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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코로나 19’ 속의 한가위——경북신문 2020. 9. 29
아트코리아 | 조회 549
‘코로나 19’ 속의 한가위
——경북신문 2020. 9. 29
 
서양 사람들에게 휴가는 길고 완벽한 휴식을 의미한다. ‘바캉스’라는 프랑스어는 ‘비운다’는 뜻이다. 일요일은 유대인, 주말은 영국인, 바캉스는 프랑스인이 발명했다. 프랑스인들은 휴가철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집과 직장을 떠나는 분위기라고 한다.

우리는 그 사정이 사뭇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급가(給假)’, ‘급유(給由)’라는 공직자 휴가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휴가 때는 노약한 부모를 찾아뵙거나 선조의 묘소를 돌보도록 하는 특별 휴가였을 따름이다.
올해 한가위 연휴는 무려 닷새나 된다. 가장 큰 명절답게 노는 날이 넉넉해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 사람들마저 적지 않을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성묘하고 부모를 찾아뵙기 위해 고향으로 이어지는 민족대이동 때문에 ‘야단법석’이었겠지만 ‘코로나 19’가 그런 풍속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역병이 가라앉지 않아 고향 방문이든 역이동이든 자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다 경제 사정이 너무 악화돼 주머니 사정도 나빠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향의 부모들도 ‘올해는 보지 말고 오래 보자’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가위 연휴를 ‘직계가족끼리 보낼 것’이라는 응답이 47%로 가장 높고, 종전과 같이 ‘가족, 친척들과 추석을 보낼 것’이라는 응답한 경우는 11%에 불과하며, 선물도 ‘온라인몰에서 주문한디’는 답변이 25%, ‘마음을 담아 송금’이 24%, ‘선물하지 않을 것’이 19%, 택배발송이 7% 순으로 나타났다.
한가위 연휴를 보내는 방법도 종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 같다. 설문의 응답자 가운데 76%나 ‘가족과 함께 집에서 휴식할 것’이라 했고, ‘자기 개발이나 취미활동을 할 것’이 9%, ‘국내 여행을 다녀올 것’이 3%에 불과해 그야말로 ‘코로나 19’의 ‘나쁜 위력’이 실감난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유통업계도 고민이 깊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한 백화점은 선물세트 트렌드 키워드가 ‘DEAR(사랑하는, 소중한. Dining·Easy·Activity·Relief)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푸짐하게 차린 식사’, ‘간편함’, ·‘활기’, ‘안심’이라는 영어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만들 낱말이다.

또 한 업체는 ‘건강’, ‘홈술’, ‘홈카페’, ‘장마’를 키워드로 내세우고 건강세트와 홈술, 홈카페 트렌드로 와인과 커피세트에 주력하다는 소문도 들린다. 과거의 한가위 선물 과일류로는 배와 사과가 주종이었지만 긴 장마 때문에 샤인머스켓, 망고 등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어떤 업체들은 또한 ‘건강’, ‘위생’, ‘홈케어’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거나 면역력 증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홍삼, 유산균상품, 방역살균케어, 냉장고케어, 주방후드케어 등 홈케어 서비스에 관심을 쏟았다는 소문도 들린다.

올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자연환경이나 오곡이 무르익은 계절을 떠올리면 이 말이 그대로 유효하지만, 우리의 미풍양속으로 보면 올해는 ‘한가위 같지 않은 한가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상들에게 성묘하고 부모를 찾아뵙는 효도 행렬이 끊어진다고 생각하면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문득 지극한 효성을 가졌던 옛날 이야기 한 토막을 하고 싶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멀리 장사하러 간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소년 정관일은 그 편지를 안고 울었다. 어머니가 ‘편지에는 평안하다고 쓰여 있는데 왜 우느냐’고 하자 ‘글자의 획이 떨리고 있는 걸 보니 아버지께서 병이 드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과연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객지에서 병을 얻어 고생이 많았다. 소년은 자라면서 경서와 의술에 통달, 약을 팔아 부모를 봉양했으나 서른에 요절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의 두 아들로 마음을 위로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때 아들과 친구와 스승을 잃었다고 통곡했다. 이는 조선조의 실학자 정약용이 ‘다산문선’에 소개한 ‘효자 정관일’ 이야기다.

조선조의 효(孝)에 대한 미담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중엽 이후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 사상이 효도가 되면서 ‘가짜’가 빈번히 끼어들기까지 하자 정약용은 효도 빙자를 질타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는 것만은 아니다. 올해 한가위에도 우리의 미풍양속인 조상 공경과 효도의 마음만은 돈독히 할 수 있기를 바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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