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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당신의 주도(酒道)는 몇 단이죠? - 경북신문 2019. 10. 28
아트코리아 | 조회 774
당신의 주도(酒道)는 몇 단이죠?——경북신문 2019. 10. 28
 
 
 
‘주성’(酒聖)으로 불렸던 시인 조지훈(趙芝薰)은 술꾼을 9단으로 나눴다. 취미로 마시는 경우는 ’애주‘(주도 1단), 술맛에 반한 기주의 경지는 ‘주객’(2단), 진경을 체득한 탐주는 ‘주호’(3단), 폭주의 경지는 ‘주광’(4단), 삼매에 든 장주는 ‘주선’(5단), 술과 인정을 아끼는 석주는 ‘주현’(6단), 유유자적하는 낙주는 ‘주성’(7단), 즐거워하되 마실 수 없는 관주는 ‘주종’(8단), 술 세상을 떠나게 된 ‘폐주’(9단, 열반주)라고 했다.
이 분류에 따르면, 주도 5단에서 7단까지의 주선(장주), 주현(석주), 주성(낙주)이 술꾼 중 가장 이상적인 유형이다. 술을 마시며 신선의 경지에 들거나 술과 인정을 아끼며, 술과 함께 유유자적하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미로 술을 마시거나 맛에 반해서 술을 마시고, 그 진경에 이르러 술 욕심에 빠지거나 미친 듯이 폭음하는 단계는 주도가 높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술을 좋아해도 마실 수 없거나 그 단계를 넘어 완전히 술을 끊을 수밖에 없는 단계(8․9단)는 술꾼으로서는 완전히 ‘물을 건넌’ 경우에 다름 아니다.
‘천하술꾼’이었던 조지훈은 자칭 ‘주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술자리에서의 일화들도 무수히 많으며, 지금도 술을 즐기는 문인들에게는 변함없이 칭송의 대상이다. 어떤 술자리에서 그는 후배 시인 김관식(金冠植)이 행패를 부리자 따귀를 때려 기강을 잡았다는 일화도 전한다. ‘주성’이 ‘주광’을 엄중하게 다스린 경우였다. 김관식은 따귀를 맞고서도 저항하지 않고, ‘주성’의 질책을 달게 받았다고도 한다.
우리의 음주문화도 요즘은 크게 달라졌지만 과거에는 술을 못 마시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손해를 보게 마련이었다. 직장 상사 따라 술집을 도는 것이 의무처럼 여겨질 정도였고, 술을 잘 마셔야 승진 기회를 앞당길 수 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술을 마시는데 소요되는 별도 예산을 준비하고, 심지어는 ‘술상무’를 두는 경우도 있어 음주문화가 기업문화의 일부라는 말까지 나오게 했다.
음주량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주당 소주 2병 정도가 적당하며, 65세 이상의 고령이거나 음주로 얼굴이 빨개진다면 이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 제시된 ‘가이드라인’이다. 또한 한국인의 주당 적정 음주량이 남성의 경우 만 65세 이하는 8잔 이하, 만 66세 이상은 4잔 이하라고도 했다.
하지만 여성은 만 65세 이하의 경우 4잔 이하, 만 66세 이상은 2잔 이하로 권고했다. 여성의 적정 음주량이 남성의 절반 정도에 그친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알코올 탈수소효소’(ADH) 농도가 낮고 체수분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같은 양의 음주에도 더 높은 혈중알코올농도를 보이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는 한 주일에 65세 이하 성인 남성은 최대 14잔, 65세 이하 성인 여성과 만 66세 이상 남성은 최대 7잔을 권고한 바 있다. 또 1회 최대 음주량은 성인 남성이 최대 4잔, 65세 이하 성인 여성과 만 66세 이상 노인 남성은 3잔으로 정했다.
하지만 한국인은 서구인보다 체형이 작을 뿐 아니라 알코올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알데하이드 분해효소’(ALDH) 유전자의 비활성형이 많아 알코올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잘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고량의 절반 이하로 음주량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만 65세 이하 성인 남성은 주당 4잔 이하, 만 66세 이상 남성은 주당 2잔 이하인 것이다.
 공자(孔子)는 음주에 대해 ‘각자의 건강이나 기분에 따라 적당히 마시되 취해서 문란함이 없어야 한다(酒無量 不及亂)’는 교훈을 남겼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음주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문인들이 술을 마시는 분위기도 옛날과는 너무 달라져 삭막한 감이 없지 않다. 만 50세가 되기 직전에 ‘열반주’를 든 조지훈도 ‘술이란 취한 뒤보다 취하는 과정이 더 좋은 법인데 그 진미를 거세할 양이면 애당초 술을 포기하라’고 했던 말이 자꾸 뇌리를 맴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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