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안개, 30x30cm, 나무에 옻칠, 2026, 김정은
김정은 JeoungEun Kim
나는 인간의 몸과 감각을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떨림, 기억의 잔상, 감각의 변화는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하고 수축하는 내적 우주의 움직임이다. 반대로, 내가 몸 밖에서 마주하는 빛, 기후, 공간, 타인의 존재는 또 다른 거대한 외부 우주로 확장된다. 나의 작업은 이 두 우주, 내면과 외부가 서로 충돌하고, 스며들고, 흔적을 남기는 지점을 포착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순간의 감정과 기억이 남긴 미세한 흔적을 시각화하기 위해 전통 옻칠이라는 재료를 사용한다. 옻칠은 시간이 만든 재료이며, 동시에 시간을 품은 재료다. 칠의 층은 물질이자 시간의 단면이며, 건조와 연마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감정과 기억은 천천히 침전되어 또 하나의 층을 만든다. 투명하거나 반투명하게 쌓이는 옻칠의 깊이는 내가 인식하는 감정의 농도, 감각의 진폭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공간이 된다.

Mindfulness 그 너머 III, 53x45.5cm, 나무화판에 옻칠과 자개, 2026, 박승비
박승비 SeungBee Park
밤하늘은 끝이 없다. 시선은 머무르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산은 그 아래에서 더 이상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빛을 잃은 윤곽은 그림자로 남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 머문다. 나는 이 경계에 머무는 순간에 주목한다.
무엇이 분명해지기 이전, 이름 붙여지기 이전의 상태. '그 너머'는 어떤 공간이 아니라, 인식이 멈추고 감각이 열리는 순간이다. 노자가 말한 유와 무의 사이, 장자가 사유한 분별 이전의 세계처럼, 모든 것은 고정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
색들은 깊어지고, 다시 흔들리며 번져간다. 이 색들은 풍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감각의 이동을 드러낸다. 형태는 닫히지 않고, 공간은 끝나지 않는다. 그 너머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보이는 것이 더 이상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순간. 그 때 비로소 생성된다.

고연(본래부터 그러함), 53x45cm, 옻칠, 난각 및 혼합재료, 2024, 손수경
손수경 SooKyung Sohn
우리는 매 순간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각지고, 둥글고, 네모나고, 세모난 여러 형태로.. (중략) 난각 한 조각 한 조각이 달항아리와 질그릇을 이뤄갈 때, 나의 기쁨, 고요, 소망도 핀셋끝 매달린 난각 한조각의 떨림으로 녹아 들어간다. 매 순간 쉼과 소망을 담아 본다. 더 이상 무엇을 증명하지 않아도 내면의 충만함이 중요한 삶을 꿈꾼다.

마음 그릇, 45x45cm, 옻칠, 칠보, 2026, 신란숙
신란숙 RanSook Shin
신란숙 작가의 작품은 빛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시간의 결이다. 수차례 덧입힌 옻칠이 번지며, 표면은 한없이 부드럽고 깊은 울림을 품는다. (중략) 작가는 그 여백 속에서 빛과 마음이 맞닿는 지점을 포착한다. 화면에 드러나지 않은 감정의 결,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흔적이 조용히 번진다.
작가에게 달항아리는 달빛이다. 완벽하지 않은 균형, 미묘한 비대칭은 오히려 인간적인 온기를 품는다. 가까이 다가서면 미세한 흔적과 균열이 마치 피부처럼 살아 숨 쉬며, 시간과 기억의 감각을 불러낸다.
신란숙의 회화는 그렇게 시각을 넘어 감각을 깨운다. 빛과 소리, 정서가 서로 스며들어 마치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듯한 경험을 이끈다. 그가 그려낸 세계는 달빛처럼 고요하고, 은은하며, 마음 깊은 곳을 천천히 적신다.

윤현섭 HyunSeb Yoon
바다는 생명의 시작이자 다시 돌아가는 장소이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바다가 되고, 바다는 다시 기화하여 세상으로 퍼진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바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의 근원이 된다.
‘순환의 바다’는 이러한 거대한 순환의 흐름 속에서 개별적인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물의 움직임처럼 생명 또한 고정된 상태로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며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 작품은 바다의 모습을 단순히 재현하기보다 물과 생명이 서로를 만들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 자체를 형상화하려는 시도이다. 작품의 표면은 멈춰 있는 형태이면서도 동시에 끊임없는 흐름을 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근원적인 순환과 생명의 지속을 마주하게 된다.

정회윤 HoeYoon Choung
바람을 그린다. 우리가 태초에 출발한 곳에서 머무르는 곳, 그리고 향해야 할 곳으로의 바람은 분다. 그 바람은 우리의 역사로부터 미래까지를 연결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사유하게 한다.
바람과 물, 빛처럼 형태를 고정할 수 없는 자연의 감각과 그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