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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2010 한국서예 기고문 - 한글서예의 조형미와 학습방법에 대한
아트코리아 | 조회 1,439

2010 한국서예 기고문
 
한글서예의 조형미와 학습방법에 대한
 
류지혁(한글분과위원장)
 
1.
서예는 문자를 소재로 하면서도 문학,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종합 예술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독특한 조형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예는 문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학과는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밀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회성을 특성으로 하는 역동적인 점과 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음악적인 선율과 율동감 또한 서예의 핵심적인 미적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표의문자인 漢字를 소재로 한 한문서예와 표음문자인 한글을 소재로 한 한글서예 간의 차이는 없다. 혹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뜬 象形에서 출발한 漢字는 회화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단순한 부호에서 출발한 한글과는 달리 고도의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서예미의 본질이 문자가 지닌 상징성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간과한데서 비롯된 오해인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한글의 기본 자모(子母) 또한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극도로 상징화된 상형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실제 우리 서단에서 특별히 한글의 조형성에 관심을 가진 몇몇 작가들은 한글이 지닌 상형적 요소를 새롭게 해석하여 새로운 조형질서를 창출해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문자의 특성을 근거로 한글서예와 한문서예 간의 예술성의 深淺을 따지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일천한 한글서예를 한문서예에 필적할만한 다양한 미적 구조체로 발전시켜 나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 시점에서 한글서예가 그동안 쌓아온 예술적 성과에 대하여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글서예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2.
한글서예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인 예술작품으로 인식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부터일 것이다. 선전서예부에서 김영진, 권흥수, 윤백영이 한글로 입상하면서 비로소 한글서예가 조형예술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한글서예의 역사가 이처럼 짧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소재로 새로운 조형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고, 현재도 소수의 선각적인 서예인들에 의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해방이전 김충현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주목하여 이른바 ‘고체’라는 개성 있고 품위 있는 한글서예 작품을 창작하였고, 1950년대에 이르러 손재형은 전서의 필획을 원용한 독특한 한글서체를 창안하였으며, 김기승은 한문서예의 필의를 한글서체에 접목시켜 기필과 수필, 획의 굵기 등에
(평보서희환선생작품 `용비어천가‘ 32×69㎝)
변화를 주어 이른바 ‘原谷體’를 완성하였다. 손재형의 개성적인 한글서체를 계승한 서희환은 한글고체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토착적이면서도 고도의 조형미와 품위를 겸비한 개성적인 작품   을남겼다,
최근 들어 조선시대 민간의 부녀자나 일부 사대부계층의 문인 및 서민들이 한글로 쓴 서찰, 가사, 소설 등의 서체에 나타나는 소박하면서도 개성적인 조형미에 주목하여 다양한 조형으로 재해석해낸 이른바 ‘民體’가 예술작품은 물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표음문자인 한글에 표의기능을 부여하거나 추상적인 조형, 과감한 필획의 구사, 색체 도입 등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심미정서에 조응하는 조형질서의 창출을 의도한 이른바 ‘현대서예’가 시도되고 있는데, 이러한 한글서체들은 새로운 한글서예미 창출을 위한 진지한 탐색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짧은 역사 속에서 우리 한글서예계가 도달한 괄목할 만한 예술적 성과는 대부분 한문서예에 대한 깊은 식견을 한글서예에 적용한 몇몇 천재적인 서예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3.
주지하듯이 지적 측면과 함께 실기가 중시되는 예체능분야에서의 성취여부는 신체적 유연성과 감수성이 가장 빼어난 유년기교육에 달려있다. 천재성보다 고도의 수련이 요구되는 서예의 경우 조기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여 초등학교 상급학년이 되어서야 일 년에 한 두 시간 서예를 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한글서예를 위시한 한국서예가 세계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조형예술로 자리 잡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성인이 되어 여가선용 차원에서 서예를 익혀 어느 정도 예술적 성취를 이룬다 하더라도 철저한 작가의식이 결여된 이른바 ‘취미예술’로 전락 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현재 서예계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조기교육 문제일 것이다.
서예 조기교육과 관련하여 공교육차원의 정규교과목에 서예과목을 포함시켜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행 방과 후 학습의 활성화, 정서교육에 있어서 서예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 등을 통하여 보다 많은 어린이를 서예교육에 참여시킬 수 있으며 서예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서예조기교육을 위한 제도적 장치 혹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하더라도 올바른 학습방법이 담보되지 않으면 학습자들이 높은 수준의 예술경계에 도달 할 수 없다. 특히 아직 학습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한글서예의 경우 지도자의 역량과 지도방법은 학습자의 서예세계 형성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필자가 조기교육과 함께 한글서예 학습방법에 대한 탐구를 중대한 현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성적인 한글서예의 신 영역은 한문서예에 대한 깊은 식견을 지닌 작가들에 의해 개척되었다. 이점은 이상적인 한글서예 교육의 체계를 정립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한글서예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문서예를 먼저 익혀야 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진부한 담론이기는 하지만, 선의 예술인 서예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선을 구사할 수 있는 필력은 이미 검증된 한문서예의 운필법 학습을 통하여 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필자는 한글서예 입문자에게 먼저 ‘석고문’, ‘산씨반’, ‘광개토호태왕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1년쯤 임서하게하고 한글 해례본체를 쓰게 한다. 서예가 요구하는 선과 한글 및 한자의 기본적인 조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서는 처음부터 摹臨과 意臨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충고한다. 明의 王世貞도 “의임은 意를 얻는 데는 용이하나 體를 얻기는 어렵다. 모임은 체를 배우기는 쉬우나 의를 얻기는 어렵다”라고 주장하여 의임과 모임의 조화를 강조한 바 있다. 다음 언해본 정자체에 들어가기 전에 필자는「장맹룡비」임서를 권한다. 방필을 구사하지 못하면 언해본 정자에 쓰인 필획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필 구사력을 습득한 다음「조웅전」,「여사서」등을 임서하면 언해본 정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언해본 흘림체는 궁체를 익힌 다음 학습하는 것이 결구 및 조형적 특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궁체의 초·중·종성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결구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언해본 흘림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글서예의 정화는 궁체이고 궁체가 지닌 조형미는 해례본체 외의 모든 한글서체에 접목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궁체의 유려한 곡선에는 우리조상들의 合自然을 추구하는 미의식이 녹아있을 뿐만 아니라 모필의 특성이 가장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있다. 이러한 궁체학습은 현대문을 통해 궁체의 기본 필획을 익히고 난 다음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최선의 학습자료 라고 생각하는 궁체고전은 다음과 같다.
 
