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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야기

대구문학제/심포지엄]이태수-'대구의 현대시 100년' - 2007
이태수 | 조회 1,211
대구문학제/심포지엄]이태수-'대구의 현대시 100년'   

[대구문학제/심포지엄]이태수-'대구의 현대시 100년'

대구의 현대시 100년

이  태  수 (시인.전 매일신문 논설위원)                                   

한 지역의 문화는 그 지역의 자연 환경과 인문 환경의 터전 위에서 형성되게 마련입니다. 이 같은 환경 요인들이 문화적 특성과 개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언어를 매개로 하는 문학의 경우는 더욱 그렀습니다.
한 나라의 문학이 빛나려면 우선 지방의 문학이 융성해야 합니다. 자연과 인문적 환경이 서로 다른 데서 빚어진 지방 문학의 특성이 모이고 어우러져 한 나라의 문학을 꽃 피우게 되고, 지방에서 형성된 문학의 특성과 질적인 수준이 바로 그 나라 문학의 수준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근대문학 형성도 이런 터전 위에서 서구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구지역의 문학이 가볍게 여겨질 수 없는 까닭도 이 같은 한국 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이바지한 정도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대구의 문학이 과연 제 역할을 어느 정도 해 왔는가 하는 물음을 새삼 던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업화 사회로 이행하면서는 우리의 문화가 서구 지향적으로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문학에서도 향토적이거나 토속적인 정서가 뒤로 물러나는 대신 다분히 서구적인 새 물결이 넘쳐나는 양상을 보여 오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문학은 날이 갈수록 각 지역의 독특한 정서에 천착한 작품들이 희석되거나 물러서 버리는 가운데 정체성이 흐려지고, 인기나 유행을 좇는 작품들만 성행하는가 하면, 그런 시인들이 끊임없이 아류를 낳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해온 대로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으며, 세계 속에서 우리 문학이 풍성해질 수 있는 지름길도 바로 그 길임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어떠합니까. 모든 것이 중앙(서울)에 집중돼 있듯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이 당연히 우위에 놓이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양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의 문학은 그 자체의 우열과는 상관없이 점점 더 위축되는 길을 걸어 왔습니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거주 지역에 따라 열등감에 빠지거나 변두리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구 지역의 문학이 신시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를 먼저 되짚어 보고,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도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한국의 근대문학(현대시)은 갑오경장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와 국권 상실의 비운을 겪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형성됐으며, 어언 100년이라는 연륜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대구의 시문학은 서울보다 다소 늦은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인으로는 이상화 이장희 백기만 등이 지역 문학의 선구적 역할을 하면서 우리 문학의 다양한 개화에도 이바지했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이육사 이설주 이효상 이윤수 박훈산 박목월 조지훈 등이 그들의 활동에 가세하면서 새로운 활기를 보탰습니다. 1940년대에는 ‘죽순’(이윤수 주재)이 창간되고, 윤 백 박훈산 신동집 등이 새 얼굴로 떠올랐습니다. 이어 1950년대 이후에는 윤운강 박양균 홍성문 전상렬 김종길 여영택 박지수 허만하 윤혜승 정석모 조기섭 이민영 김원중 최선영 등이 등단했습니다.  
1920년대 이후 1950년대까지 대구지역의 문인들은 모국어를 갈고 닦으면서 우리의 정서에 천착하는 한편 서구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뚜렷한 문학적 성취를 일궈내고 오늘에 이르는 풍요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특히 투철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저항시의 참다운 면모를 보였던 이상화, 섬세한 감각과 상징적 수법으로 개성적인 시를 빚었던 이장희는 우리 문학사의 초창기를 화려하게 장식하면서 이 지역 문학의 초석을 놓았으며, 그 다음 세대인 이육사와 함께 이 지역 시의 전통에 굳건한 뿌리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시인 박목월 조지훈 신동집 박양균 김종길 등의 영향력은 지역 문학을 새롭게 일구는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박목월 조지훈 김종길 등은 서울로 이주한 뒤 우리 문단의 핵심적 위치에 올랐습니다.
향토적 서정과 빼어난 감수성으로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박목월, 한국의 전통의식과 민족의식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조지훈 등은 돋보이는 시인들입니다.
