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6    업데이트: 23-01-25 09:13

칼럼-6

​입방정과 신조어 유감——경북신문 2021. 5. 27
아트코리아 | 조회 393

입방정과 신조어 유감
경북신문 2021. 5. 27
 
 
 하루는 한 상인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팔겠다’고 길거리에서 외쳤다. 순식간에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돈을 많이 줄 테니 팔라는 사람들의 아우성도 넘쳤다. 그러자 그 상인은 ‘인생을 참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자기 혀를 조심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지혜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는 ‘탈무드’에 나오는 일화의 한 토막이다.
 ‘탈무드’에는 지혜에 대한 일화들이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동서를 막론하고도 지혜(말)에 관한 글이나 속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병(病)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禍)는 입으로 나온다’, ‘혀가 미끄러지는 것보다 발이 미끄러지는 편이 낫다’ 등은 말조심을 강조한 속담들이다.
 세상에는 말로써 망신하고, 화근을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도층 인사들의 ‘입방정’은 파장이 상대적으로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을 잘하면 ‘가벼운 입’과는 달리 득을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를 사 온다’는 말이 있고,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입방정’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요즘 세상에는 지나칠 정도로 말로써 말이 많은 ‘말의 성찬’이 넘쳐난다. TV 정치 시대가 도래하면서 말 잘하는 정치인들이 그 무대를 사로잡기도 한다. 그러나 혀를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속담에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을 하고 못 줍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세 가지 국어를 할 줄 알아야 대접받는다’라는 말도 있다. 10대와 40대, 그 윗세대의 언어들을 다 알아들어야 세 가지 국어를 구사하는 현대인이라는 비아냥이다. 사실 이젠 부모와 자식, 상사와 그 밑의 직원,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같은 우리말을 쓰지만 서로 뜻이 통하지 않거나 생소한 단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같은 세대끼리는 당연히 소통(疏通)되는 어휘가 다른 세대에게는 외국어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적잖다. 세대 사이의 언어분화 현상은 현대에 국한된 일만은 아니나 인터넷 통신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언어유희 문화를 확산시키고, 그 이질(異質) 현상이 심화되는 추세다.
 이 같은 언어단절 현상은 인터넷이 만들어낸 ‘요상한 말’이 아니더라도 일상어까지 변화의 급물살을 타게 한다. 이제 언어가 뜻을 전달하는 ‘사회적 약속’의 차원을 넘어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된다. ‘가지고 노는 유희’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더구나 요즘 신조어들은 그 말이 생긴 맥락을 모르면 뜻을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외계어’로 보이기까지 한다.
 인터넷으로 인한 신세대들의 언어 변화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신조어는 매스컴 등에 의해서도 양산된다. 특히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는 명예퇴직을 가리키는 ‘명태’에다 어느 날 갑자기 황당하게 직장에서 쫓겨난 경우를 일컫는 ‘황태’를 비롯해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이태백’ 등은 이미 옛말이 되어 버렸다.
 언어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바뀌게 마련이다. 같은 말이라도 시대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도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와 현상을 표현하는 게 신조어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를 만들고, 언어는 문명을 만들었으며, 언어는 훌륭한 소통 수단이자 지식의 보존 수단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언어 파괴와 소통단절 현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입방정’과 신조어 따른 언어 파괴와 소통단절에 대해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생긴 지 이미 오래된 ‘내로남불’은 신조어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엄중하게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온라인 국어사전에 풀이돼 있고 웹스터 영어사전에 등재될 가능성도 있으며, 얼마 전엔 뉴욕타임스에 ‘naeronambul’로 한국 정치를 읽은 중요 키워드로 제시(표지 게재)된 바도 있다.
 남이 할 때는 비난하는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한국 집권세력의 표리부동과 허위의식을 꼬집은 이 풍자와 해학의 신조어가 널리 알려진다는 건 한국 정치의 수치요,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근현대 정치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집약된 이 신조어가 한국 정치에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작용해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