●정자 : 옥원듕회연(권6), 남계연담, 산성일기, 여사서
●흘림 : 옥원듕회연(권18,19,20,21), 낙성비룡(1,2), 서한연의(권1)
●진흘림 : 서기 이씨, 서상궁, 천상궁 등의 서찰
 
궁체 전반에 대한 이해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언해본체 흘림에 접근할 수 있는 필력을 갖추게 된다. 언해본체 흘림은 작가의 조형감각에 따라 각기 다른 조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학습자의 심미정서에 맞는 고전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빼어난 조형미와 필력을 갖춘 송시열과 김정희와 대원군의 한글서찰은 반드시 섭렵해야할 고전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 밖에 「주봉전」,「장씨 정열록」,「셔왕가」「연행가」등도 주목할 만한 고전이라 할 수 있다.
 
4.
한글서예 고전에 대한 철저한 탐구가 이루어져 붓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필력과 다양한 조형적 특성을 체득하면 창작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 단계부터 새로운 조형미 창출이라는 거대한 장벽과의 고독한 대결이 시작된다. 처절한 예술적 고뇌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창작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어야 작가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감상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조형세계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창작에 임해서는 재료나 기법에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전통적인 공간소재인 천은 물론 돌, 나무, 금속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의도한 형상창조에 적합한 소재이면 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표현재료 또한 먹, 동
백천 류지혁 `행복지수‘ 장지에 혼합기법 39×47㎝
 
양화물감 뿐만 아니라 아크릴, 락카, 파라핀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표현도구에 한해서 원추형의 서예용 붓을 고수하여야할 것이다.

한글 서예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과 관련하여, 필자는 蒼巖 李三晩(1770~1847)이 추구했던 書藝精神과 그의 書가 구현해내고 있는 예술경계가 오늘날 한글서예 작가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창암의 서론과 서예작품 등이 비평가들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 부단한 學書 과정에서 체득한 체험적 진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의 書論과 우리나라의 山水自然의 미적 특성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한 이른 바 ‘行雲流水體’가 한국적 특성을 지닌 새로운 조형질서 창출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현재 우리 서예인에게 이념적 내지 조형적 차원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계에 보고된 연구업적에 의하면 창암은 ‘書의 根源은 자연’ 이라는 대전제 아래 ‘書는 小道가 아니고 人倫을 돕는 것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書의 독자적 가치를 천명하고 전문적 서예인으로서의 자아의 존재의의를 확보하였다. 書의 근원을 自然에 두었기 때문에 창암은 自然에 卽하여 그 특성을 체득하고 그것을 書를 통해 온전히 형상화하여 한다는 ‘卽自然―法自然―象自然’이라고 學書의 이론적 체계를 구축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창암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작품창작을 통해 자신의 서론을 실천하였다. 조선후기 진보적인 지식인 사이에 열병처럼 유행하던 ‘北學’이라는 시대적 조류속에서 우리 민족의 가슴 저 깊은 곳에 도저하게 그러나 은미하게 자리잡고 있던 審美情緖에 조응하는 창암의 ‘行雲流水體’는 바로 이러한 철저한 작가정신의 소산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서예인, 특히 한글서예인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창암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철저한 작가정신 일 것이다. 규범화된 한글고전을 익히되 수련과정에서 익힌 인위적 기교와 전범화된 조형질서의 틀을 과감히 깨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卽하여 자연스러운 운필로 작가가 포착한 자연현상을 한글이라는 표현 매체를 통해 상징적으로 재현 해 낸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5.
이상에서 필자는 한글서예의 조형미와 학습방법에 대하여 두서없이 기술하여 보았다. 서예사적 위기상황에 처한 현시점에서 우리는 ‘萬法歸一’이라는 佛家의 격언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위급할 때일수록 당황하지 않고 근본에 충실하여야 난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전통서예가 현대인들의 심미정서에 맞지 않다고 섣불리 단정하고 자극적이고 난해한 채색과 구도로 현대인들의 기호에 영합하려 한다면 한글서예가 설 자리는 현격이 줄어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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