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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이 시대의 한글서예 [서예문화 기고문-2012년 1월호]
아트코리아 | 조회 2,859

이 시대의 한글서예

 

대구한글서예협회 회장 백천 류지혁

 

 

앤드류로우니의 글 45-60cm

 

다 알다시피 서예가 다른 조형 예술장르와 구별되는 장르적 특성은 문자를 소재로 삼는다는 점이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미적(美的) 공감대를 획득하는 방식 가운데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필획이 현시(顯示)하는 고도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정신미(精神美)일 것이다. 이러한 서예의 예술적 특성은 수 천 년 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등 한자 문화권에 속한 나라에서 창작되고 향유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현대에 계승하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충분한 이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한문서예와 한글서예가 추구하는 심미이상(審美理想)은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오랜 역사를 지닌 한문서예는 서체와 서풍에 있어서 실로 다양한 조형미와 정신미를 축적해 온 반면 일천한 역사를 지닌 한글 서예는 뛰어난 조형미와 개성을 지닌 서체 혹은 서풍은 상대적으로 희소한 편이다. 즉 서체로는 해례본체, 궁체(정자,흘림, 진흘림), 이른 바 민체 등을 서풍으로는 손재형, 김기승, 서희환 등의 개성있는 작품들을 상기할 수 있는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점은 한글서예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조형미의 영역이 아직 폭넓게 개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문자를 소재로 한 예술인 서예에 있어서 작품의 내용이 감상자에게 주는 정서적 효과 또한 작품의 미적 특성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 가운데 일부가 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한글 서예 작품은 한글세대 감상자에게 보다 쉽게 향수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예계에서 한글서예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해마다 줄어드는 것은 비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대구광역시 서예대전(서협)의 경우 2004년의 분야별 출품 수를 보면, 한글 132, 한문 359(전서 25, 예서 52, 해서 114, 행․초서 168), 문인화 35, 전각 1, 서각 7로 총 534점이고, 이 가운데 한글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4.8%로 문인화의 3.8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2011년의 경우 한글 87, 한문 274(전서 21, 예서 47, 해서 62, 행초서 144), 문인화 72, 서각 36으로 총 469점이고 이 가운데 한글이 차지하는 비율은 18.6%로 문인화의 1.2배에 불과하다.

 


 

안중근의사 유훈에서 40-57cm

 

 

이처럼 한글서예가 다른 서예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 정도가 심하다는 것은 서예 전반의 현실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만, 현재 한글 서예가로 자처하는 이른 바 한글 서예 작가들이 지향하는 작품세계, 작가의식 그리고 문하생을 지도하는 교육 방식 및 내용에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극소수의 선각적인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글 서예작가들은 구태의연한 필법으로 궁체, 판본체 혹은 이른 바 민체 등 이미 하나의 정형으로 고착된 서체를 고집하거나, 작가 나름의 개성적인 서체를 시도한 작품도 속기(俗氣)와 둔한 조형감각을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감상자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수준 높은 필력과 조형감각을 갖추고 개성적인 작품 창작을 시도하는 작가가 없지 않으나 이 부류의 작가들은 근대 서양미술의 표현주의적 수법을 무비판적으로 추수하여 서예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오늘날 대다수의 한글 서예작가들은 서예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현대인의 심미정서에 조응할 수 있는 개성적인 조형 질서를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50여 년 전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이나, 20여 년 전 평보(平步) 서희환(徐喜煥)이 도달했던 고도의 세련된 품격(品格)에서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한글서예 작가들은 이 점을 통렬히 자인하고 새로운 조형 질서 창출을 위한 산고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서예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탐색은 물론 다른 조형예술 장르, 나아가 예술의 본질, 인간의 삶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부단한 사색과 탐구 등은 현대인의 심미 정서에 조응할 수 있는 작품창작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벽암록에서 44-54cm

 

 

현대인들에게 깊은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글 서예 작품 창작의 구체적 방안에 대한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표현재료나 기법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나 표현도구만은 원추형의 서예용 붓을 고수하여야 할 것이다.

한글서예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점은 판본체, 궁체 등 한글 고전을 대다수의 지도자들이 서예에 처음 입문하는 초학자의 입문 교재로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선의 예술인 서예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선을 구사할 수 있는 필력은 이미 오랜 역사를 통하여 검증된 한문 서예의 운필법 학습을 통하여 기르는 것이 온당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서예의 시원(始源)인 한문서예의 조형적 특성에 대한 일정한 이해야말로 한글서예학습과 창작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서예에 처음 입문하는 초학자가 판본체나 궁체정자부터 학습하기 시작하면 획을 그리게되고 상대적으로 조형적 다양성이 부족한 한글서예의 틀에 갇히어 훗날 개성적 조형창출에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필법과 조형에 대한 반복적 학습은 학습자로 하여금 권태롭게 하기 십상이다. 역설적이기는 하나 훌륭한 한글 서예 작가를 기르기 위해서는 한문서예를 먼저 교육하여 필력과 조형감각을 기른 후 한글 고전에 입문케하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며, 또 한글 서예작가를 지망하는 학습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서예에 매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20세기 한글서예의 신기원을 이룩한 서희환의 “한문서(漢文書) 그 좋은 획을, 그리고 그 여운을 우리 문자에 넣어 국문서예의 밑거름으로 삼고자하는데 나의 본의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진술을 상기하고 재삼 음미하여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문자를 소재로 한 예술인 서예에서, 한글세대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 한글서예가 상대적으로 대중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져간다는 것은 비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국력이 세계 10 위권에 들어 우리말과 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한글 서예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바탕도 마련되어있다고 할 수 있는데, 국내에서 조차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는 것은 한글 서예작가 모두가 깊이 고민하여야 할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이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한글서예인들이 한글 서예계가 당면한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진지한 자세로 난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하여 노력하면 이 위기가 역으로 한글서예의 신경지 개척을 위한 의미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헬렌니어링의 글 50-4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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