고 싶은 말들을 억누르면서 지켜봐왔습니다만, 오래 참았던 입장을, 이젠 마스크를 벗고 말하듯, 진솔하고 적나라하게 말씀드리려 합니다.
상화시인상의 운영절차상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저는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다만 제가 시집을 몇 권 발간한 출판사의 사장이자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이 심사위원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심사위원으로 추천한 박방희 대구문인협회 회장의 최근 말에 따르면, 두 분(대구의 이동순, 이진흥 시인)에게 심사위원 참여를 권유해도 사양해 세 번째로 어렵게 승낙(대구의 코로나 19 창궐 때였으므로)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부 문인들은 그분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것을 문제 삼지만, 심사위원으로 위촉했을 때는 누구가 수상 후보자로 추천될지 모르는 상태인데, 이미 그분을 난데없이 부적격이라고 주장 한 인사들(한 심사위원과 대구시협 회장 등)이 있었다는 건 원천적으로 저를 후보에서 제외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도 될 것입니다. 그래야 의중에 둔 시인이 유리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마치 저와 주최 측과 사전에 교감한 것으로 몰고 가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심사위원 그 누구와도 상 문제를 두고 말을 나눈 적도 없습니다. 최근 일부 문인들에 따르면, 올해 상화시인상은 대구 시인에게 주는 방향으로, 누구가 상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합니다.
저는 주최 측으로부터 수상 결정 통보만 받았을 뿐, 경북일보에 비교적 소상하게 보도된 수상자 선정 기사를 보고서야 심사위원 다섯 분이 어떤 분이었는지, 후보가 누구였는지 알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이 각각 세 권의 시집을 예심에 올려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 시집이 출간된 출판사 사장이 ‘제척’ 사유라고 본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문학세계사 사장으로부터도 전화로 극히 간략하게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수성구와 수성문화원이 해마다 개최하는 ‘상화문학제’의 조직위원장을 10년 째 맡고 있습니다(몇 년째 다른 분을 추천하며 그만 맡으려 했으나 통합될 때까지만 맡아달라고 해서 아직 맡고 있음). 이 때문에 ‘이상화기념사업회’와도 다소 껄끄러운 관계입니다. 통합을 주장하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주 오래 전 죽순문학회를 주도하셨던 이윤수(1914~1997) 선생이 생존하실 때 이 상의 수상을 권유해도 사양한 적이 있었으나 그 이후 상화시인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지난해까지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대’에 수상자로 결정된 것을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진보와 보수(좌익과 우익)’의 대립에 있다고 봅니다. 문제 제기를 하는 일부 문인들은 현재의 정부 편에 서 있는 분들인 것 같고, 저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민예총, 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일부 문인들은 대구문인협회와 이중 소속) 중 한 중진시인(한 문학관의 관장)은 노무현 정부 때 무슨 공로인지는 잘 모르지만 훈장을 받았으며, ‘문재인 지지 서명’을 하고 그의 대통령 후보 때는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분입니다. 저의 시 ‘박정희’(한국시인협회가 2013년 한국의 인물 100인을 대상으로 기획 출판한 『사람』에 게재)를 두고 ‘대구답다, 대구스럽다’고 비판한 이 모 시인은 노무현 정부 때 국립국어원 원장을 지낸 분입니다.
『사람』 발간 무렵 노무현 대통령 지지 세력의 젊은 문인들이 한국의 인물 100인(대통령 출신으로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이 대상이었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시키지 않아 서명운동을 벌이고, 문제 제기를 했던 사건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들은 좌편향의 시각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등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에 대한 시를 문제 삼았음).
저는 대구에서 오래 살았지만, 대구답고 대구스러우며 대구 사람답게 살려고 하며, 역사적으로 나라의 중심을 제대로 잡아온 대구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대구 코로나’로까지 피해를 입고 있는 이곳 사람들을 폄훼하기도 했지만, 대구‧경북 사람들은 그간 이 역병에 모범적으로 대처해 지구촌이 주목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즘 소문에 따르면, 상화시인상을 두고 문제 제기를 하는 일부 문인들이 과거에 ‘후광(김대중)문학상’을 수상한 대구(거창 출신)의 이 모 시인과 어떤 모임에서 뜻을 같이했다고 하며, 이 모 시인은 대구의 몇몇 예술단체 회장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에게 문제 제기를 부추겼다고 합니다. 참 어처구니없다고 제게 말을 전해 줘서 그런 배경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전에 그 이 모 시인과 담합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아 이 야단법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제게 공정한 심사로 수상이 결정됐다고 축하전화까지 했던 거창 출신의 김 모 시인(한 문학단체의 회장, 심사위원 한 분을 추천)이 최근에는 동향 출신의 이 모 시인 편에 서서 전혀 다른 말을 한다는 소문까지 들려 제게 전화 왔을 당시 ‘뜻밖의 수상’이라고 했던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저는 언론사 재직(논설위원, 논설실장, 논설주간) 시절 진보세력에 대한 비판을 적잖이 했으며, 지금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타도 대상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더구나 진보세력 문인들은 대구문학관 관장, 대구시인협회 회장을 등을 맡고 있으며, 진보문학 단체인 대구작가회의뿐 아니라 오는 연말이나 내년 연초에 있을 대구문인협회 회장과 교체될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대구문단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제가 운영위원을 맡아 기초를 다지고 11년간 관여했던 ‘이육사시문학상’도 세대교체를 위해 새 운영위원 후보를 추천하고 스스로 물러났습니다만, 이 상도 그 이후 좌편향으로 운영되고 있는 듯합니다. 주최 측의 요청으로 두 번째로 다른 운영위원을 추천(그분의 성향을 잘 모르고)했는데 그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 상화시인상 논란의 배경도 떠올려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저는 ‘상’을 받기 위해 활동한 적이 없습니다. 1986년 대구시문화상도 제가 후보 구비서류를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 그 전 해에 대구문인협회의 권유를 사양한 적이 있고, 수상하던 해에도 제 의사와는 관계없이 대구문인협회가 서류를 작성해 후보로 올렸습니다. 몇몇 상(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등)도 사양하다가 받은 적이 있고, 끝까지 사양한 상(일부 문학상)도 있습니다.