한편 6·25 전쟁으로 많은 문인들이 대구로 몰려들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문학적 열기를 고조시켰던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무렵 피난 문인들 덕분에 대구는 잠시나마 한국 문단의 중심이 되기도 했고, 그 열기가 미친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1960년대에는 6·25를 소년기에 체험한 소위 4.19 세대들에 의해 문학의 사회적 효능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가 하면, 한글세대들이 문학의 예술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이 시기에는 ‘순수’와 ‘참여’의 문제가 첨예하게 떠올라 쟁점의 중심에 놓이는가 하면, 두 갈래의 문학이 맞서는 가운데 서구문학을 폭넓고 깊이 있게 수용하는 계기도 마련했습니다. 이 지역 문단에도 ‘서울 집중화’ 현상 속에서 자생력을 키워보려는 의욕이 점차 두드러져, 크고 작은 문학단체들이 잇따라 생기고 창작 활동이 두드러지는 분위기도 무르익었습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시문을 숭상하는 영남지방의 전통 때문인지, 소설은 침체를 벗지 못하는 반면 인문학적 상상력을 축으로 하는 순수시가 주류를 이룬 시단과 전통적인 율격을 전승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구사하던 시조시단이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였던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한때 대구에 자리 잡았던 시인 유치환이 강인한 삶의 의지, 현실에 대한 준열한 비판의식을 담은 시를 왕성하게 발표하면서 영향력을 뿌렸습니다. 또한 유치환에 이어 대구로 이주해온 시인 김춘수와 토박이 시인 신동집이 대구 문학을 주도하면서 많은 시인들을 길러내는 역할도 했습니다.
1960년대 동안에는 권기호 권국명 전재수 예종숙 이성수 도광의 이정우 등 당시의 젊은 시인들은 소집단(동인지) 운동을 벌이면서 신선한 감수성으로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며, 이재철 김윤식 금동식 이일기 이재행 박주일 이장희 등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의 대구 시단은 이름을 거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시인들을 배출했으며, 그 활동이 날로 두드러졌습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축으로 하는 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물질문명의 발달이 야기하는 소외 문제, 기층민들의 문제, 현실 의식 등도 주요 명제로 등장하는 다양성을 보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자유시’ 동인이 서울의 ‘반시’와 함께 가장 주목되는 시동인으로 각광을 받았고, ‘형상’, ‘분단시대’, ‘오늘의 시’, ‘낭만시’, ‘자연시’. ‘네 사람’ 동인 등은 그 뒤에 이 같은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여성시인들로 구성된 ‘서설시’ ‘시·열림’ 등이 속간되거나 새롭게 창간됐을 뿐 대부분의 동인지 들이 지속력을 잃어 아쉽게 했습니다.  
1980년대부터는 이 지역 시단이 김춘수의 서울 이주로 신동집의 활동이 단연 강조됐으나 오랜 병상 생활(20여 년)로 아쉬움을 낳기도 했습니다. 중진․중견 시인들이 꾸준하게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1970년대 이후에 등장한 문인들이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쳐 세대교체의 양상을 띠기도 했습니다.  
‘자유시’ 동인인 이기철 이하석 이동순 박해수 강현국 박정남 서원동 필자 등과 ‘형상’ 동인인 이진흥 이구락 박재열 구석본을 비롯, 최석하 서종택 이문길 이성복 윤성도 송진환 등과 송재학 장옥관 엄원태 박진형 손진은 노태맹 정화진 등의 ‘오늘의 시’ 동인, 배창환 김윤현 김용락 김종인 정대호 등의 ‘분단시대’ 동인, 서지월 김세웅 김경옥 김상환 강해림 등의 ‘낭만시’ 동인, 박곤걸 하청호 조행자 권운지 이유환 등의 ‘자연시’ 동인, 김선굉 서정윤 문인수 송종규 윤희수 김영근 등 새로운 세력군을 형성한 1980년대 시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등단한 윤일현 이진엽 박영호 최서림 박상옥 김호진 이동백 정 훈 장하빈 이승주 조두섭 홍승우 정태일 등과 정재숙 문차숙 구양숙 박주영 박숙이 황영숙 등의 ‘서설시’ 동인, 강문숙 이혜자 김현옥 문성해 배영옥 이 향 등의 ‘시·열림’ 동인, 김복연 이정화 이옥진 박소유 이명주 박지영 정유정 정 숙 이규리 전성미 유자란 박미영 박미란 이해리 강초선 정이랑 김기연 박이화 고희림 류인서 서영처 등 여성시인들의 활동은 대구 시단을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자유시’ ‘형상’ ‘오늘의 시’ ‘분단시대’ ‘낭만시’ 동인 출신 시인들의 꾸준한 개인적 정진은 여전히 대구 시단의 성취를 말해주고 있는 가운데, 이성복의 건재, 근년 들어 활동이 두드러지는 늦깎이 등단 시인 문인수, 일부 여성 시인들의 발랄한 움직임도 문단의 주목에 화답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구 시단은 1990년대 이후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입니다. 시인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다양한 목소리가 두드러지며, 대구의 경우 ‘시의 도시’라는 말에 걸맞은 시의 열기가 날로 더하는 느낌입니다.
