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5    업데이트: 21-02-03 16:26

자유로운 이야기

이태수 칼럼-'들은 되찾았지만 아직도 봄은…'
이태수 | 조회 1,099
이태수 칼럼-'들은 되찾았지만 아직도 봄은…'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상화 이상화(尙火 李相和, 1901~1943))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詩碑)가 대구 수성못가에 건립돼 내일(15일) 제막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굴종을 강요받았던 '암울한 시대'를 넘어 언젠가 올 '진정한 봄'을 향해 절규했던 이상화. 그의 염원이 이뤄진 지는 이미 오래됐으나, 그런 염원과 절규의 목소리가 이제나마 그 '뿌리의 터전'에 우람하게 선 돌에 새겨져 빛을 보게 돼 그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광복 60주년과 수성구청 개청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 수성못가 지산하수처리장 상단공원에 세워진 이 시비에는 이상화가 1926년 6월 '개벽' 70호에 발표했을 때의 시 원문이 새겨졌다. 시의 문장들이 지금의 문법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당시의 표기를 그대로 살려(이견이 없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건립 의도대로 교육적인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며, 긴 시임에도 전문이 다 담겼다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연마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고흥석(화강석)에 서예가 권시환 씨가 쓴 글씨들을 석공명장 윤만걸 씨가 새겼으며, 뒷면의 비문은 김규택 수성구청장과 이 시비 건립자문위원회가 함께 썼다. 비석은 4.6m 2.8m 0.8m 규모로 기단석을 포함한 무게가 무려 28t인 초대형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상화의 시비는 그의 준열한 생애와 문학적 비중에 걸맞게 이미 몇 군데 세워져 있다. 1948년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진 '상화 시비'(시 '나의 침실로' 부분을 담음)가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임도 주지하는 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도 지난 1986년 독립기념관에 세워졌으며, 1996년엔 대구 두류공원에 시가 곁들여진 동상이 세워졌었다. 두류공원 동상 시비와 이번 시비 건립에 관여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깊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빼앗긴 들에도…' 시비는 특히 이 시의 시상을 떠올렸던 현장이 수성못에서 바라보이는 '수성들판'(유력한 설로 설득력을 가짐)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증폭된다. 말하자면, 비록 수성들판이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고 하더라도 이 시의 '역사성·현장감 살리기'와 '오래 기리기'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시비는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내일의 사람들에게까지 '나라와 겨레 사랑'의 민족혼(民族魂)을 일깨우는 하나의 '상징이요 요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빼앗긴 들에도…' 시비의 입지 역시 지나칠 수 없다. 수성못은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어서 시비가 사랑받을 수 있는 적지다. 더구나 '빼앗긴 들'은 일제에 강점당해 주권을 빼앗긴 우리 국토를, '봄'은 민족의 광복과 새로운 생명력을 뜻하고 있으므로 가히 '민족 차원'의 역사적 의미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이 실린 '개벽'이 판매 금지 처분을 당할 정도였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시비는 그의 저항정신, 나라와 겨레 사랑 정신을 기리고, 현대적으로 이어가게 하는 하나의 숭고한 '정신적 메카'로 떠오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지게 한다.

선진국들은 주요 작가의 생가(生家)와 머물었던 곳, 작품의 무대와 현장을 기념물로 보존한다. 이 때문에 작가들이 타계한 지 몇 세기가 지나도 그들의 문학정신과 사상은 살아 숨 쉬게 마련이다. 그 숨결을 더듬어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문화 자산(資産) 보존이 활기를 띠고,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지며, 관광 명소로 뜨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는 일찍부터 빼어난 문인들을 배출했으면서도 문학기념관은 말할 것도 없고, 작가·시인들의 생가나 살던 옛집 하나 보존된 게 없다. 대구시는 오래 전부터 이상화의 옛집(계산성당 옆)을 보존, 상화 시비와 동상, 묘역(화원) 등을 벨트화하려는 구상을 했으나 제자리걸음만 거듭해 왔었다. 이 와중에 시민운동에 힘입어 이상화가 만년의 2년6개월 정도 창작의 산실로 삼았던 옛집은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기는 했다.

지난날 '문화 도시'로 자부해 왔던 대구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달라져야만 한다. 이번 수성못가 '빼앗긴 들에도…' 시비 건립을 계기로 이상화 기리기뿐 아니라 고월 이장희 를 비롯한 다른 문인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이 증폭되고 확산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라와 민족을 여전히 걱정하는 이상화가 다른 세상에서 바라보며 '빼앗긴 들은 되찾았지만 아직도 봄은 오지 않고 있다'고 노래할까 부끄러워지지 않은지….  

이태수(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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