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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올바른 성교육이 먼저다——경북신문 2020. 5. 27
아트코리아 | 조회 619
올바른 성교육이 먼저다

경북신문 2020. 5. 27
 
 
금욕(禁慾)생활의 표본은 기원전 그리스 철학자 제논이다. 스토아학파를 창시한 그는 생전에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아테네 시민들이 존경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영적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능적인 욕망을 물리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플라톤은 자유로운 정신으로 지식을 추구하려면 육욕(肉慾)을 억누를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금욕지상주의는 오늘날처럼 성(性)이 문란해지는 시대가 올 것을 예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잊을만하면 사회지도층 인사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져 세상을 놀라게 하고, n변방 사건을 비롯한 청소년들의 성범죄가 발생해 ‘코로나 19’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준다. ‘성의 노예’들이 늘어나는 이 같은 성도덕의 타락상은 성에 대한 인식과 성교육의 현실을 되짚어보게 하며,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방증이 되고 있기도 하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환경이 성 문란을 부추기기도 한다. 성에 대한 윤리관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의 유혹에 빠져들기 쉬우며, 그런 유혹에 빠져 탐닉하다가는 성범죄사범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성범죄는 성에 대한 교육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먼저 면밀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성상담 전문가 엄주하 씨가 근래에 발간한 저서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은 아이들을 성적 존재이자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는 성 인권 교육이 시작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어 주목된다. 사실 우리의 성교육은 오랜 세월 억압적인 교육이 주를 이뤘다. 교육부가 2015년에 발표한 ‘성교육 표준안’은 ‘학생의 성행동은 금욕을 기본’으로 가르치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의 성교육은 이같이 성을 억압하는 교육을 전제하고 있으며, 순결만 강조해왔던 셈이다.

하지만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의 저자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순결 교육으로 대표되는 성에 대한 위협 전술은 통하지 않는다”며, 이런 교육으로는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들의 눈을 벗어나 성생활을 하고 있고, 이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기에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그들이 마음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성적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부정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성행동을 할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성 인권 교육의 출발이라는 주장이다.

그동안의 성교육은 아이들을 성범죄 상황의 잠재적 피해자로 여기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라고만 가르쳐온 것도 사실이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식의 막연한 교육은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성폭력 상황에 이미 노출돼 있는데 피하려고만 하다가 생명까지 잃는 위험에 빠지거나 생명을 잃는 참사가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아이들을 겁주고 움츠려들게 하는 ‘피해자 되지 않기’ 교육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모하는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이 우선돼야 하며, 이제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인식을 심어주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성적 주체로서 자신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듯이, 상대의 권리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인권 보호라는 것을 아이들이 확실히 알게 해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야만 아이들에게 타인의 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명백히 성폭력 범죄라는 인식이 어려서부터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동양에서는 간음을 한 남녀나 성폭력범들에게 두 눈을 도려내는 형벌이 있었다. 그 뒤엔 거세해 생식을 못하게 하는 궁형(宮刑)으로 바뀌었지만, 시대나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성범죄는 반드시 중벌로 다스렸다. 아무튼 성범죄는 자신과 가정, 사회까지 파멸시키는 무서운 범죄이므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사람의 욕망에 정나미가 떨어진 톨스토이가 만년에 금욕주의를 제창한 심정도 다시 헤아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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