특히 ‘문인은 많아도 문단은 없는’ 풍토에 문학지·시전문지들이 등장해 속간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간시전문지『시와 반시』(공동주간 강현국 구석본)와 계간문학지 『사람의 문학』(김윤현 류덕제 신기훈 윤일현 정대호 김용락 등 참여)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지역뿐 아니라 우리 문학 꽃 피우기에 이바지한 바 큽니다. ‘시사랑’에 이어 최근 창간된 ‘문장’과 ‘시하늘’ 등도 나름의 의미를 보태줍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인들은 여전히 서울의 무대를 올려다보며 활약해야 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학운동의 구심체가 되고 ‘발표의 장’이 되어주는 문예지, 시나 소설 전문지 등 문학 저널리즘이 아직도 거의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지역의 몇몇 문학지로는 발표 의욕이나 문학적 열정에 부응하기에는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동인지 발간 등 소집단운동마저 침체를 벗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향토적인 특색과 개성, 그것이 빚어내는 독창성은 민족문화 창달의 에너지가 되며, 한 나라의 문화를 찬연하게 꽃피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도 그렇고, 소집단운동이 시류나 상업주의와 맞서며 문학의 진정성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대구 시단은 이제 그야말로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창작층의 다변화, 넓어진 등용문은 이 지역 문단의 양적인 풍요를 구가하게 해 주고 있으며, 그만큼 가능성 쪽으로 열려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일부 중진·중견들의 활동은 우리 문단의 주목을 끌어들이면서 지역 문단에 영향력을 뿌렸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30~40대 여성들의 늦깎이 문단 진출의 행진이 계속 이어지는 반면 주목받는 남성 신인이 좀체 등장하지 않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게 합니다. 이 때문에 대구 시단도 갈수록 ‘우먼 파워’의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문단의 팽창에는 부작용도 따랐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문학적 이념이나 지향점을 축으로 하는 그룹 형성보다는 인맥이나 이해타산을 중심으로 하는 분파 형성이 가속화, 갈등과 반목이 악화되는 듯한 인상을 씻을 수 없었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화해 분위기가 일기 시작, 세기말을 거쳐 새 세기를 맞는 사이에 융화와 화합의 모습이 뚜렷해진 점은 문학외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며, 새 전기를 가져다 줄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적인 서정에 기우는 ‘보수 성향’이 짙은 대구·경북 문단은 보수성의 다른 한편으로 혁신적인 움직임들도 은밀하게 드러내고 있어 주의를 요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중진·중견들은 시대적 흐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서정성에 뿌리를 둔 문학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일부 중견·신진들은 시대 상황과 맞물린 민중적 정서를 천착하는 문학을 지향하거나 새로운 감수성과 언어 실험으로 새 영역 일구기에 부심하는 모습도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양성이 곧 특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념이나 지향점이 선명한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부 빼어난 문인들 외에는 평준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추세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 점점 ‘전망 부재’의 늪에 잦아들고, ‘문학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도 합니다.
경기 침체, 국제화의 물결, 이념의 붕괴, 정치적인 혼란, 디지털 시대에로의 이행 등 급격한 시대 변화는 ‘전망’을 흐리게 할 뿐 아니라 문학의 설 자리를 흔들어 놓고 있는 감도 없지 않습니다. 소집단인 문학동인이나 규모가 큰 문학단체들의 움직임도 1990년대 이후 가라앉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 유감스럽습니다.
대구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도 문학적 잠재력이 크며, 문인들의 개별적인 활동도 두드러진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 성과들이 속속 기록되고 있으며, 앞으로 빼어난 성취로 나아가게 될 시인들이 많을 것으로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더욱 뚜렷한 지향점과 빛깔을 가진 그룹과 개별 활동, 보다 진정한 긍지와 사명감을 가진 문학 저널리즘(문학지·시전문지)의 형성, 엄정하고 균형감각을 가진 비평 풍토 등이 앞으로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입니다. 특히 이 지역의 문인들이 비문학적으로 치달을지도 모를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용기와 사명감이 얼마만큼 치열하고, 타락한 언어와 정신을 신성하게 바꾸려는 열정이 얼마만큼 뜨거운가가 그 관건이요, 보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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