이번 상화시인상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거나 편향된 신문 보도를 보고도 침묵으로만 일관했습니다. 일방적이고 왜곡된 보도에도 공개적으로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구문단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며, ‘마녀 사냥’이구나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그 배경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자존심 하나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차제에 말씀드리지만, 저는 문단 헤게모니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대구시인협회 회장을 맡은 적이 있으나 언론사에 종사하기 때문에 사양해오다 1997년에 어쩔 수 없이 맡았습니다. 50명도 안 되는 회원으로는 명실 공히 ‘대구시인협회’라고 할 수 없다며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좌우 성향을 막론하고 계파통일을 해 182명으로 회원을 늘렸습니다. 지금 편 가르기를 하는 대구시인협회를 지켜보면 그 당시 계파 통일을 반대하던 시인들의 주장이 되돌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번 상화시인상 수상 문제를 두고 고사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꼴이 될 것 같고, 심사위원들의 권위에도 누가 될 것 같아 침묵을 지켰습니다. 저를 공격하기 위해 이번 사태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심사위원들까지 욕보이지는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새삼 시쳇말로 ‘노파’와 ‘문파’가 왜 ‘무조건 조국’이었는지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대구문단에도 파벌과 친분을 축으로 한 패거리 짓기가 극성이라는 말이 들립니다. 지난날 문화 권력을 비판하는 진영에 섰던 사람들이 반대로 속속 새로운 문화권력의 자리에 오르면서 정치권력에 편승해 문단의 질서를 재편해 장악하려고 한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심지어 ‘카르텔’을 구축해 자기편만 옹호하면서 헤게모니를 잡으려 한다는 비판의 소리마저 없지 않다고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1945년 8‧15 광복을 맞으면서 문단이 ‘좌우’로 나뉘어 격렬한 투쟁을 벌였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몇 년간 좌익의 목소리만 높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투쟁이 잦아들었고,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에는 해금이 될 때까지 오랜 세월 반쪽 문단이 지속되던 모습도 보아왔습니다.
자괴감이 듭니다만, 과연 상화 선생께서는 이번 사태를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계실까요? 저를 우파에 가깝다고 민족의 반역자로 보고 계실까요? ‘노파’, ‘문파’가 아니라고 질책하고 계실까요? 마치 친일파라도 되는 것처럼 당신 이름의 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계실까요?
가장 순수하게 ‘진실’를 추구하고 받들어야 할 문인들이 ‘제사보다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풍토’도 아름답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대구시단이 뭔가 잘못돼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를 대구문단 헤게모니 쟁탈전의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생각이 안 들 수도 없습니다.
시류에 편승하는 어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인은 등단한지 몇 해도 안 돼 각종 문학단체의 부회장, 부이사장, 수석부회장 등을 맡고 있으며, 이제 이번 사태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문단이 문학적 경륜이나 덕망이 밀려나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일부 인사들이 장악하려는 시대가 온 것 같기도 합니다.
문인들은 최소한 ‘내’가 우선이더라도 ‘너’도 인정하고 함께하는 포용력을 가져야 하며, 다양성 속에서 문학의 새로운 개화를 이끌어내는 분위기가 성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구시단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해방 공간’의 아픈 악몽이 떠오르는 건 지나친 기우이기만 할는지요? 진영 싸움은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태 참고 견디며 침묵을 지켜왔지만, 결례를 무릅쓰면서까지 제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을 수 없게 돼 가슴이 더욱 아픕니다.
