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7    업데이트: 20-12-29 10:14

칼럼-5

전업시인으로 살면서——경북신문 2020. 1. 30
아트코리아 | 조회 720
전업시인으로 살면서——
경북신문 2020. 1. 30


시인들은 여전히 밥과 빵이 되어주지도 못하는 시를 쓰고 있다. 시 창작 층도 다변화되고 두터워지고 있다. 그러나 시를 읽는 사람들은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시집을 내겠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시인들은 많지만, 팔리지 않기 때문에 웬만큼 알려진 시인들의 경우도 문전박대를 면하기 어렵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몇 해 동안 뜸했던 시집들이 근년 들어서는 더욱 많은 날개를 달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출판사가 기획출판해 주는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이 주머니의 끈을 풀어 출혈을 무릅쓰고 시집을 낸다. 팔릴 가능성이 없고, 읽어 주지도 않을 줄 알면서도 시집들을 내고 있는 셈이다.

시인들이 다른 예술가들과 어우러져 그 영역 넓히기에 안간힘을 쓰고, 독자를 찾아나서는 이벤트 등을 부지런히 마련하는 배경도 시가 죽어가는 위기와 마주치고 있다는 반증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좀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서글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구텐베르그 이후 활자매체는 우리 생활뿐 아니라 정신문화의 무게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왔다. 시(문학)는 오랜 세월 동안 그 꽃 중의 꽃이라 할 정도로 활자 매체의 중심에 자리매김해 빛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벌써 오래 전부터 사양길을 걷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시가 죽어간다’는 비관론이 널리 퍼져 있는가 하면, 실제 독자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위기와 마주치고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중일는지도 모른다.

영상화 시대를 맞아 문학을 비롯한 인쇄 매체가 제공하던 재미와 영향력이 상당 부분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 모발일(휴대전화) 등으로 넘어가면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문인들에게는 자괴감까지 동반하게 된 지도 이미 오래됐다. 이 때문에 지난 날 책상 앞에 앉아 문장 수업을 해야 했을 젊은이들이 캠코더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추세이며, 문학에 열정을 쏟을 법한 재능과 자원이 영상매체와 가까운 문학의 변두리로 가고 있는 분위기도 속도가 붙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학은 가치 있는 경험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임에는 변함이 없다. 시인, 작가들이 진실한 체험과 사상, 느낌 등을 녹여서 전달하고, 이를 읽는 사람들은 정서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이나 현실세계와 마주치면 희열을 느끼고 자신의 삶에도 그런 의미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안도하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미처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세계관과 인생관을 만나면서 놀라거나 분노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것이다.

문학의 존재 이유와 가치는 바로 그런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뒷걸음질하거나 황폐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문학의 전망은 곧 현실의 진단이며, 그것이 바탕이 된 우리 삶의 전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그런 비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러나 문학이 위기에 놓이고 그 장래가 어둡다고 하더라도 문인들이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문학이 살아남고 우리의 정신문화가 상승작용을 하려면 오히려 달라진 문화적 환경에 대한 ‘반발의 정신’을 강력한 동력으로 삼는 지혜와 슬기가 요구된다. 시대적 흐름과 ‘비인간화’와는 정면으로 부딪혀 나가는 치열성이 담보돼야만 한다.
문학의 지상과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 옹호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아야 한다. 문인(특히 시인)들의 치열한 도전과 사명감, 시대를 박차고 오르거나 거슬러 오르면서까지 ‘신성한 언어’와 ‘정신의 깊이와 높이’를 지키고 새롭게 창출하는 열정이 식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다시 해가 바뀌고 또 한 달이 지나가려 한다. 올 봄에 또 새 시집을 내려고 시를 써 모으고 있다. 전업시인으로 살아온 지도 벌써 열세 해째다. 비감이 들 때도 적지 않자만, 이 외지고 쓸쓸한 길에 조그마한 불을 켜들면서 그대로 가려고 마음먹는다. 마음에도 찾아올 봄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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