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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평론

문방사우와 함께한 60년…백천 류지혁 70세 기념 고희전 2015-12-15 대구신문
아트코리아 | 조회 1,075

문방사우와 함께한 60년…백천 류지혁 70세 기념 고희전


쉼없는 붓글씨 정진 “아직도 목마르다”
5번의 개인전…독자적인 조형미학 구축  판본고체 멋 살려 백천식 고체로 회자 돼
병풍 4점·7m 헌법전문 등 80여점 선봬  대구문예회관서 20일까지 전시회 열어

 

백천 류지혁 선생의 희수전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류지혁 작 ‘김상묵 시 처음빛사랑’

 


류지혁 작 ‘헬렌켈러의 어록’

 

 

“머리는 한계가 있어도 공부는 끝이 없어요.”

고희전을 열고 있는 백천 류지혁 선생이 “머리는 없어도 공부하면 끝없이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70세를 기념하는 고희전을 열고 있는 류 선생이 ‘끝없는 정진’을 말할 때 숙연함이 묻어났다. 이제는 쉬엄쉬엄 해도 될 법한 나이인데 용맹정진(勇猛精進)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서예를 대하는 그의 열정적인 태도는 고희라는 수식어보다 영원한 청년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지난 14일, 오전 내내 전시장에서 전시 준비를 하고 이제야 여유를 찾는다는 류 선생을 그의 서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인들의 전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4년 만에 여는 전시에 여북할까 싶다가도 “세상을 참 잘 사신 분이구나” 싶었다.

◇ 끝없는 서예공부의 길

류지혁. 그는 60여 년을 벼루와 붓과 함께 했다. 예닐곱 살쯤에 그의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준 구궁지에 천자문을 쓰면서 서예공부를 시작했고, 중질인 고당 류민목 선생으로부터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때는 밀양예총에서 주관한 서예휘호대회와 밀양문화제에 작품을 출품해 해마다 큰 성과를 거두었다. 류 선생의 서예인생 1기는 여기서 마감된다.

이후 그는 대구로 올라와 40대가 되기 전까지 생업에 몰두했다. 그때도 소헌 김만호 선생을 만나 서예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서예에 올인한 시기는 40대였다. 당시 성당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서예작품전을 갖게 됐는데, 그는 이 전시회를 계기로 경영하던 섬유사업을 접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때 전시회를 하면서 아직 결구가 어색하고 필세가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심 끝에 한글서예를 제대로 연구해 봐야 겠다고 결심했죠.”

이때 화촌 문영렬 선생을 만나 1990년대 중반까지 10여년 동안 체계적으로 한글서예공부를 했다. 한글서예의 매력에 푹 빠진 류 선생은 서예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하기 위해 1995년 대구예술대 서예과 1기로 입학했다. 그의 나이 쉰 때의 일이다. 이후 그는 대학원까지 내달렸다. 그의 서예 인생 2기는 그렇게 학교공부로 점철됐다.

“10여년 동안 한글서예에 매진해왔지만, 서예에 대한 목마름은 그칠 줄을 몰랐어요. 그래서 전공자의 길을 선택했지요.”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면서 이론과 실기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고, 그의 운필이 자유를 얻기 시작했다.

◇ ‘법고창신’으로 현대적 재해석.

류 선생은 지금까지 5번의 개인전을 가지며 독자적인 조형미학을 구축해왔다. 특히 모노톤의 서예자품에 자연스러운 칼라를 도입하고, 자음과 모음에 변화를 주거나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작품으로 자신의 조형언어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판본고체의 멋을 새롭게 살려내 서예계에서 백천식 고체로 회자 될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인터뷰 첫 머리에 그는 ‘끝없는 공부’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 말에는 그의 서예인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지독하게 열심히 하는 서예가다. 명절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서실에서 서예와 함께 한다. 그의 서예작품에 담겨있는 진실성의 모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60년을 서예를 했지만 단 하루도 지루한 적이 없었어요. 할 때마다 재미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모색하고 연찬해 온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한글서예 작품을 위주로 하면서 한문서예작품과 글씨에 그림을 곁들인 작품, 색채를 넣어 화면의 분위기를 바꾼 작품 등 다채롭다. 전시작은 소형작품 70여점과 대형병풍 4점, 가로 7m가 넘는 헌법전문 등이다.

손글씨 타령을 하면 구닥다리 취급 받기 십상이다. 서예라고 다르지 않다. 구식이라는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서예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독자성을 인정받고 있는 류 선생은 서예의 부흥에 ‘법고창신’을 강조했다. “먼저 법고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창신이지요. 옛것부터 철저하게 익혀야 합니다. 창신은 그 바탕 위에서 발현되는 것이지요.” 영원한 청년 류지혁의 서예인생 3기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류 작가는 대구시미술대전 우수상, 한국현대미술협회 초대작가상, 대구시서예대전 초대작가상, 대한민국제헌국회기념조형물 제헌헌법전문서예공모 우수상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서협 대구지회 고문, 세종한글서예큰뜻모임 부이사장, 대구한글서예협회 공동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백천서실을 운영하고 있다. (053)745-7726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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