이제부터라도 편 가르기와 반목,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따뜻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주는 대구문단, 문학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저도 이젠 그런 분위기를 위해 적극 나서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추신 1
대구시인협회의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안윤하 시인과 엄원태 시인이 주고받은 말(댓글)의 내용을 보다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제35회 상화시인상 심사위원이었던 대구의 시인은 물론 김종해 선생으로부터도 심사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바 없으며, 아직까지 실례를 무릅쓰고 김선학, 윤석산 교수와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습나다. 그래서 심사과정에 대해서는 경북일보 기사에서 읽은 정도 이상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김종해 선생이 ‘제척’ 사유라며 스스로 본심에 불참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의 대화 내용을 보니 전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김종해 선생이 심사위원장이었고 4:1로 수상자가 결정됐지만 엄원태 시인이 공동수상을 주장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심사가 마무리됐다고 엄원태 시인 스스로가 밝히고 있네요. 심사평(손진은 시인이 썼다고 함)에 김종해 선생 ‘제척’이라고 엄원태 시인이 요청해 썼다고 하는데, 김종해, 김선학, 윤석산 심사위원과 합의해서 쓴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김종해 선생은 ‘경우가 칼 같은 분’입니다. 평생을 출판업에 종사했고, 각종 문학상 심사는 물론 문단의 일에 두루 참여해온 분입니다. 그런 분이므로 제 시집이 자신이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나왔기 때문에 겸양지덕으로 스스로 본심에 참여하시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원태 심사위원에 따르면 그게 아니었군요.
처음으로 말씀드리지만 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세종도서) 선정은 출판사에 책을 구입해주는 경우이기 때문에 출판사 사장을 비롯한 관계자는 자신이 관계하는 도서의 심사에 ‘기피’하도록 돼 있지만(저는 과거에 다섯 차례 정도 문화예술위원회의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음), 문학상의 경우는 개인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에 출판사 관계자라고 ‘제척’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민음사의 편집동인, 편집위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출판사의 도서(시집, 소설집, 문학평론집 등)를 수상작으로 선정한 경우는 비일비재입니다. 김종해 선생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자신이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한 경우도 저는 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문단의 원로인 그분이 ‘제척’ 사유가 되는 줄 알면서 심사에 참여했을 리가 없습니다. 문학상 심사의 제척 사유가 어떤 경우인지 면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씀도 드리지 않으려다 아직도 이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기 때문에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다시 더 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묵묵히 참고 견디려 합니다.
 
추신 2
최근에 『2020/제35회 상화시인상 수상시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난 7월 초순의 언론보도와는 달리 이 책의 심사평에는 대구의 이 모 시인의 이름은 11명의 ‘최종 예비 후보’와 5명의 심사위원이 무기명 투표로 다수 득표한 8명의 명단 뿐 아니라, 다시 무기명 투표로 뽑았다는 4명의 명단에 지워져 있어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출판사 ‘(주)천년의시작’이 지난 7월 15일자로 펴낸 이 수상시집은 ‘교보문고’를 비롯한 대형서적들의 신간 소개에 7월 중순부터 올라 있었으나 최근에 입수해 읽어 보니 심사평에는 물론 ‘수상 후보 시집’에도 이 모 시인의 이름과 작품이 실려 있지 않습니다(경북지역의 김 모 시인의 작품도 실려 있지 않음).
심사 결과를 발표한 언론 보도 때와는 달리 이 수상시집을 발간하면서 심사위원들의 합의에 의해 심사평을 고쳐 쓴 것인지, 그 과정에서 당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고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수차례의 언론 보도 때 수상 당선자를 폄훼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한 후보자의 명예를 이같이 ‘보호’해 준 까닭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수상시집의 심사평에 따르면 이 모 시인은 당초부터 후보로 추천되지 않았던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답글
제가 오죽 답답하고 가슴 아팠으면 진영논리를 내비치기도 했겠습니까? 문단 풍토나 기류, 후배 문인들애 대해서도 말씀드렸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사태는 그런 작용이 하지 않고는 이 지경까지 저를 몰아넣지는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입장이 돼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생각이나 이념이 다르더라도 사시안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기회주의가 아니라 어떤 이념에 대해서든 확고한 신념을 가진 분들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태도를 저버리지 않아 왔습니다. 좌우에 대한 언급은 저를 그런 시각으로 공격하는 분이 있었으며, 일부 언론보도가 다분히 그런 색채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위 ‘이-장-엄-송-윤’(‘시오리’의 핵심)을 문학적으로 깎아내린 적이 없으며, 특히 ‘이-장-엄-송’은 이 지역 시인들 중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경우이기도 합니다.
진영논리를 내비친 것은 앞으로 그러지 않았으면 할 뿐 아니라 편 가르기를 하지 말고 문학 자체를 중심에 두고 화해하는 문단 분위기가 성숙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입니다. 한 후배 시인에 대한 언급은 문단의 연륜에 비해 너무 급성장하는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되레 악재(이용당함)가 되고, 이미지를 그르칠 수 있으며, 문단의 질서에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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